brunch

화음의 기억너머

詩가 있는 풍경

by 포레스임

가인 [歌人]

그것은 절규

또 다른 메아리

여섯 줄 닿는 손끝 마디가 아리다

지나온 시간은 기억되지 않지만

가슴속 미열은 아직 남아

나를 떠밀어 선율의 바다로 간다


오선지 음표가 생채기 같이 떠올라

손마디 기억이 어쿠스틱 줄을 어르고

피크는 가식 같아

쓰라린 손톱으로 다듬은 화음은

내 심장의 소리를 퍼올리지


마이크에 입을 맞춰 선율이 올라오면

지난 추억과 향수가 올라와

서러운 독백의 대사는

드디어 날개를 단다


부르고 불러도 풀리지 않을

가슴속 멍울이 알알이

화인 되어 가슴에 불 지르고

각혈한 듯 부르는 노래가

메아리로 내 귓전을 맴도는데


겨우내 돌아온 편린 같은 기억들이

유리창 너머 봄기운에

부옇게 음표를 그리고 있다


관(官) 주도의 '이웃사랑 열린 음악회'가 있는 날이다. 얼핏 보면 봄, 가을로 있는 지자체 행사로 보인다.


이런 종류의 행사는 기획공연보다 관람열의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런데 시간이 다가오니 5~60대로 보이는 여성분들이 개방 전, 현관에 줄을 선다. 그것도 아주 길...... 게.....


트롯가수 박서진이 출연한다고 했다. 이유를 그제야 눈치챘다.


요즘은 트로트가 대세는 대세인가 보다. 사실 나는 트롯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TV를 거의 보지 않으니, 유행 돌아가는 것에 좀 무감각하다. 음악이라야 포크나 발라드 쪽만 듣다 보니, 어찌 보면 대중음악엔 문외한인 셈이다.


"장구의 신, 박서진을 몰라요?"

장구?... 박서진?....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후배직원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임영웅은 알아!.... 나랑 종씨라서"

웬 썰렁 개그냐는 듯 후배는 뻘쭘해 한다.

사실 임영웅은 히어로다. 나랑 종씨라서 하는 얘기가 아닌, 그는 정말 50년대 어느 무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툭' 하고 현재로 떨어진 인물 같다.


유고한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우연히 그의 목청으로 들었는데, 소름이 돋았다.



언제부턴가 트롯이 대중음악의 중심에 선 모양새다. 가끔 보는 TV에 여기저기 트롯가수들이 많이 보인다.


내가 어린 시절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를 보내던 생각이 난다. 이 프로가 아직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종류의 문예장르는 피드백이 생명이다. 방송의 생리는 시청자나 청취자들의 반응이 무엇보다 궁금할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반응이 오는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들려줄 수밖에 없다. 거기에 그들의 수익구조가 숨어있으니 당연한 얘기다.


한때는 아이돌 음악이 대세였다. 채널마다 그룹을 지어, 남, 여별 힙합이나 레게 등의 음악이 흐르는 장면이 많았다.


지금은 복고풍이 아닌 세련된 트롯이 대세인 모양이다. 듣고 보는 층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피드백도 열심인 모양이다.



내 또래의 어떤 친구는 내게 푸념을 한다. 아내가 모 트롯가수 팬카페 회장이란다. 전국의 공연을 따라다니는데, 집안일은 뒷전이라고 하소연한다.


아이도 다 키웠겠다, 빈둥지를 만드는 서방인지 남방인지는 밖으로만 도니, 차라리 좋아하는 가수나 보러 다니는 모양이다.


가슴이 허........ 해서 그러시는 거 아니냐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봤다. 그러다 그 친구도 틈만 나면 아내와 공연을 따라다닌다.


요즘은 그의 아내보다 그 친구가 더 열성인 듯싶다. 나름 재미가 붙은 모양새다.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의 반란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홀대받던 트롯이 새 생명의 날개를 얻은 듯 보인다. 문화 패러다임은 돌고 돈다.


옷의 유행이 복고 스타일이 재유행하듯이, 노래도 다시 옛것에 새 옷을 입혀 유통망을 넓힌 것이다.


늘 그렇지만 대중음악도 편중현상을 보인다.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습성은 바뀌지 않았다.


방송이나 각 매체도 부추기는 성향이 있다. 각자의 정체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행에 민감한 특성은 자기만의 고유성이 없다는 말과 같다.


포크송, 발라드, 힙합, 트로트, 가곡 등이 고루 사랑받는 문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그런 생각은 음식에서도 나타난다. 소위 맛집이라는 것도, 자기의 주관성과 상관이 있다.


흔히 맛집이라는 곳에는 시간이 되면 긴 줄을 선다. TV나 인터넷에 떠도는 맛집을 나도 찾아간 적이 있다. 하지만 기억날 정도의 맛집은 별로 없다.


어쩌면 내가 편히 갈 수 있고, 취향과 맞으면 거기가 나만의 숨겨둔 맛집은 아닐까? 몰려다니지 말아야 한다.

나만의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몰두(沒頭)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