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믿을 사람 한 명도 없다
얼마 전에 겪은 이야기다.
은행에 외환 관련 문의를 하러 갔다.
월요일 오전이라 사람이 꽤 많은 편이었지만 다행히도 내 차례가 금방 왔다.
창구직원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직원이었다.
외환 관련 문의를 했는데 스마트폰에 앱을 켜서 달라고 했다.
은행에서 가끔 스마트폰을 켜서 앱에서 어떤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고 해서 아무 의심 없이 은행 앱을 켜서 비밀번호를 풀고 넘겨 주었다.
금방 뭔가를 처리하고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은행에서 직원들이 고객의 스마트폰을 가져가면 어떤 페이지를 켜서 보여주거나 비밀번호를 입력해 달라고 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네?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의심하지는 않았다.
은행에서 뭔 짓을 하겠어?
그러더니 비밀번호를 또 입력해달라고 했고 나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폰을 건네줬다.
이상하게 비밀번호를 친 뒤 휴대폰을 건네줄 때 폰을 재빠르게 가져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하지는 않았다.
은행에서 뭔 짓을 하겠어?
그러기를 세 차례. 그리고 한참 뒤 외환 관련 업무 페이지를 보여주었고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었다.
이것저것 실험도 해보고 하느라 시간은 총 40분 정도 걸렸다.
그렇게 모든 업무가 끝나고 휴대폰을 건네받는데 은행직원이 대뜸
신용카드 하나 발급해 주세요.
지금까지 은행업무를 하면서 몇 차례 이런 경우가 있었는지라 흔한 실적 쌓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뭔가 좀 뻔뻔스러운 말투였다. 분명 지금까지 느꼈던 은행 직원들의 그런 뉘앙스와는 달랐다.
한 달만 쓰시면 되고 만원만 결제 하시면 돼요.그리고 바로 해지하시면 됩니다.
나는 발급하고 싶지 않아 거절했다.
제가 지금 직업이 없어요.
이렇게 이야기 하면 충분히 거절사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직장 다니고 있지 않아도 발급 가능해요.
제가 필요해서 그래요.
본인이 필요하다고???
신용카드를 은행 직원이 필요하면 고객이 발급해줘야 하나? 어이가 없었다.
다음에 할게요
그리고 은행에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의심이 들었다. 초반에 내 폰을 건네받고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아무리 은행이라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나는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싶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고객센터 상담원에게 은행 창구직원이 내 폰을 너무 오랫동안 들고 있어서 뭔가 의심이 되는데 혹시 내 정보가 변경된 사항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지만 고객 본인의 스마트폰 앱에서 변경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서비스가 변경된 내용이 없냐고 물었지만 없다는 식으로만 이야기했다.
전화를 끊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은행 앱에 들어가 '알림' 버튼을 눌러 들어가 보니 은행 업무 보는 시간에 변경과 조회된 내용이 두 건 있었다는 알림이 떠있었다.
- 서비스 알림 설정 변경완료
- 개인신용정보 수신내역
모든 퍼즐의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알림 메세지를 보니 시간은 은행 직원이 내 폰을 가지고 있던 바로 그 시간이었고 이 모든 조회와 변경 사항이 진행된 시간은 총 5분 정도였다.
나의 합리적인 의심은, 그가 서비스 알림 설정을 통해 나의 신용정보 조회에 대한 알림이 오지 못 하도록 변경했고 그다음 개인신용정보를 조회해서 신용카드 발급이 가능한지를 확인해 보았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물었다.
외환 업무를 보는데 서비스 알림 설정 변경이 필요한가요?
개인신용정보를 조회할 이유가 있나요?
상담원도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며 아니라고 했다.
해당 지점을 연결하여 해당 직원과 통화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지만 나는 해당 지점의 점장 혹은 부점장을 연결해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고객 불편사항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으니 그에게 연락하여 다시 전화를 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항을 윗선까지 보고가 되도록 이야기해놓겠다고 했다.
약 한 시간쯤 뒤 지역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해당 지점 부지점장이라고 했다. 부지점장은 나에게 연신 죄송하다며 다시 한번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달라고 했다.
1. 외환 업무를 보러 갔음
2. 창구 직원이 스마트폰에 앱을 켜서 비밀번호를 풀고 건네달라고 요구함
3.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의심하지 않음.
4. 업무가 끝나고 신용카드 발급을 요구함
5. 이상해서 여기저기 찾아보니 서비스 알림 설정 변경 및 개인신용정보가 조회된 것을 확인
6. 외환업무에 이 두 가지 서비스를 조회 및 변경이 필요한가?
7. 만약 필요하다고 하면 고객에게 우선 동의를 구하거나 미리 이야기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
부지점장은 내 이야기를 세세하게 적어 내려가는 듯했다.
거듭 죄송하다며 이야기하면서 이 사항은 직원이 잘못한 것이 확실하다며 해당 직원을 불러 점장님과 함께 경위를 파악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이 건은 엄벌이 필요한 건이라고 했다. 은행 직원이 고객 정보를 이용한 범죄행위니 말이다.
부지점장은 잘 처리하도록 하겠다며 해당 건 처리 후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약 3시간이 지나고 다시 지역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점장이 직접 전화 왔다. 점장 또한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해당 직원을 불러 관련 건에 대해 물어보니 모든 사항을 시인했다고 했다. 그리고 시말서를 쓰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은행을 20년 넘게 이용했다.
그리고 제1금융권을 믿는다. 언젠가 뉴스에서 제1 금융권의 직원이 은행 돈을 꿀꺽하고 해외 도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돈을 날려먹은 건 아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객 정보를 이용했다는 것이 정말 화가 났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 30대인 나에게도 이런 짓을 한다면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못한 어르신들께는 얼마나 많이 그랬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당장에 우리 어머니만 해도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은데 말이다.
이런 소수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까지 욕 먹인다.
세상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최근 들어 나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데 사람을 믿을 수 없는 것이 참 슬픈 일이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남의 등을 처먹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짐을 느낀다. 전세사기는 너무 많은 이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 외에 코인, 주식 등 최근 뉴스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기꾼들이 있었던가.
이제 휴대폰은 그저 통신 수단이 아니다.
개인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다. 휴대폰이 없으면 할 수 없어지는 게 너무나 많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절대 내 스마트폰을 함부로 남에게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여러분도 조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