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녀의 부모님은 겨우 16살 차
앞선 이야기
10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 그녀, 그리고 어머니의 차가운 반응에 그녀는 마음이 쪼그라들어버렸다.
그녀는 프로포즈를 받았고 결혼하겠다고 마음까지 먹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이 날 이후로 그녀는 부모님께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집안이 뒤집어졌다.
공부하라고 용돈도 적게 주고 독서실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더니 연애를 한다고??
그것도 10살 차이 나는 아저씨랑?!!
아저씨라....
뭐 아저씨긴 하다.... 나 군대에 있을 때 그녀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으니....
다른 것보다 부모님의 실망감이 너무나 컸다.
그녀는 공시생이었고 주변의 누군가는 시험에 합격했고 취직했다. 반드시 합격하리라 믿었던 항상 믿음직한 큰 딸이었기에 그 실망감은 너무나 컸다. 거기다 연애도 아니고 결혼을 하겠다고 하니 분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나이가 10살이나 많으면 공부하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 할 망정 연애질을 해?!!
그녀의 여동생이 나를 만나봤기에 괜찮은 사람이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부모님을 진정시켰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부모라도, 아니 내가 친구라도 화가 날 법도 했기에 충분히 이해됐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녀의 시험이 끝났고 가채점을 해보니 합격하기에는 어렵다는 결론이 났다.
사실 나 때문에 그녀는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랬기에 부모님의 분노는 더욱 컸다. 그런 와중에 나는 몇 달 전부터 그녀가 시험 친 바로 다음날, 그녀의 부모님을 뵙겠다고 했었고 그녀도 동의했기에 바로 부모님과의 약속을 잡았다.
전날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가 해외에서 잠깐 파견을 나왔던 상황이라 여러 방면으로 의심을 하셨다. 혹시 해외에서 이미 결혼한 것은 아닌지, 이미 애가 둘씩이나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나이도 사실은 10살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은 아닌지 그 회사 사람이 아닌 건 아닌지.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어머니와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며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에 신분증, 명함, 사원증, 여권을 챙겨 오라는 당부까지 했다.
나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모두 준비했다.
또 두 분께 드릴 꽃바구니와 선물을 예쁘게 포장해서 미리 준비해 두었다.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는 당일이 되었다.
어릴 때, 여자친구의 부모님. 아니, 나와 결혼하게 될 사람의 부모님을 찾아뵙는 순간을 참 많이 상상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차태현이 전지현의 집에 가 그녀의 아버지와 소주를 한잔 마시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했고 정장 입고 꽃바구니와 과일바구니를 양손 무겁게 들고 찾아가 무릎을 꿇고
딸을 저에게 주십시오!!
라며 이야기하는 상상도 했었다.
그런 상상만 하던 날이 현실로 다가오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물론 두 분이 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예상치 못 했다만...
12시에 식당에서 뵙기로 했고 나는 조용한 룸을 미리 예약을 해뒀다.
한 시간을 먼저 가 앉아있었고 신용카드를 미리 카운터에 맡겨두었다. 12시 30분쯤 되면 더 이상 주문은 없을 테니 그때 미리 결제를 해달라고 부탁해 뒀다. 11시 30분이 되어 그녀가 왔고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듣자 하니 그녀는 부모님께 크게 혼나고 왔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참 온화한 분이셨는데 그날만큼은 정말 불같이 화를 내셨다고 한다.
조용조용하신 분임에도 큰소리를 내시며
그런 정신 나간 놈을 내가 왜 만나야 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라며 노하셨고 그녀의 어머니는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박차고 나올 거야!
라며 엄포를 놓으셨다고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자신감이었다.
두 분이 노하시더라도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당신의 딸을 제가 잘 '모시고' 살겠습니다 라는 태도, 그리고 노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당신의 딸이 너무 좋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며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 분명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예의를 지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었다.
몇 달 전부터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 뵈면 어떤 질문을 하실지 예상 질문들이 떠오를 때마다 휴대폰 메모장에 대답할 내용들을 미리 적어놨고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서 미리미리 메모해 두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를 진정시키고 있으니 시간이 다되어갔고 정확히 12시가 되자 두 분이 들어오셨다. 사진으로만, 그녀의 이야기로만 뵙던 두 분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먼저 준비한 꽃바구니를 그녀의 어머니께 드렸고 선물을 아버지께 전달하려고 하는데 아버님이 받지 않으셨다. 하아... 정말 식은땀이 주르륵 났다. 손이 민망해졌다. 나는 당황하지 않으려 웃음을 지으며 선물을 그녀의 어머니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다행히 어머님은 받아주셨다. 오늘 쉽지는 않겠다 싶었다.
어머님이 그나마 이런저런 말씀을 걸어주셨다.
아버님은 단 한마디 말씀도 없이 맞은편에 앉은 나를 쳐다 보고 계셨다. 아니, 노려보고 계셨다는 게 더 정확하다. 눈을 한 번씩 마주치면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계셨기에 나는 어머님을 보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를 신경 쓸 정신조차 없었다.
아버님은 나의 말투, 태도, 표정 등 모든 것을 파악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뭔가 하나 꼬투리가 잡히면 모든 게 틀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음식이 나왔지만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긴장이 돼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도, 그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아버님은 먹으면서 이야기하자며 숟가락을 드셨지만 세 사람 모두
입맛이 없어요...
라고 했다.
그러니 아버님도 숟가락을 놓으셨다.
나는 분위기를 조금 바꿔보려고 준비한 명함, 신분증, 사원증, 여권을 꺼내 보여드렸다.
어머님은 진짜 준비했냐며 농담이었다며 호호 웃으시면서 하나하나 살펴보셨다. 신분이 명확해지니 안심이 되셨는지 분위기는 한층 좋아졌다.
약 30분 간 어머님과 나의 대화였다.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버님은 도무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딸을 데리고 가겠다고 나타난 놈을 바라보는 아버지... 나는 딸이 없지만 그 마음이 어떨지 몇 번이나 상상해 봤었다. 정말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딸을 가진 친구들은 절대 결혼 안 시킨다 라는 이야기하는 걸 보면 그 소중함이 어느 정도인지 감히 상상이 된다.
그랬던 아버님이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자네 꿈이 뭔가?
30분 만에 처음으로 꺼내신 말씀이었고 평소 말씀이 적으신 분이고 진중하신 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이 한 번의 질문에 대한 답은 정말 중요했다.
나는 군대를 전역하던 날 어머니, 아버지가 이혼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후 한동안 두 분의 이혼을 숨기고, 부끄러워하며 살았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 사이가 좋은 것을 그다지 보지 못했고 나는 집이 편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은 항상 불안했고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언제 화를 낼지 모르는 아버지가 항상 무섭기만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우리도 커가면서 가족과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나와 동생이 모두 출가하면서 네명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해외에서 일을 하다 가끔 출장이나 휴가로 한국으로 돌아오면 나는 주로 아버지 집에서 잤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집에서 자는 걸 싫어했기에 어머니 집에서 잘 수 없었고 나는 그 어디에도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서른이 지나면서 결혼하는 친구들 그리고 잘 사는 친구들 혹은 이혼하는 친구들, 주변에 여러 상황들을 보고 들으면서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친구가 결혼 1년 만에 이혼하는 과정을 보면서 내가 선택하여 꾸린 가정이 편하지 않았을 때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 보았다. 결혼은 절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되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멜로영화에서는 결혼하면 끝이지만 현실은 결혼이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의 시작이 아무리 좋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좋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부부의 행동 하나, 말투 하나 자식에게 영향을 끼친다.
나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님의 다툼을 여러 차례 보았기에 나 또한 행복하지 않은 가정을 꾸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의 다툼으로 인해 불안에 떨며 울었던 나의 어린 모습을 기억하며 내 아이에게는 절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내가 잘해야 했다. 상대방도 잘하면 좋겠지만 내가 잘하면 상대방도 노력하리라. 적어도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것들은 하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만나던 사람에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모습을 내가 하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날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하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음을 많이 고쳐먹었다.
이제 내가 정말 사랑하고, 평생 함께하고픈 사람이 생겼다.
나는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행복한 집의 공통점은 엄마가 행복했다. 즉, 여자가 행복한 집이 행복한 가정이기도 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나의 꿈이 무엇인가 물어보았다면 나는 사회적인 성공,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저의 꿈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입니다.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버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후로도 아무 질문도 하지 않으셨고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정말 딱 한 시간 동안 두 분과(사실은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님은 단 하나의 질문만 하셨고 나머지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셨다. 정확히 한시에 두 분은 집으로 가셨다. 아버님이 계산서를 들고 계산하러 나가셨지만 내가 미리 맡겨둔 카드로 카운터에서 이미 결제는 끝난 상황이었다. 그렇게 두 분과의 첫만남이 끝났다.
두 분을 보내고 나와 그녀는 긴장이 풀려버렸다.
입맛이 없어 먹지 못한 밥은 다 식어있었고 우리는 긴장이 풀리면서 허기가 져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그녀는 동생에게 연락하여 부모님이 돌아오시거든 뭐라고 하시는지 듣고 빨리 연락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밥을 다 먹고 디저트를 먹으러 간 사이 그녀의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무 마음에 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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