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의 입원을 끝내고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치료를 끝내고 귀가할 수 있어 모든 게 감사했다. 퇴원수속은 여러 가지를 챙겨야 했다. 입퇴원 확인서와 진료비 영수증, 세부내역서, 수술기록지 등...., 그리고 CT, MRI 복사본 등이었다. 내 경우를 비춰봐도 심장의 이상이 있었을 때 입원 후, 퇴원 시에 경험이 있기에 그리 낯선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두 개의 보험에 가입이 돼 있었다. 하나는 이미 납입이 끝난 여성전용 보장성 보험이었고, 다른 하나는 실손보험이었다. 병명이나 코드가 일치해야 적용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협진 의사마다 2만 원의 진단서를 세장이나 발급받아 아내의 재촉에 가까운 보험사 지점에 접수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다며 신기해했다. 그 말에 순간 울컥했다. 이제부터는 실생활에서 더 주의를 하고, 만성질환의 특성상 스스로도 자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명제가 당사자인 아내와 협조해야 할 가족인 우리에게 떨어졌다.
두 달 동안의 입원은 후유증이 없을 수 없었다. 어쩐 일인지 걸음걸이도 전과 같지 않았고 적응기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도 집에 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병실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다음 날 아내에게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다. 접수한 서류를 잘 받았으나 본인 동의를 받은 후, 입원했던 병원에 가서 보험사 손해사정인이 직접, 입원경위부터 치료과정, 수술여부 의사소견 등을 조사 후, 보상금 책정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한편으로는 보상액이 고액이니 이해가 가는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중립적인 손해사정인도 아니고 보험사에서 만든 손해사정법인 소속의 직원인 그들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조사를 하는 것일까? 관련 기록물이나 영상을 뒤져보았다.
가입을 했었고 보험료 납입 또한 십여 년 전에 이미 끝난, 기록상으로도 여전히 살아있는 보험은 보상이 힘들어 보였다. '직접치료'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단 네 자의 이 문구는 많은 가입자들의 피눈물을 쏟게 하고 있었다.
이미 몸이 병들어 병원의 치료를 받고 경제적으로 버팀목 역할을 기대하던 보험은 그 네 자의 여의봉에 휘둘려 많은 이들이 더 심한 고통 속을 헤매게 하였다. 암치료의 경우도 요양병원에서의 치료는 직접치료가 아니라 보상을 못 받은 사례가 수두록 하였다.
소송으로 이어져 직접치료가 맞냐, 아니냐를 놓고 법정에서 나온 판결문도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는 사례도 읽어보았다. 개인이 거대 보험사와 소송을 한다는 것은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보다도 힘든 여정일 것이다. 누구도 그러한 싸움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맹점을 이용한 가입자와의 소송이라면 기업으로서 최소한의 윤리는 있는 것일까?.......,
아내의 경우는 그것과는 다르다. 당뇨합병증으로인한 간과 신장의 농양을 시술했고, 오른팔과 손으로 세균성 부종이 와서 결국 손바닥 수술을 다섯 차례나 했었다. 보험사 기준으로는 보상비가 많은 수술에 대해 당뇨와 연관이 없는 단순 수술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 만성질환에 대한 보장을 약관에 명시한 만큼 당뇨와의 연관성을 그들은 극구 부인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의 진단서에는 당뇨로 인한 부종이라고 분명히 명기돼 있었다.
국내 최대의 보험사가 이리도 치졸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아직 심사 중이니 기다리라는 소리만 하는데 어찌 나올지 탐탁지 않다. 혹여 만성질환 자체인 당뇨를 직접 수술한 것은 아니지 않냐고 반문한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누이 들어온 보험은 사기성 사업이란 말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민간보험은 절대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이제는 수긍이 간다.
금융감독원의 보험감독국에도 위원들이 국내 굴지의 보험사 임원들이고 민원을 넣은들 별무 승산이 없다고도 한다. 하긴 그 수많은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단 한건도 자동차회사 과실을 인정한 사례가 없다는 점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토대가 어떤 곳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최소한 이름 없는 소시민으로 살아가지만 약육강식의 정글이 아닌 민주사회에서 억울한 사례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