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결혼이란 걸 하는구나
앞선 이야기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아버지와의 문제로 청첩장을 못 만들던 우리는 그제야 청첩장 인쇄를 했다.
결혼식을 3주 앞두고 돌린 청첩장이었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 후 연락하지 않았다.
청첩장을 돌릴 때 예비 장인어른이 나를 부르셨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청첩장은 드리는 게 어떤가?
자신에게 결례를 범했음에도 다시 한번 아버지를 찾아가라는 예비 장인어른의 말씀이 감사했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결과는 항상 뻔하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청첩장을 종이 가방에 넣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버지에게 갔다.
아버지 집 앞에 섰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철컥 문을 열었다. 들어가니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고 나를 보더니 왜 왔냐는 눈빛을 보냈다.
청첩장 가지고 왔어요
버럭버럭 화를 내더니 청첩장이 든 종이 가방을 내동냉이 쳤다. 그것도 두 번이나.
나에게 욕을 하면서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역시 예상했던 반응이다.
나는 이제는 내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기에 바닥에 널브러진 청첩장을 주섬주섬 주웠다. 그리고 집 밖을 나왔다.
후... 드디어 끝났다.
이제 기분 좋게 결혼하자.
이제 3주 남은 결혼식만 잘 준비하면 된다.
결혼식 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막상 결혼하려니 해야 될 일이 너무나 많았다. 다행히 그녀가 리드해 준비했기에 나는 잘 도와주기만 하면 됐다. 결혼 준비는 그녀가 원하는 것 모두를 다 해주었다. 그녀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에 이것저것 하고 싶어 했다. 결혼식 준비에 필요한 자금은 그녀에게 모두 맡겼고 신용카드와 필요한 현금을 모두 넘겨주었다.
나는 그녀와의 연애시절부터 그녀의 씀씀이를 지켜보았다.
알뜰했고 과소비를 하지 않았다. 주식을 한다기에 소정의 금액을 그녀에게 줘보았는데 수익을 꽤나 올려왔다. 많이 오른건 400%나 올랐다. 사실 나는 재테크 방면에는 꽝이었기에 배우자가 나보다 그 방면에 잘한다면 맡기려고 했다. 결혼식을 전후로 그녀에게 모든 경제권을 넘길 생각을 했다.
코로나가 한창이었음에도 내가 결혼하려던 시기는 그나마 소강상태였고 다행히 사회적 거리 두기가 많이 풀리는 시기여서 결혼식에 50명도 없었다.
결혼식 날 당일.
맨 첫 타임의 결혼식이라 새벽부터 메이크업 준비를 하러 갔다. 11시 결혼인데 새벽 5시 반까지 도착해야 했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메이크업이라 어색했다. 다들 이렇게 결혼식을 했구나 싶었다.
그녀는 메이크업과 더불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으니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 같았다.
나 또한 메이크업을 받고 턱시도를 입으니 나름 멀쩡(?)해 보였다. 이제 결혼식장으로 이동할 시간, 이때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결혼식장에 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운전도 조심조심하고 도착해서도 긴장이 돼서 정신줄을 잡느라 힘들었다. 외가식구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고 메이크업 후에 나타난 우리를 반겼다. 가족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10살 차이 신랑신부.
하객들의 나이 차이도 꽤나 많이 났다. 친구들은 나를 도둑놈이라고 놀려댔고 대단하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반대로 그녀의 지인들은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사실은 아무것도 없...)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10살이나 많은데도 이렇게 일찍 결혼한단 말인가? 이런 시선이라고 할까. 10살 차이의 결혼은 그런 많은 시선과 생각들이 오가는 듯했다. 그저 '이 사람이다'라는 감정을 느끼고(그녀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 것 뿐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가장 사회적 거리 두기가 많이 풀린 시기였기에 생각보다 많은 하객들이 왔고 그들 속에 양가 어머니들의 화촉점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가 버진로드 위에 섰다.
이 자리에 서니 그녀를 만난 순간부터 결혼하기 까지의 모든 상황들이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무엇 하나 쉬운건 없었다.
음...
얼마나 힘들게 선 이곳인가.
나의 집안 문제로 그녀의 가족들이 받아야 했던 고통... 참으로 미안했다. 행복해야 될 결혼식이 불행하게 진행될 뻔했다. 이제 모든 게 정리되었고 앞으로 나가면 된다. 내가 잘해야 한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넓은 공간에 조명은 나에게만 비치고 있다.
내가 주인공이 되었다. 사회자인 친구가 외쳤다.
신랑입장!
앗싸~!!!
나는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걸어갔다.
사실 그녀가 나에게 퍼포먼스 하나를 해달라고 했는데 어르신들도 많이 오신 자리에서 촐랑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 생각난 나름의 퍼포먼스였다.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정면에서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나에게 올 준비를 하고 있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어릴 때 부터 항상 생각해 보았다. 어떤 사람이 나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룰 것인가. 어떤 여자가 나와 평생함께 늙어갈 것인가. 어떤 이가 내 아이에 엄마가 될 것인가.
지금 이 순간, 긴 시간을 생각만 해오던 상상속의 결혼상대가 현실이 되어 내 앞에 걸어온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어쩌면 결혼이다. 나의 부모, 나의 형제, 나의 아이도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나의 아내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선택하였다.
어쩌면 내 인생에 딱 한 번의 기회였을지 모른다.
찰나의 순간, 회사의 아르바이트생과 해외에서 온 파견자로 스쳐 지나갈 뻔한 사이였지만 나는 그 기회를 잡았다. 열 살 차이, 나이도 뛰어넘었다. (나와 그녀는 영원히 나이 앞자리 숫자가 다르다) 속 시끄러운 가족사도 뛰어넘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그녀의 아버지 손을 잡고 나에게로 걸어오고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의 손을 나에게 넘겨줄 것이다. 내가 평생 모셔야 될, 평생 아끼고 사랑해야 될 사람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의 손을 나에게 넘겨주며 나를 안아주셨다.
아버님, 꼭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평생을 지켜야 할 약속이다.
주례는 없었다.
주례사는 장인어른이 대신했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몇 날 며칠을 고심하여 주례사를 썼을 것이다.
신랑신부 부모님께 인사하는 시간이다.
우선 신부 측에 인사를 했다. 결혼식장 특성상 절을 할 수는 없었고 두 분이 단상으로 올라오셔서 안아주셨다.
이제 신랑 측 차례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혼한 후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에 갔을 때 이 장면에서 나는 항상 뒤돌아 눈물을 흘렸다. 나의 부모님이 다시 한번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 생각에 항상 눈물이 났다. 나는 두 분이 함께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그 자리에 결국 아버지는 없었다.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만 그 불편한 자리에 부부가 아닌 부모로서 앉아주길 바랐는데 그건 나의 욕심이었나 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에게 항상 50:50이었지만 어머니를 못 오게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못 오게 하겠다고 했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자리엔 어머니의 동생인 외삼촌이 앉아있었다.
아버지는 없었다.
신부 측에 인사를 하고 신랑 측에 인사하려고 섰는데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울어서는 안 된다. 울어서는 안 된다....
어머니가 올라온다.
먼저 그녀를 안아주었고 나를 향해 오셨다.
어머니는 이미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들아....
어머니는 나를 안고 오열하셨다.
내가 이 결혼에 어머니를 앉히기 위해,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겪어야 했던 크나큰 스트레스를 어머니는 다 느끼고 계셨던 것이다. 자식이 성장하여 자신의 가정을 꾸리겠다고 선포하는 행사인 결혼식에, 평생 자신을 희생하며 나를 키운 어머니를 앉히지 않는 것은 불효 중의 불효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다.
나는 어머니를 안고 들어 올렸다.
울지 마소
그 뒤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모든 결혼식이 끝나는 신랑신부 퇴장할 시간이다.
이제 나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된다. 그녀와 함께 미래를 헤쳐나가야 한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까지, 또 그녀의 부모님께 허락을 받기까지 그리고 우리 집안의 문제까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결해 가며 이 자리에 왔다. 쉽지 않았던 만큼 꼭 잘 살아야 한다. 아버지가 실패했던 가정, 나는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1부 끝
2부에서 10살 차 그녀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