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어린 사람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by 동동몬

앞선 이야기


그녀의 생일날.


취기가 살짝 오른 상태에서 용기 내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고 나중에 보자는 말만 남긴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잘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어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제 끝났어요~ 어디로 갈까요?


이미 잘 준비가 다 끝났고 어디 나가기도 애매했다.

만약 나오라고 한다면 다음에 보자고 하려고 했는데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정말 의외였다. 내가 사는 곳에 온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를 밀어내던 사람이 나의 집으로 오겠다니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그녀가 왔다.

처음으로 둘이서 한 공간 안에 있었다. 그녀도 술을 조금 마시고 왔고 2차 느낌으로 나와 한잔 더 했다.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그동안 어찌 지냈는지 나의 여행은 어땠는지 정도였고 그녀는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들어버렸다. 엎드려 자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다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그녀를 깨워 집으로 보냈다.


그 뒤로 나는 매일 그녀에게 연락했다.

며칠 뒤에 또 우리 집으로 왔고 같이 밥도 먹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나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나를 밀어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도 편하게 그녀에게 내 마음을 표현했다. 그녀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시내에 나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어느덧 봄이 되었고 벚꽃이 멋들어지게 피었다.

언젠가 나의 연인이 생기면 꼭 벚꽃 아래에서 손 잡고 걸어야지 했는데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그럴 기회가 왔다. 벚꽃이 수없이 피어있는 공원 한복판을 걸었다. 따스한 날씨, 맑은 하늘 그리고 벚꽃 아래 그녀와 함께. 사진도 많이 찍고 자전거도 탔다. 그녀와 함께 걷는 동안 그녀의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느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기에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도 싫지 않은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을 잡은 만큼 그녀의 마음도 잡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연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일 만나고 매일 연락했다.


벚꽃 데이트를 한지 약 2주 뒤, 그녀는 정식으로 나와 연인이 되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미 그녀와 연인이 된 것처럼 느껴졌기에 대단한 감동은 없었지만(벚꽃 데이트날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그녀가 거부하지 않는 걸 보고 마음을 얻었다고 확신한 것 같다.) 어쨌든 그녀가 먼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날 그녀를 집에 보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로부터 처음으로 '하트' 이모티콘을 받았다.


하트를 보내는 사람은 아마 각자 의미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하트는 굉장히 큰 의미였다.


고등학생 때였다.

남학교라 그런지 여자 선생님의 비율은 약 1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중 꽤나 미인이셨던 생물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수업시간엔 반 친구들이 항상 난리였다.(전교생이 난리였다) 남학생들의 짓궂음이라고 할까. 그런 남학생들의 난리 속에서도 대처를 잘하셨고 아무도 그 선생님께 함부로 하지 않았다. 짓궂음이 있음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할까. 그래서 그 시간만큼은 다들 즐겁게 공부했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이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여러분들, 함부로 하트 날리지 마.
하트가 무슨 뜻인지 알아? 심장을 뜻하는 거야.
심장은 하나밖에 없지? 그런데 그 심장을 아무나한테 줘도 되겠어?


그 말을 듣고 하트를 절대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결혼하게 될 단 한 사람에게만 주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


이제 나도 '하트'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그녀를 처음 만난 지 약 6개월 만에 드디어, 그녀의 마음을 얻었다.



그녀의 시험까지는 3달이 남았다.

그동안 나는 열심히 외조했다. 그녀가 밥을 잘 챙겨 먹을 수 있도록 먹거리나 간식거리를 독서실에 가져다주었다.


연애가 시작된 지 2주 정도가 지났을 때쯤 그녀가 나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엥? 갑자기 웬 여행??


부모님이 여행 가신다며 그때 나와 바람 좀 쐬고 싶다고 했다.

여행 계획은 기가차게 잡는 나였기에 즐겁게 여행계획을 잡았고 1박 2일로 근교에 바닷가가 있는 리조트를 예약했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았기에 여유가 있었는데 나는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로포즈를 하면 어떨까?


사실 나는 프로포즈를 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 했던 사람이다.

오글거려서 못하겠다는 주의.



Propose

제안하다. 청혼하다.



우리나라의 프로포즈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도 했다.

말 그대로 나와 결혼해 줄래?라는 제안 혹은 청혼을 하는 건데 양가집 인사 다 하고 결혼식 날 다 잡아두고 하는 프로포즈는 엎드려 절 받기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이런 이벤트성 프로포즈는 내 생에 절대 없으리라 생각하던 나였다.


그녀의 마음을 얻고 난 뒤에 더 적극적으로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지만 그녀가 확실히 동의한 적도 없었고 무엇보다 자신은 취직하여 돈을 어느 정도 모으고 결혼하고 싶어 했다. 내가 벌어둔 돈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모든 비용은 내가 다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절대 반대했다. 팔려가듯이 결혼하지 않겠다며.


그녀의 뜻은 완고했고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선을 그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확정 짓고 싶었다.

나와의 결혼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말이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았다. 특히 여자 지인들이 있는 단톡방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모두, 하나같이 반대했다.


사귄 지 한 달 만에 프로포즈라니요?!
여행 가서 그냥 재밌게 놀다 와요 부담 주지 말고.


다들 이런 분위기였다.

아직 시험 치기 전이고 결혼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기에 조심스럽긴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기회에 해야 되겠다 싶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그녀와 언제 또 이런 여행 갈 기회가 있겠으며 내가 가자고 한 여행이 아니라 그녀가 가자고 한 여행이었기에 내가 프로포즈를 준비한다고 눈치챌리도 없었다.


그날부터 나의 폭풍검색이 시작되었다.

유튜브, 블로그에 다들 어떻게 프로포즈를 했는지 검색하였으며 여자들이 좋아하는 프러포즈는 어떤 형태인지도 검색해 보았다. 유부녀인 지인들에게도 물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프로포즈는 대단히 화려한 프로포즈였다.

값비싼 장소를 빌려 꽃길을 만들고 돈을 들인 이벤트, 비싼 음식, 다이아반지와 꽃을 준비하여 많은 이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와 결혼해 줄래? 하면 여자는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크읏... 감동하며 끄덕끄덕 오케이 하며 남자가 여자를 끌어안는....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못 할 것 같다.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해야 한다.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딱 한 사람의 조언이 굉장히 와닿았다.

그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그분은 남자친구와 결혼생각이 없었는데 어느 날 남자친구 집에서 영화를 보다가 남자친구가 화장실을 간다더니 갑자기 꽃과 반지를 가지고 와 프로포즈를 했단다. 생각지도 못한, 또 진심이 담긴 프로포즈여서 자신은 그날부로 그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단다.


그런 프로포즈에 감동을 했다고요?


화려한 프러포즈만 생각했던 나는 그분으로부터 들은 프러포즈 이야기에 의아했다. 그분은 실제로 여자들은 이런 프로포즈를 좋아한다고 했다. 하... 미디어의 문제인 건가 나는 왜 지금까지 초대형 프로포즈만 생각한 거지? 흔히 인터넷에서 떠도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로포즈하는 건 정말 말 그대로 극혐이라며 도망가고 싶을 거라고 했다.


그분은 영화 '어바웃 타임'의 프로포즈 장면을 추천했다.

나도 분명 그 영화를 보았다. 내 기억에 그렇게 재밌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리고 프러포즈 장면은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천을 하니 일단 찾아보았다.


엥?? 이런 게 프로포즈라고??


자고 있는 여주인공을 깨워 결혼해 달라고 하는 정말 프로포즈 같지 않은 프로포즈였는데 이런 걸 나보고 참고하라니...? 도대체 지금까지 내가 알던 프로포즈는 뭐였단 말인가.


그리고 그분이 한마디 덧붙였다.


결혼할 마음이 애매할 때, 프로포즈로 확실하게 잡으세요.


사귀지 겨우 한 달도 안돼서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결혼할 마음이 있죠?



그럼 지금이 딱 좋아요. 당장 프로포즈해서 그녀의 마음을 잡아요.


모든 이들이 반대한 프로포즈였지만 딱 한 사람만이 찬성했고 매우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자신도 결혼생각이 전혀 없다가 남자친구의 프로포즈로 결혼하게 되었기에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 준 것이라 나는 꽤나 신뢰가 갔다.


나는 그분의 경험과 조언을 토대로 프로포즈를 준비하기로 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진심이 담긴 그런 프로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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