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5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항공업계는 올해 최대 수익원인 국제선 노선 운항을 중단하며 존폐 위기를 맞았습니다.” 앵커의 예언대로 난 그렇게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호구지책. 이 사자성어가 쓰나미가 되어 날 집어삼켰다.
스물네 살에 항공사에 입사했다. 높은 연봉에 예쁜 유니폼을 입고 세계여행을 하는 날 친구들은 몹시 부러워했었다. 달콤한 타성에 젖어 살면서 이 현실이 나를 영원히 구원해주리라 착각했었다. 그렇게 10여 년을 난 하늘땅을 오갔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무서울까? 불확실성. 한 치 앞을 모를 때이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을 때 몰려오는 두려움. 거기서부터 써 내려갔다. 나의 해방 일지를.
“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분명히 몇 가지는 있다.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할 수 있는 것까지 포기하지는 않겠다.” ‘왓칭’의 작가 김상운 님의 말이다. 나의 해방 일지 맨 앞장에 이걸 큼지막하게 써놓았다. 그리고 뒷장을 반으로 접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그다음 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다. 토마토 카프레제, 산책, 독서 그리고 시원한 믹스커피. 날 이대로 방치해 두지 않기 위해 당장 무언가를 먹든지, 무엇을 하든지 해서 스스로를 텐션 업 시킬 수 있는 걸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렇게 한 장 한 장 나의 해방 일지를 채워나가며 점점 생각도 부채꼴처럼 드넓어지는 경험을 한다. "그래,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거야!"
그래서 각종 독서모임도 나가고 경제공부도 다시 하는 중이다. 더 이상 불확실한 쓰나미가 날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상황 탓, 사건 탓, 사람 탓하지 않고 중심 똑바로 잡고 살 수 있는 단단함을 품기 위해서 말이다.
배수지진. 3년 전에는 ’ 호구지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배수진을 치는 맘으로 해방 일지를 쓰고 있다. 승무원에서 다른 업으로 순탄하게 소프트 랜딩을 하고자 한 발 한 발 새로운 길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배수진을 치는 간절한 마음과 낯선 변화에서 오는 설렘이 버무려져 오늘도 난 슬기롭게 나의 하루를 채워간다.
202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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