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4일의 기록
새벽에 비가 촉촉하게 내린 일요일 아침이다. 여름이 올 듯도 한데, 아직 아침공기는 꽤나 차가워 엉덩이가 무겁다. 산책 나가자며 현관문에서 혼자 신발부터 신는 아이의 성화에 밖으로 나갔다. 촉촉하게 젖은 화단의 나무들이 푸릇한 잎사귀를 제법 돋워 내었다.
“야호~ 예쁘다. 꽃냄태 나. 음~ 엄마도 냄태 맡아봐”
말릴 새도 없이 어느새 화단에서 작은 노란 꽃이 핀 잡초를 쑥 뽑아버렸다. 이 조그만 녀석은 냄새를 맡는 법을 알긴 아는 걸까? 코를 가까이 갖다 대야 냄새가 날 텐데, 블루투스도 아니고 멀찍이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고는 좋은 냄새가 난 단다.
아이를 낳은 이후로 계절이나 자연의 변화에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길 가다 발에 차이는 조그만 돌멩이부터,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굴러다니는 개똥까지 딸아이에게는 모두 새로운 관찰대상이다. 아이 덕분에 나는 나무열매가 그렇게 다양한 색을 갖고 있는지 이 나이 들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도 서울에서 태어나 계속 서울에 산 사람 치고, 나는 자연과 꽤나 친숙한 편이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항상 바쁘셨는데, 그래도 주말에는 시간을 같이 보내려 노력하셨다. 일요일 아침 루틴이 특히 그러했다. 일요일에는 일단 문을 일찍 여는 동네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이나 만두를 사서 아침을 후다닥 먹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산이었다. 어린이에게는 꽤나 힘든 수락산, 도봉산부터 야트막한 용마산, 아차산까지 참 많이도 올랐다. 산에 올라 먹는 간식의 꿀맛이나, 내려오는 길에 있는 계곡의 차가운 물에 발을 담글 때 상쾌함 같은 감각들은 모두 그때 배운 것들이다.
초등학교 3학년쯤에는 혼자서도 등산을 다닐 만큼 길도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붙어, 동네 산은 물론 수락산 정상까지 혼자 다녀온 기억이 있다. 지금이라면 그 나이에 절대 혼자 산을 안 보내겠지만, 그 시절에는 처음 마주쳤음에도 혼자 등산 온 어린이를 기특하게 지켜봐 주던 관심 어린 눈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가을이 되면 나의 방과 후와 방학은 오로지 빨간 잠자리로 가득했다. 내가 잡았다가 놓아준 잠자리만 해도 어림잡아 천마리는 될 것 같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이마에 땀이 뻘뻘 나도록 해질 무렵까지 잠자리를 열심히 잡았었다. 그 덕분에 다온이 에게는 잠자리 잘 잡는 엄마로 어깨 좀 으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경험들을 아이 혼자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제 초등학생이 된 다온이의 방과 후는 잠자리 잡기나 등산 대신 영어나 발레, 미술 같은 방과 후 수업들로 가득하다. 아이가 학교생활에 뒤쳐질 까봐 조바심이 드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수업에 보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서이다. 짧은 시간 놀이터에라도 아이를 혼자 두면 괜한 불안감이 차오른다. 혼자 있던 아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줄까 라는 의구심부터, 모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까지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것이 하나 없다.
그래도 아이가 새로운 것들을 최대한 많이 보고 느껴볼 수 있도록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서지만, 어른이 편한 쇼핑몰이나 실내 키즈 카페에 가는 날도 허다하다. 혹은 가이드 선생님과 함께 하는 숲 체험이나, 문화센터에서 하는 갖가지 놀이 수업을 보낸다. 돈을 지불하고 경험을 사야 하다니, 밖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즐거운 어린이로 키우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풀과 꽃의 향긋함과 봄비가 내린 뒤 하는 산책의 상쾌함, 산에 올라 땀 흘린 뒤 마시는 시원한 물이 주는 개운함을 아는 행복한 아이로 키우려고 오늘도 노력해 본다. 10센티 하이힐을 신고 신촌 골목길을 누비던 젊은 아가씨는 사라진 지 십여년이 되었지만,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나서는 산책길이 꽤나 설레고 즐거운 건 모두 네 덕분이다.
(그치만 가끔 그 아가씨가 떠올라 코 끝이 찡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