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어린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 오랜 꿈을 접다

다음 꿈은 당신과 함께

by 동동몬

앞선 이야기


나에겐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직장의 문제였다.


나는 해외에서 일을 하며 그곳에서 10년간 생활했다.

그곳에서 아마 평생 살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곳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무려 대학생 때부터.


어쩌다 운 좋게(?) 한국에 파견을 나왔다가 6개월 만에 돌아가야 했는데 한국의 회사에서 나를 좀 더 있다가 가면 좋겠다고 붙잡았고 6개월 더 파견기간이 연장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코로나가 창궐했고 그녀를 만났다. 코로나로 인해 행사가 있을 때 마다 복귀했던 해외본사에 갈수 없었고 돌아가면 완전히 돌아가거나 아니면 한국에 있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본사에서도 내가 한국에 있는 것이 비즈니스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파견기간을 1년 더 연장시켰다. 그런 와중에 나와 그녀의 결혼은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결혼하고 나의 거취였다.

처음에 그녀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 이유는 내가 해외의 본사로 돌아가야 하는 것도 한몫했다. 그녀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의 부모님과 결혼이야기가 오갈 때 바로 해외로 가기보다 1년 정도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두 분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러나 본사에서는 나의 복귀를 원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맡은 파트의 매출이 올랐고 그전까지 나 혼자 모든 일을 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내가 맡은 파트를 팀으로 만들기 위해 인원을 확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본사로 복귀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문제였다. 코로나는 여전히 심한 상황이었기에 상황을 보고 복귀시키겠다고 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영원히 한국에서 파견자로 상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었다. 사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전망과 비전은 정말 좋았다. 회사는 점점 커져가고 있었고 그 나라에서 업계 1위까지 올랐으며 지속적인 투자와 발전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곳에 있기만 해도 좋은 커리어를 가질 수 있었고 연봉도 두둑이 받을 수 있었다. 나의 꿈이 그곳에 있었기에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사실 이 거취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우선 신혼집이었다. 파견자로 몇 년을 더 있을 수 있다면, 아니 1년이라도 더 있을 수 있다면 회사 근처에 신혼집을 차리면 됐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본사에서는 정확하게 나의 거취에 대해 결정 내리지 못하고 있었고 결혼식 날짜 두 달 뒤 정도에나 결정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도대체 어디에다 신혼집을 차려야 할지 막막했다.


이런 상황을 보시던 예비 장인장모님은 너희 둘 마음 말고는 정해진 게 하나도 없지 않냐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아버지를 설득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내 직장 거취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정말 복잡한 상황이었다. 결혼식을 한 달 좀 더 앞두고 결혼식장 정해둔 것 외에는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결국 한국으로 완전 복귀를 결정했다.

우선 이직할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나는 지방에 있었는데 내가 다니던 업계는 모두 수도권에 몰려있었기에 서울이나 수도권에 이력서를 몇 군데 넣었다. 그러나 연봉이 높아서 맞추기 힘들다는 답변이 왔다. 해외에서 나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 사람들을 보았기에 내 연봉이 낮다고 생각했는데 높은 편이라니. 사실 나는 한국의 연봉 체계를 잘 몰랐다. 자신의 연봉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차장이 높은지 부장이 높은지 직급 체계도 잘 몰랐다. 결국 나는 연봉을 낮춰야만 했다. 몇천만 원이나. 그렇게 최종적으로 면접을 본 곳에서 합격 통보를 해왔다.


합격과 동시에 해외 본사에 퇴사 신청을 했다.

10년간 다닌 회사. 이 회사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좋은 시기를 보냈는데 참 아쉬웠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결혼은 직장보다 더 중요했다. 서른 중반까지 아홉 번의 소개팅을 하면서도 내 짝을 찾지 못했고 이러다 정말 결혼 못 하는 거 아닐까 하는 나에게 나타난 운명의 그녀였다. 나는 꼭 그녀를 잡고 싶었고 모든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그녀를 쫓아다녔다. 그리고 그녀의 동의와 그녀의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냈다. 그녀는 내 남은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였기에 나는 대학생 때부터 꾸던 꿈을 접기로 했다.


사실 그녀를 만나면서, 그리고 결혼을 생각하면서 내 인생의 꿈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꾸던 그 꿈은 어쩌면 내 개인적인 커리어의 꿈일 뿐이었다. 10년간 회사를 다니며 그 꿈에 어느 정도 가까이 도달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연봉을 수천만 원 낮춰야 했지만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이직이 결정 나고 우리는 급하게 서울로 올라가 신혼집을 구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10평짜리 오피스텔 원룸이었다. 그녀가 부모님과 살고 있는 자신의 방보다도 작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시작해야 했다.


아버지와의 문제 그리고 직장의 문제로 여러 가지 복잡했던 상황들이 결혼식 3주를 앞두고 모두 해결되었다.

우리는 그제야 청첩장을 만들어 돌릴 수 있었다.


이제 결혼식만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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