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의 글귀들 02
‘사랑파’냐 ‘현실파’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쁜 것은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떤 가치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독립적인 의사 결정이 어색한 것은 여태 그 나이가 되도록 자기 가치관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알지 못해서 그렇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스스로의 욕망에 무지하다 보니 그 어느 것도 우선순위가 모호해질 수밖에. 자신의 우선순위를 알려면 평소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주변에 휘둘리다 보면 정작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임경선-태도에 관하여
유난히 후배들이 나에게 연애상담을 많이 한다. 남의 연애는 훈수 뜨는 거 아니라 기에 조용히 들어주는 편이다. 그리고 그 친구가 무엇을 중요시 여기는지 다시 알려주는 일만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연애의 판도를 가르는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는 차후의 이별유무로 바로 알 수 있었다. 간혹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아주 많다. 그들은 단순히 사랑이냐 돈이냐 날것의 질문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수개월을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생각이 드냐는 질문에서 조차 ‘모르겠다’며 얼버무린다. 난 그런 그녀들에게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너가 참을 수 없는 게 뭐야? 이상형이 아니라 정말 싫어하는 남자는 어떻게 돼?”
좋아하는 것에서 기준을 찾으려면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 하지만 본인이 싫어하는 것에서 출발하면 그 기준은 뾰족해 지곤 한다. 왜냐하면 각자의 ‘싫음’ 포인트가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잘생기고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거짓말 하는 건 못 참는 반면 거짓말은 참아도 자기 관리 못하는 남자를 질색할 수도 있다. 그만큼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쌓인 자신만의 기준에 맞춰 연인을 만나게 된다. 자만추든 아니든 처음 이성을 만나 불꽃을 튀는 건 동물적 본능일지 몰라도, 그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은 일단 맘에 걸리는 게 없어야 한다.
이렇게 ‘싫음’에 포인트를 맞추는 것은 비단 연애에서 뿐만 아니라 일이나 취미생활을 정하는데 있어서도 좋다. 그 경계가 뚜렷해 질수록 삶이 명쾌해지고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비교하는 데 드는 정신적 고통과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날지 말지, 살지 말지, 해야 할지 말지의 기로 앞에서 좀 더 빨리 결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것은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혜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음을 잘 안다. 나 또한 잠 못 드는 숱한 밤을 눈물로 지새운 뒤에야 그것을 얻어냈으니 말이다. 난 가끔 삶의 부침이 있을 때마다 A4 용지 한 장 펼쳐 놓고 싫어하는 것들을 적어 보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 리스트를 잘 들여다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분명히 갈리고, 지금 당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머릿속에 엉켜있던 것들을 종이 위에 글로 내려 놓으니 답을 찾기 더 쉬웠다.
어떤 방법으로든 여러분들이 최대한 싫어하는 것들을 안 할 수 있는 ‘자유’를 쟁취하며 살기를 바란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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