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미안한 마음
아내가 요즘 육아 스트레스로 너무 힘들다고 했다.
5살짜리 아들과 3살짜리 딸이 너무 징징대고 서로 싸워서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나도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정말 쉽지가 않다. 평온했던 마음도 한 번에 화로 변할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왔다갔다 한다.
하루는 정말 안 되겠는지 처제랑 주말 하루만 좀 놀다 오겠다고 했다.
대신 둘째인 딸은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나 혼자 둘이 보기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였다. (사실이다...)
덕분에 나는 큰 아이와 둘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동네에서 놀고 싶지는 않았고 아이와 대중교통을 타고 시내에 나가 아이가 갈만한 실내 박물관을 가기로 계획했다. 큰 아이가 3살 때,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고 둘이서 나갔다 온 뒤로 처음이었다. 그땐 아이가 말을 잘 못 하는 시기였고 울기도 많이 울던 시절이라 너무 힘들었다. 이제는 자기표현도 잘하고 말도 꽤 하는지라 같이 나가면 재밌을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아이는 가는 길에 궁금한 게 많은지
아빠 이건 뭐예요?
아빠 이건 왜 이런 거예요?
아빠 저기에 뭔가가 있어요!
라며 계속 이것저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른들이라면 궁금해하지 않을, 어른들이라면 보지도 못하고 지날 법한 것들에 대해 아이는 질문을 하니 나도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모르겠는 것들도 많았다.
나는 그저 목적지에 가기 바빴고 날이 너무 더워서 빨리 실내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이가 이것저것 물어보니 최대한 잘 알려주고 싶어 가던 길을 몇 번이고 멈추긴 했지만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나는 늘 아이보다 앞서서 걸었다.
큰 아이는 늘 안아달라, 목마를 태워 달라고 한다.
다리가 아프다며(사실은 아프지 않다) 안아달라고 하면 걸어야 된다고, 다들 걸어 다니지 않냐고 아빠도 힘들다고 하면, 아이는 늘 한 번만 안아달라며 더 떼를 쓴다(안아주지 않으면 결국 운다). 처음엔 걷기가 싫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나무랐다. 거기에 아이는 이제 20kg이다. 가벼울 땐 매번 안아주고 목마를 태워줬지만 이제는 너무 무거워 오랫동안 안아주기가 힘들다. 목마를 태우고 나면 정말 목과 어깨 그리고 허리가 너무 아프다.(내가 운동을 안 한 것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안아주는 것이 힘들고 목마를 태우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안아달라는 아이에게 짜증도 내고 모른척하기도 했다.
둘째가 태어난 후 큰 아이의 질투가 엄청나졌고 둘째가 커갈수록 더 못 살게 군다.(둘째도 참지 않는다)
둘째는 그저 오빠가 가지고 노는 걸 같이 가지고 놀고 싶고 오빠가 가지고 있는 것이 궁금한 것뿐인데 첫째는 자신의 것을 절대 못 만지게 한다. 이로 인해 우리 부부가 아이를 다그치는 경우가 많아지다보니 아이가 우는 경우도 많아졌다.
하루는 아내가 큰 아이 유치원에 참관수업을 갔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영상을 찍어서 부모들에게 보여줬는데 아이에게
뭐 할 때가 제일 좋아?
라는 질문을 했다.
우리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 엄마가 안아줄 때가 제일 좋아요
아내는 그 순간,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나 또한 아내를 통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큰 아이는 우리에게 목마를 태워달라 안아달라 하는 것이 부모인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고픈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동생이 태어난 후로 자신만 보던 엄마, 아빠를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면서 동생을 미워하는지도 모른다.
또 그런 동생 때문에 엄마, 아빠에게 혼나는 것이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혹은 그걸 알면서) 엄마 아빠로부터 미움을 받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조금 귀찮더라도, 조금 덥더라도 아이가 원한다면 다 안아주고 목마를 태워주자고 마음먹었다.
큰 아이와 둘이서 나간 날, 30도가 넘고 가장 더운 시간이어서 너무나 힘들었지만 아이가 안아달라, 목마를 태워달라 하면 두 팔 벌려 아이를 안아주었다.
어쩌면 아이가 나에게 지금처럼 안아달라, 목마를 태워달라고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나 스스로를 돌이켜봐도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 보다 친구랑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해달라는 시간이 많이 남아도 2년 정도밖에 안 남았다. 그 후론 나에게 안아달라고 하긴 할까? 이 시기가 지나면 목마는 태워주고 싶어도 태워주지 못할 것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을 보며 늘 이야기했다.
지금이 제일 이쁠 시기라고. 엄마, 아빠를 찾고 가장 애교를 많이 부리는 시기라고. 이때가 지나면 엄마, 아빠를 찾지도 않는다고.
지금이 가장 젊은 나, 조금 힘들더라도 아이와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추억을 남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