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시키려는 예비장인어른과 시키지 않으려는 아버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이야기

by 동동몬

앞선 이야기


그녀의 부모님이 나를 만나기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지만, 한 시간 동안의 만남은 이 상황을 역전시켰다.


그녀와 나는 얼싸안고 좋아했다.


아빠는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고함을 지르며 나한테
그 녀석은 마이너스 100점부터 시작한다고 이야기하더니....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화를 10년에 한 번 내신다는 그녀의 아버지다.

나를 만나기 직전까지"그 녀석은 -100점이야!!"라고 하셨던 그녀의 아버지는 괜찮은 녀석이라고 하셨다고 하니 100점짜리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니었다. 그 뒤로 그녀의 아버지와 나는 몇 차례 독대를 하고 술을 한잔 하기도 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네 꿈이 뭔가라고 물어봤을 때 자네가 했던 대답 말이야.
내가 듣고 싶었던 것 그대로였네.
그 뒤로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없더라고.


예비장인어른은 나의 대답이 만족스럽다고 하셨다.


행복, 그거 하나면 된다.
부모로서 자식이 행복하게 산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게 효도하는 거다.


예비장인어른은 자신의 딸 행복하길 바라셨다.


그것만큼은 꼭 지키겠습니다.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가끔 그녀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두 분은 나를 정말 사위로써 받아들여주셨다.

그녀의 부모님으로부터 허락만 받으면 이 결혼의 모든 것이 순조로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약 15년이 지난 시간.

이제는 그나마 부모님의 이혼이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와 결혼할 때 이것이 큰 문제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웬만하면 가족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 머무는 곳도 '아버지집', '어머니집'이라고 표현했지 '우리 집'이라고 표현하지도 않았고 모두 따로 떨어져 살았기에 '가족'의 따스함과 소속감을 잊은지 오래였다.


반대로 그녀는 너무나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아들이 둘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삭막했다. 아들이 둘이라서 라기 보다는 아버지의 성격에 의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항상 집안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었다. 반대로 그녀는 딸 둘이라서 그런지 집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했고 가족 간에 많은 대화가 있었다. 또, 항상 아침은 같이 먹고 주말 하루는 함께 보냈으며 새해와 크리스마스도 '가족의 날'이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나와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부모님을 뵙기도 전에 두 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정말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화목한 가정에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스무 살 넘어 이혼하셨으니 이혼가정에서 자랐다고 하기에는 사실 좀 애매하다) 나를 받아주실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그녀가 이런 이야기도 한 적이 있다.


엄마, 아빠가 절대 이혼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랑은 결혼 안 했으면 하셨어


그녀가 어릴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했다.

그 이유는, 분명 부모님 이혼의 풍파 속에 본 것들이 자신의 결혼 생활에 나타난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맞는 말이다. 나 또한 안 그러리라 굳게 마음먹고살았지만 언젠가 내가 만나던 사람에게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와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을 결정했다.

어쩌면 나는 하자가 많은 남편감이자 사윗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첫 만남에 결혼을 허락하셨으니 나는 참 복 받은 놈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 상관없다고 하셨다.


자네의 잘못은 아니지 않나.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저 나는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면 그녀의 부모님을 나의 부모님과 똑같이 모셔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오래전 나에게


너의 엄마를 너의 결혼식에 오게 할 생각이 없다.


라며 엄포를 놓으셨다.


용납할 수 없었다.

두 분의 이혼 속에 내가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알면서도 나의 결혼식에 나를 낳고 키운 어머니를 못 오게 하려고 하다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두 분이 이혼한 것만으로도 상처는 충분했다. 그 이상은 안된다.


사실 아버지는 이미 재혼한 상황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재혼한 그분과(아직도 호칭은 없다. 솔직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꽤 사이좋게 지냈다. 한국에 갈 때면 항상 그분의 선물을 사가기도 했다.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분이 나의 결혼식에 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어머니가 힘들게 우리를 키웠고 아직 건강하게 잘 계셨기에 나의 결혼식에 앉아야 될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 자리에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앉는다는 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진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으니 아버지와 이 문제에 대해 대면해야 했다.

아버지는 보수적인 사람이었고 화가 많은 사람이었기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히 보였고 역시나 아버지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수년이 지났음에도 아버지의 뜻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나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둘 중 한 사람은 꺾여야 끝나는 문제였다.


그녀를 보여주지도 못 한채 아버지와 한동안 신경전이 벌어졌고 이 사실은 그녀의 가족 귀에도 들어갔다.

상견례를 해야 했지만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 민폐다. 자신을 딸과 결혼을 승낙했는데 집안 문제로 상견례도 못하다니. 나의 어머니와 동생조차 나 같으면 결혼 안 시킨다 할 정도였다. 진짜 나 같아도 그랬겠다 싶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이 원하는 결혼을 지지해 주셨다.


예비 장인어른은 나를 불러 아버지를 잘 설득해 보라고 이야기하셨고 몇 번이고 찾아가 대화를 시도해 보라고 하셨다. 사실 아버지는 절대 자신의 뜻을 굽이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이고 찾아가 봤자 결과는 비슷하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몇 번을 찾아가도 똑같은 대화만 오갈 것이고 내가 꺾여야 끝이 나는 문제라는 것도 알았지만 예비 장인어른의 말씀을 거역하고 싶지 않았기에 눈물을 머금고 몇 번이나 찾아갔다. 결론은 모두 나의 예상대로였다.


그 뒤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여차저차해서 상견례를 하게 되긴 했지만 아버지는 여러 차례 예비장인어른과 따로 만나며 어머니와 나의 외갓집에 대한 험담을 했다. 그것을 빌미로 어머니와 외갓집 식구들을 내 결혼식에 못 오게 하려고 했지만 예비 장인어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참 꿋꿋한 분이다. 아버지는 이런 방식으로도 통하지 않자 결국 예비 장인어른에게 나에 대한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예비장인어른에게 자기 자식 험담을 하다니.


이건 결혼을 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너를 파괴하겠다는 아버지.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를 좋은 아버지라 생각했다. 성격이 그렇게 괴팍하고 화가 많아도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고함질러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예비장인어른을 만나고 나에 대한 험담을 한 것을 안 다음날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고 나는 아버지의 어이없는 말에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지금까지 너에 대해서 그 어떤 선을 넘지 않았어!!


나는 아주 심하게 넘었다고 생각했다.


예비장인어른한테 자식 욕을 하는 게 선을 넘지 않은 겁니까?!!!


이 전화를 끊은 후 아버지는 예비 장인어른에게 전화를 걸어 나에 대한 험담과 더불어 예비 장인어른에게도 결례를 범했다고 전해 들었다.


결혼을 겨우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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