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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임 Dec 13. 2023

그 벤치엔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달의 나날들



 흡연 벤치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사시사철  왁자했던 시절이 지나고 있었다. 오른쪽 길 건너 로데오 거리의 풋사랑이 찾던 벤치엔 열기가 오르고 있었다. 왼편의 선술집 거리에서 하루를 온전히 불사른 노동의 피곤함에 한숨처럼 연기를 내뿜었다. 겨울이 되니 이파리를 다 떨군 느티나무 한 그루가, 가녀린 팔을 들어 오후의 느지막한 한 줌 햇볕을 기어이 막아서고 있었다.


 누구나 자기 경험의 일반화에서 떠날 수 없는 모양이다. 다른 이를 보는 평균율은 늘 자신의 자취에서 찾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나라고 다를 순 없었다. 상대의 입장에서 객관화하는 습관이 이 나이에도 아직 몸에 붙지 않은 모양이다. 정년이 되기 전 이미 십여 년 전에 퇴직한 직원이 있었다. 그를 만난 건 너무 우연이었다.



 그 친구는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지긋지긋한 월급쟁이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나 또한 이직종에 오기 전, 나름의 시도는 해보았다. 그리고 실패했다.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붙여가며 지금의 직장에 안주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나이만 먹었다. 그냥 길들여져 도도새처럼 날개는 퇴화하고 나는 법도 잊어버렸다. 오 년여를 같이 지냈던 그 친구는 십여 년 전 두유 대리점을 차렸었다. 더 늦기 전에 시도하겠다고 했었다.


 자본사회에서 돈은 모든 것의 초석이며 달란트라는 것쯤은 누구든 인정하는 것이다. 아직 십여 년의 기한을 남기고도 과감히 도전하는 그의 용기가 가상했다. 당시에 과감하게 박차고 나가, 용기를 낸 그가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 걱정도 되었다. 목적집단인 직장에서 퇴직한 이의 근황은 그리 관심 이 가지 않는다. 자연스레 잊힐 뿐이다. 그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건 아주 우연히였다. 어느 휴일, 이발을 하려 내가 사는 동네 어느 창고 건물 모퉁이를 돌 때 그를 만났다.


"히야!! 임○○! 이게 얼마만이야!!!"


"어!! 그러게 반갑네, 반가워!!"


오륙 년 지난 듯했다. 그는 1톤 박스카에 무언가를 손수레로 싣고 있었다. 따라오라고 하기에 무턱대고 간 곳은 창고건물 맞은 편의 사무실로 보이는 건물이었다. 오래 살았지만 관심이 없어 무슨 회사인지 몰랐다. 알고 보니 그가 띠어다 파는 두유회사 창고 같았다. 들어간 곳은 자그마한 회사 구내카페 같은 곳이었다. 그동안 어찌 지냈냐고 물었다. 웃는 듯 찡그린듯한 그의 표정은 알듯도 하였다.


"한동안 거래처 때문에 애를 쓰다가 몇 군데 잡히니 할만했었지!"


지금은 경쟁이 심해 전만 못하다고 한다. 나 보고는 정년은 꼭 하고 뭐든지 해보라고 한다. 아직도 명예퇴직한 자신을 원망하는 듯 보였다.


"그래도 자네 표정이 좋아 보이니, 꽤 번 것 같은데?"


"벌기는 했지! 하지만 불안해! 뭐 하나 든든하게 믿을 게 없더라고!"


 이 사회에서 돈은 아득한 시절부터 결제의 수단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역할이 사람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즉, 사람들과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이상으로 군림하는 절대지존의 위치에 있다. 돈에서 자유가 나온다고 했다. 그것이 없이는 다른 무엇도 공허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다. 공직을 수행하면서 너무 돈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미 대기업의 소모품 영업사원과 중소기업의 중견 관리자 역할을 해본 나로서는 그러한 기조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이런저런 큰일을 만날 때마다 돈은 늘 나를 옥죄어 왔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경제는 보이지 않는 채찍으로 나를 동분서주하게 만들곤 했다. 돈은 그래서 있고 봐야 했다.


몇 마디 나누던 그가 휴대전화의 뭔가를 확인하더니 분주히 일어선다.


"이거 오랜만인데 먼저 일어나야겠어! 배달 끝내고 집사람 병원도 가봐야 해서!"


"어디가 편찮으신가?"


"자궁암이 왔어! 새벽일도 돕고 열심히 따라다니더니 힘에 부쳤는지!...., 공무원 할 때보다 아무래도 내가 미덥지 못했는지...., 항암치료받고 요양병원에 있거든!"


"힘들겠구먼!"

차마 쾌차하라는 말은 못 했다. 암이라는 말에 인사치레의 말도 조심스러웠다. 그는 명함 한 장을 쥐어주곤 트럭을 몰고 사라졌다. ○○밀 대리점 대표라는 상호와 그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요즘은 아무래도 퇴직하고 다른 일을 하는 지인들의 근황이 자못 궁금해진다. 나 또한 일 년 후엔 다른 일을 해야 할 것이 확실 하기에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의 경험에서 조언을 구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공연장비를 실은 5톤 차량이 들어와 뮤지컬 무대로 옮기는 동안 차량기사는 벤치에서 한대 피고 있었다. 연배로 봐서는 나보다 위로 보이는 그는 나에게 불쑥 몇 년 남으셨냐고 묻는다. 내년 말이라고 답하니, 준비하신 게 있냐고 묻는다. 나름 준비는 하는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자기는 전직 경찰이었다고 소개한다. 지구대 책임을 끝으로 정년을 하고 이런저런 준비로 일을 하게 됐는데 운전을 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않았다고 한다. 결론은 나와봐야 다시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긴다고 조언을 해준다.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하다. 세상일이 내 의도대로 된 적이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늘 변수가 있었고 전혀 다른 곳에서 해답이 나오곤 하는 게 세상이란 우리가 사는 공간이다.


 회관의 북문 주차장은 공연관계자들과 짐차의 하역을 위한 공간이다. 벤치는 자그마한 무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출연자들은 대본을 다시 보기도 하고, 무용수들은 턴동작을 복기하기도 한다. 그들의 한숨과 탄식은 오롯이 벤치의 재떨이에 쌓여간다. 문자가 왔다. 얼마 전에 만났던 두유대리점을 하는 친구였다. 그의 아내 부고였다. 우연히 만났기에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상태가 꽤 심했던 모양이다. 마침 회관 근처의 대학병원 장례식장이었다. 퇴근을 하고 문상을 갔다. 몇몇의 구면인 직원들도 보인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거의 내 또래의 사람들이었다.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잡고 어찌 지내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와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문상객들은 거의가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직원들이었다. 대리점을 오픈하고 한동안은 꽤 괜찮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본사의 종용에 너무 많은 제품을 떠안게 되고, 그것은 고스란히 그의 부채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남는 제품을 두고 볼 수 없어 차에 싣고 소매에 나섰다고 했다. 유통기한을 넘길까 봐 애를 써가며 할인가격에 여기저기 편의점을 돌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팔기도 했단다. 결국 중압감에 중병이 든 줄도 모르고 치료시기를 놓쳐 말기의 상태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그의 근황을 아는 직원의 입을 통해 듣게 된 사연이다. 상주인 그는 늦게 결혼하여 아직 중고등 학생인 자녀에게 빈소를 맡기고, 우리들 자리에 합류하여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그는 신음소리 비슷한 말투로 좌중들에게 말했다.


"마누라 잡아먹은 대리점인지 나발인지 다 때려치워야지!....., 멍청한 놈이 무슨 사업을 한답시고......, "


그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는 직원은 한마디 했다.

"애들 때문이라도 살아야지....., 공부는 마저 시켜야 하잖아!"


"자네들 오늘 와준 거 너무 고마워!....... 그리고 잘 들어!...., 절대 미리 퇴직하지 마! 사업하지 마!..., 뭘 안다고 내가 이 짓을 한 건지....., "


얼마 전 만났던 그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는 울부짖었다. 하긴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았다. 자신은 힘들더라도 아내와 자식을 부양한다는 자존감에 심하게 내상을 입은 듯했다.


뭐든지 근육이 붙어야 한다. 장사도 어릴 때부터 해봐야 경험이 붙어 요령도 생길 것이다. 몇십 년을 돈과는 상관이 없는 직업에서 다달이 들어오는 수입으로 살아오던 생활을 번득이는 돈의 논리를 쫓기에는 무리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회한에 충분히 동감이 갔다. 돌아오는 길에 회관의 그 벤치에서 한대 피고 싶어졌다. 아무도 없는 늦은 저녁 시간, 벤치엔 아무도 없었다.


겨울의 휘도는 찬바람에 나의 한숨은 부옇게 밤공기와 어울려 흩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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