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일이 아닙니다
나의 본가 식구들과 처가식구들은 공유하는 아이들 앨범이 있다.
베베메모라는 앱인데 예전에 카카오톡으로 아이들 사진을 공유하다가 용량도 너무 많이 차지하고 사진을 매번 찾기도 힘들고 했는데 이 앱을 알게 되어 가족 모두 이 곳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매일 공유한다.
우리가 처갓집 근처에 살다 보니 가끔 처가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식사를 하거나 처갓집에서 함께 하는 사진이나 영상들을 올라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동생은 늘 이야기한다.
형수 가족들은 참 행복해 보인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 한 모습이라
볼 때마다 놀랍고 참 보기 좋다.
아내는 정말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 행복한 가정은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이룬 것이다. 나는 장인어른과 금요일마다 1:1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주말에 둘이서 목욕탕을 가기도 하며 장인어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아내와 나는 정반대의 분위기에서 자랐다.
나는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에 나의 연애에서도 나는 좀 권위적이었다. 아내를 만나면서 아니, 쫓아다니면서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그 부족한 부분을 장인어른과의 대화를 통해, 장인어른의 행동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아내는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다.
친정이 가까이 있어도 자신의 가정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친정에 가서 자는 법이 없고(가서 자도 난 괜찮은데...)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남편은 두 번째...) 그리고 시댁 식구들인 나의 어머니와 동생 외에도 나의 이모들에게도 정말 잘해서 이모들이 아내를 정말 좋아한다. 나로선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내와 정반대의 분위기에서 자란 내 사이에는 어려움이 있다.
우선 처갓집에 가보면 장인어른이 참 부지런하시다. 청소, 설거지, 분리수거는 기본이고 '장모님 바라기'셔서 장모님이 장인어른을 좀 귀찮아하실 정도다.(사실 엄청 좋아하신다) 아내는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고 나는 정반대의 분위기에서 자랐다 보니 아내 입장에서는 남자가 집안일은 하는 건 당연지사다.
물론 나는 집안일을 다 한다.
요즘은 내가 조금 바빠서 아내가 설거지도 하고 일반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곤 하지만 예전에는 모두 내가 다 했다. 나는 아버지가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이런 것들은 스스로 하는 노력이다. 사실 이런 건 어렵지 않다. 내가 아내보다 깔끔한 편이라 답답한 내가 치우는 게 더 낫다.(가스레인지 좀 닦으래도요!)
가끔 아내와 다툴 때 논리적이지 않은, 감정적이면서 대화의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을 할 때는 정말 당황스럽고 황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참고 차분히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나의 부모님은 반대였다.
아버지가 말을 하면 어머니가 반박하는 걸 본 적이 없다.(지금은 어머니가 그때 너무 바보 같았다고 늘 이야기하신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참는다는 것이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다. 장인어른은 그냥 허허 하시며 모든 일을 넘기신다. 그렇다 보니 다툼이 생기지 않는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여쭤보면 '가족한테 이겨서 뭐 하려고?'라고 말씀하신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사실 쉽지 않다. 내 눈에는 아버지가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항상 아버지가 무서웠고 대든 적이 없었다.
항상 아버지는 오르지 못하는 나무라고 생각하고 살았기에 처가 식구들이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나의 입장에서는 마치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편한 존재인 것이다. 무시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아버지에게 이야기 한 것이고 편하게 아버지를 대할 뿐인 것이다.
이런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보니 관념이 다른 부분들이 발생한다.
나의 입장에서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쓰레기 버리는 것은 '노력'이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 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내가 치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 못마땅 할 때도 있다. 그 외에 다툴 때도 마찬가지다.(아내는 절대 지지 않는다. 무섭...)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을 감당(?)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본인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문제없겠지만 대부분 내 또래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류의 충돌이 주변에서도 꽤나 보인다. 그러므로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의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꾸려나가고 싶다면 본인 스스로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그 노력을 알아주기를 원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묵묵히 했던 보상은 나이가 들어서 받는다고 생각한다.
장인어른이 그 표본이다.
장인어른은 가끔 우스개 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내 몸 안에는 참을 인(忍) 자가 세 개 있다.
그런 장인어른의 노력 덕분에 가정은 항상 화목하고 가족은 항상 아버지를 챙기고 늘 아버지 옆에 있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들면 가족 밖에 없다는 말은 나의 외할아버지를 보며 느꼈고 장인어른을 보면 과연 그렇구나 싶다. 장인어른의 두 딸은 모두 출가하였지만 모두 부모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산다. 장인장모님은 딸들을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고 귀여운 손주들도 함께 본다. 사위들도 장인장모님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내와 결혼하면서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다.
이 행복한 가정에 내가 들어와서
이 가족의 행복을 절대 깨지말자.
나로 인해 더 행복하게 만들자.
내가 아내에게 잘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이들이 행복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내가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잘해야 한다.
오늘도 장미꽃 한송이를 사서 집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