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중반,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면

조건 없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by 동동몬

앞선 이야기


2주 만에 연락한 그녀를 다시 만나고 그동안 연락이 없는 내가 신경이 쓰였다고 하니 나는 희망을 가졌다.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건 아니구나' 하며 말이다.


다음날부터 다시 그녀에게 연락했다.

답장은 왔지만 여전히 3시간 뒤에 왔고 답장은 길지 않았다.


그녀를 만난 다다음날 나는 출장이 있었다.

그 출장 후에 바로 해외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오후 기차를 타고 갈 예정이었는데 그녀가 나에게 기차역에 몇 시에 가냐고 묻더니 본인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드디어 내 마음을 받아주는 건가?!


그녀가 회사 앞으로 왔고 나는 택시를 타고 함께 기차역으로 향했다.

나란히 앉는 경우는 처음이라 설레기도 했다. 기차역에 도착하여 함께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녀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으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녀의 행동에서 나는 불안함을 느꼈다.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를 나눴음에도 불안함을 느꼈고 나는 그 불안함을 그녀에게 표현했다.


왠지 마음이 불안하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차 출발 시간이 다 되어갔고 나는 짐을 기차에 실어두고 마지막까지 플랫폼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출발하기 정확히 1분을 남기고 그녀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아까 불안하다고 했죠?


그 순간 그녀가 어떤 말을 할지 직감이 왔다.

내가 그녀에게 고백하려던 순간, 내가 어떤 말을 할지 그녀가 알아차렸던 것처럼 나 또한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느낌이 왔다. 듣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 안 했으면 좋겠어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한 후 황급히 기차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차는 출발했다. 그녀는 기차에 탑승하여 자리에 앉는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좌석에 앉아 창밖의 그녀를 향해 손으로 엑스를 표시했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그녀를 보일 때까지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녀를 만나는 동안 긴장이 되었는지 나는 기차를 타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니 그녀에게서 장문의 카톡이 와 있었다.


그녀가 보낸 내용은 대략적으로 그랬다.

(많은 내용이 생략됐다)


얼굴 보고 얘기하려고 했지만 얼굴 보니 도저히 말이 안 나왔어요

몇 번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성실하고 저에게 잘해주고 배울 점이 많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성적인 감정보다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에요.


우리가 만나게 되면 해외에 나가야 될 텐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는 힘들 것 같아요.


살면서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표현해 주고 마음을 주는 사람이 가족 말고는 처음이라 어떻게 말을 해야 될지 몰라, 또 그것이 상처를 주게 될까 봐 말을 못 했지만 이제는 얘기해야 될 것 같아요


이성으로썬 관계가 발전되지 않더라도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고 싶어요.



당시 나는 해외에서 한국으로 파견 나온 상황이었고 파견기간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순간 '이 사람이다'라고 느끼며 그녀를 쫓아다녔고 나이가 10살이나 차이 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느끼는 강렬한 끌림을 막을 수 없어 그녀에게 직진했다.


서른 중반인 나는 연애도 하기 전에 그녀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했으니 그녀 또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진지했고 그 진지함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랬기에 10살 차이 나는 '아저씨'가 자신에게 너무나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니 적어도 장난이 아님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더 밀어내려고 했을 것이다.


만약 나의 마음을 받아준다면 결혼을 허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녀도 알았을 것이다.

나는 해외의 본사로 다시 돌아가야 했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현재의 자신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거다. 또 자신이 공부하고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을 한국에서 이뤄야 하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나는 충분히 이해했다.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아마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취직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 만나는 이들이 한정되고 대부분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했던 이들도 결국은 소개팅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나처럼.


20대 때의 소개팅과 30대의 소개팅은 차이가 크다.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 데다 서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마냥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를 보기보단 조건을 따지게 된다. 즉, 가슴이 아닌 머리로 상대방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 또한 아홉 번의 소개팅을 하면서 상대방의 조건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그 이상의 관계가 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내 마음이 끌리는 사람과 만나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를 처음 만나고 그녀의 배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 미친 듯이 끌렸다. 공시생이었기에 그녀는 취업도 하지 않았고 모아둔 돈도 없었을 것이며 집안이 어떤지도 전혀 몰랐지만 그저 그녀가 좋았다.


그녀를 알게 되면서 오랜만에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써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마치 처음 연애를 했을 때나 할 수 있는, 정말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그녀를 좋아했다. 스스로도 아직도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며 놀랐다. 모든 걸 다해주고 싶고 모든 마음이 그녀를 향해 있어 하루종일 그녀 생각만 했다.


그랬기에 그녀가 나를 아무리 밀어내더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밀어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 직진해고 올인했고 정말 태어나 처음으로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끝이 어떻게 되든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쉽지만 그런 나의 마음과 그녀의 마음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 장문으로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에게 여러 차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내가 워낙 적극적으로 하다 보니 그녀도 그런 나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그녀를 놓아주기로 했다.

처음 그녀를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에 대한 감정과 나의 모든 생각들을 메모장에 적었다. 그리고 기차가 도착하여 숙소까지 가는 그 시간까지 몇 번이고 고치고 다시 고쳤다. 두 시간 반 동안 그녀에게 쓴 내용을 카톡으로 보냈다.



'연애는 매 순간이 기적이다'


내가 너의 연인이 되길 간절히 원했고 그 이상의 단 한 사람이 되길 진심으로 바랐는데 역시 이 모든 건 타이밍과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되는구나.


너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고 내가 생각해 오던 완벽한 여자였어


'이 사람이다'라는 감정을 처음 느껴봐 내 마음을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오픈해 버렸던 게 후회스럽기도 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너무 퍼주기만 해서 쉽게 질려버렸나 후회도 하지만 최선을 다해 널 좋아했기에 오히려 후회가 없는 것 같아. 누군가에게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렇게 까지 좋아한 건 내 인생에서 처음이야.


그래도 나랑 편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고 싶다고 하니 위안이 되는구나. 오빤 지금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을 테니 언제든지 연락하렴.


겨우 한 달이었지만 내 모든 것들이 너를 향해 있던 그 시간들이 참으로 기뻤어.



많은 내용들이 생략되었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한 달이었다. 겨우 한 달인데 마치 1년 같이 긴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 그녀가 나와 편하게라도 지내고 싶다는 말에 위안이 됐다.


내 카톡을 읽은 그녀로부터 한참 뒤에 답장이 왔다.


내가 보낸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며, 이 정도로 나를 좋아하는지 몰랐다며 더 놀라는 눈치였고 두서없이 글을 써서 보낸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또한 내가 보낸 내용을 보며 앞으로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해외여행을 떠났다.

몇 차례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는데 회사에 나의 택배가 왔다는 것과 여행은 어떠냐는 정도의 간단한 안부였다.


해외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그녀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녀의 생일을 빌미로 그녀에게 한달만에 연락을 했다. 그녀는 생일 축하한다는 메세지에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당시 나는 서울에 있었고 그녀를 만날수는 없었다. 예전보다는 답장을 빨리 보냈고 그녀도 꽤 많은 말을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하니


다음에 얼굴보고 이야기 해줘요


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정말 편하게 대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로부터 몇일 뒤, 서울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고 친구와 동네에서 술을 한잔하고 있었다.

친구는 그날따라 일찍 가야겠다고 했고 술이 살짝 오른 나는 집에 걸어가는 길에 그녀 생각에 용기 내어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뭐해?

친구랑 한잔하고 있어요


술이 오른 나는 더 용기를 내어보았다.


아, 그렇구먼 집이면 한번 보려고 했는데


술김에 질렀다.


저 좀 있다가 끝날 것 같은데 볼까요?


당시 이미 9시가 넘었기에 마치고 언제 온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알겠다고 했지만 인사치레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접고 있었다.


집에 가서 씻고 잘 준비를 했다.


위이이이잉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음 이야기


keyword
이전 08화10살 어린 사람을 좋아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