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 대한 시선들
조선족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우선 부정적인 시선과 생각들이 떠오른다.
이것은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들이라면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내가 처음 조선족을 접한 건 중국 유학시절이었다.
베이징에는 꽤나 많은 한국 식당이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조선족이었다.
한국어인데 우리가 쓰는 한국어와는 조금 다른, 북한말인 것 같으나 그것과는 또 다른. 그렇기에 그들이 쓰는 말을 조선어 혹은 연변어(연변 사투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그들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있다.
영화에서 묘사된 그들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초기에 만나본, 특히 아저씨들은 까만 얼굴에 비교적 마른 체형에 연변어를 구사하여 조금 무섭(?) 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과 충돌이나 나쁜 상황이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통해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여행으로 중국 대련(大连)에 갔던 날, 우리는 숙소를 정하지 않고 갔기에 기차에 내려 역을 나오던 중 호객하던 이에게 끌려 어느 호텔에 갔다. (중국어를 잘 못 하던 시절이었다) 카운터에서 만난 여직원에게 돈을 내려는 순간 한국 여권을 제시했는데(외국인 숙박 시 여권 필수) 그 여직원이 갑자기 한국어를 했다. 연변어보다는 꽤나 한국어에 가까웠다.
여기 옆에 있는 호텔에 가면 더 깨끗하고 가격이 싸요. 거기로 가보세요
갑자기 한국어를 하는 것도 당황스러웠는데 친절하게도 호갱이 될뻔한 우리를 구해주었다.
그것이 조선족에게 처음 받은 호의였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나는 중국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쪽 업계 용어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었던 나는 첫 회의 때 멘붕이 오고 말았다. 정말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 조선족 직원이 두 명 있었는데 나를 도와주었다. 정말 너무나 고마웠다. 솔직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름 열심히 배운 중국어였지만 첫 회의 때 느꼈던 자괴감은 너무 쓰라렸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정말 많이 도와주어 내 회사 생활은 나름 괜찮았다.
한 번은 연길 지역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연길 지역 매출이 좋았고 부사장님을 모시고 12월 31일에 그 지역 사장님도 뵐 겸 해서 가게 되었는데 연길 공항에 도착하니 한글이 보였다. 한두 군데가 아니라 정말 많은 곳에 한글이 적혀있었다. 이것은 비단 공항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시내에서도 어디서든 간판에 한글이 있었다. 마치 한국에 온듯한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먹은 한국 음식은 너무너무 맛있고 신선했다. 어떤 음식은 한국에서 먹은 것보다 더 맛있었다.
연길 지역 사장님은 조선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민족인 한족의 인구수는 약 92%로 56개 민족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연길 사장님은 자부심이 대단하여 그들을 조금 무시하는 듯한 발언도 하시곤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조금 뿌듯하기도 했다. 연길은 작은 한국 같았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드라마는 물론 브랜드까지 연길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나에겐 몇몇 친하게 지낸 조선족 직원들이 있다.
같이 한국음식을 먹으며 소주를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친구가 하나도 없었던 나에게는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이들이었다. 회사 동료였지만 나는 그들과 친구처럼 지냈다. 그들은 언뜻 보면 한국인 같은 외모와 치장을 하고 다녔고 마인드도 비슷했기에 정말 대하기 편했으며 말투도 연변어가 아닌 한국어를 구사했다. 어떻게 이렇게 깨끗한 한국어를 구사하냐고 물으니 드라마를 보고 배웠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표준어를 쓰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들과 더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그들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약 10명의 조선족 직원 중 그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한국에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부모님 두 분 다 한국에 있거나 적어도 한 분은 한국에서 생활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그들이 어린 시절 중국에서는 너무 낮은 월급이었기에 한국으로 넘어가 돈을 벌어 보냈고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한국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2012년쯤 중국인 직원 15명 정도를 데리고 서울에 출장 온 적이 있었는데 명동에 있는 한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고 중국어로 떠들고 있었는데 종업원 분이 다 알아듣고 있었다. 나는 정말 놀라 중국인이냐고 물으니 이 식당 사장님부터 모든 직원들이 다 조선족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 있고 정착해 살고 있는지를.
얼마 전 보았던 신문기사에서는 중국 연길에 있는 조선족의 수 보다 한국에 있는 조선족의 수가 더 많다고 했다. 정말 놀라웠다. 그 정도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외모도 한국인과 거의 똑같기에 그들이 연변어를 하지 않는다면 조선족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조선족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만, 나 또한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직접 만나본 그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물론 그들이 한국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가진 문화와 생활습관은 우리와 정말 비슷했다. 내가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중국에서 만난 그들을 통해 나의 선입견은 타파되었다. 그들을 만나면서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 타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마 전 당근 마켓으로 물건 하나를 구매했는데 젊은 조선족 부부였다.
그들이 팔려는 제품 조작법을 나에게 알려줘야 했는데 말투를 들어보니 조선족이었고 작동이 잘 되지 않아 땀을 뻘뻘 흘리며 민망해하며 알려주었다. 사실 그들은 한국에서 연변어를 쓰고 싶지 않아 한다. 그들 또한 한국에서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근 거래를 할 때 그들이 민망해할까 봐 나는 중국어로 그들과 대화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중국에 살다왔다고 하니 고향 친구를 만난 것 같다며 너무 좋아하며 연락처를 주고받기도 했다.
물론 조선족 중에 나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서울 어딘가 조선족이 모여 사는 곳엔 경찰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곳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좋은 사람들도 많다. 한국인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든 조선족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선입견이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