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차로 5 시간 달려가서 난임 상담을 받아보라고?

by 아젤리아

남편이 한국에서 직장과 대학원 생활을 병행할 때도 그랬고, 유학 준비하느라 퇴근 후와 주말을 모두 도서관에서 보낼 때도 그랬지만 캐나다에서 유학생 신분이 된 남편은 여가시간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고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어요. 학생 신분이긴 하지만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무슨 일이든 찾아서 하느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 틈이 없었죠. 한국에서 재산이 많았더라면 그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어쨌든 우리 형편에 셋째를 낳아 키운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한 일이었어요. 남편이 육아에 동참하기를 기대하기는커녕 제가 무슨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우리 가족 식비 정도는 부담할 수 있었어요. 다행히 남편이 방학에도 열심히 학점을 이수한 덕에 3년 과정을 2년 반 만에 마치고 풀타임 잡을 구하게 되면서 조금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죠.

남편이 직장을 구하게 된 도시는 우리가 살고 있던 토론토에서 약 4,000km 떨어진 곳에 있는 앨버타의 그랜드 프레리라는 도시예요. 가장 매섭고 추웠던 1월에 우리 부부는 일곱 살, 다섯 살 남매를 데리고 자동차로 대륙횡단을 강행하기로 했어요. 사용하던 자동차를 계속 타고 다닐 생각이어서 저희 에게는 그것이 자동차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거든요. 5박 6일 동안 하루 7~8시간을 달려 그랜드 프레리에 도착한 날 기온이 영하 40도. 이 곳의 추위는 캐나다에 온 이후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어요. 하필이면 연중 가장 추운 날에 저희가 도착을 한 것이지요. 여하튼, 남편은 새 직장에서 3월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전에 우리 가족은 약 5주간 한국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다시 캐나다로 돌아온 후 남편이 바로 일을 시작함과 동시에, 우연히 저도 파트타임 잡을 구했어요. 두 아이들도 학교에 금세 적응해 주었고 이제야 비로소 우리 가족은 캐나다에 온 이후 처음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안정감이 오래가지 않더라고요. 우리의 신분이 '외국인 노동자'였기 때문이죠. 처음에 캐나다 올 때는 영주권까지 바라보고 온 건 아니었는데 살다 보니 영주권이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남편이 주신청자가 되면 배우자인 저는 영어점수를 만들어 이민 점수에 약간의 점수를 보탤 수 있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어학공부에 전념해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려고 필요한 공부를 온라인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그즈음이었죠.

남편이 또다시 셋째 이야기를 꺼낸 때가 말이죠. 물론 그때까지 일부러 임신을 피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는 않고 있었거든요. 남편의 바람이 너무나 간절해서 함께 산전검사를 받아보기로 했어요. 패밀리 닥터를 만나 상담을 했고, 남편과 저에게 난임 전문 스페셜 닥터를 만나보라고 하더군요. 남편은 가까운 곳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저는 차로 5시간 거리에 있는 에드먼턴까지 가야 하더라고요. 남편이 주말에 장거리를 함께 다녀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했고,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셋째를 갖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도 저도 그제야 셋째에 대한 미련을 접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매달마다 규칙적이었던 생리가 오질 않는 거예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정일 5일쯤 지난 후에 임신 테스트기를 구입해서 검사를 해봤지요. 근데 이게 웬일!! 두 줄이 보이는 거 아니겠어요? 다음날 바로 패밀리 닥터한테 가서 임신 확정을 받았어요. 한국에서부터 그렇게 원했던 셋째였는데.. 둘째 출산 이후로 8년 만에 아기가 찾아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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