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의 글귀들 - 에필로그
12년 넘게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는 동안 하늘 위 비행기 안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만났으니 겪어냈다고 하는 편이 더 와닿겠네요. 한날한시에 같은 스케줄에 배정받아 만나게 된 동료들부터 그날 탑승하는 다국적 승객들까지, 한번 비행 가면 마주치는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릅니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인연이었다는 말이 있던데… 그럼 전 연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이번 생애 다시 만난 그 숱은 인연들이 저에겐 가끔 버거울 때가 많았습니다. 비행 일 자체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니 만큼 감정 소모도 크고, 기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난처한 상황들도 수시로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힘에 부칠 때마다 삶의 현장에서 절 다시 일으켜 세워준 글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오디오북에서는 그 글들을 비행 에피소드에 버무려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디딤돌로 삼았던 그 글들이 여러분에게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필로그 – 각자가 가진 행복의 근원
내가 승무원 최종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우리 아빠는 정말 뛸 듯이 기뻐하셨다. 몇 년 동안 지속되었던 소송분쟁과 고단한 인간사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아빠에게 보상이라고 느낄만한 순간을 안겨드릴 수 있어서 나 또한 무척이나 기뻤다. 스스로 뭔가를 성취했다는 기쁨보다 말갛게 웃던 아빠의 얼굴이 그냥 보기 좋았다. 그때부터 였다. 인생을 좀 더 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나기 시작한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웃게끔 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안고 상경했다. 고향을 떠나 타지로 가는 스물 네 살 여자애가 가진 꿈 치고는 너무 진지했고 어깨는 무거웠다.
내가 서울에 올라오고 얼마 되지 않아 동생도 함께 살게 되었다. 네 살 터울의 여동생은 내가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몰라보게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성숙한 만큼 말 수가 많이 줄었고 표정만으로는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도 혹독한 신입훈련을 받느라 ‘괜찮아?’라는 말을 던질 여유와 용기가 없었다. 분명 서로는 알았다. 서로가 각자 감당해야 했던 몫이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 동생은 대학을 포기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나는 애써 가족들을 외면하고 내게 주어진 일들에 몰두했다. 합격만 하면 모든 게 다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매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받는 훈련은 그런 기대감을 싹 가시게 만들었다. 인생의 다른 챕터가 시작되었음을 자각했고, 그 속에서 나름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의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앞서 나와 내 가족얘기를 먼저 시작한 것은 나에게 있어 행복과 인생의 간절함은 이들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잘’ 살고 싶다가 아니라 ‘왜’ 잘 살고 싶은 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수년간 스스로에게 물으며 얻은 것들을 풀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연재는 단순히 승무원의 비행 에피소드가 아니라 한 개인의 성장 스토리일 것이다. 지금껏 삶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나에게 생의 동기를 부여해준 책들을 소개하며 그때 내가 느꼈던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듣는 분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들을 움켜 쥐기를 바란다. 그 분들이 결국 행복해지는 쪽을 선택하길 바라며 백영옥 작가의 <곧, 어른의 시작이 시작된다>에 나오는 한 글귀를 소개하고자 한다.
누군가의 꿈이 꼭 위대한 작가나 홈런왕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20대와 30대에 걸쳐 쓴 인생의 오답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세상엔 죽도록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꿈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좌절되고 만다.’ 하지만 틀린 답을 조금씩 고쳐 나가며 마침내 내가 꺼낼 수 있는 이야기 속에는 이런 것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허황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행복한 쪽으로 바꾸기 위한 것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중요한 건 불행해지지 않는 쪽이 아니라, 결국 행복해지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https://www.nadio.co.kr/series/535/episo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