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주 임산부가 쓴 글
“임신 5주 차입니다.”
엄마가 없는 내가 엄마가 된단다. 솔직히 드라마에서 보던 여주인공 마냥 기쁜 감정만은 아니었다.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이 섞인 감정이 10할 중에 8할이었고, 나머지는 일 걱정과 아주 조금의 설렘이었다. 뱃속에 있을 태아가 섭섭함을 느낄 새라, 소식을 접한 남편이 글썽거리는 눈망울로 그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내가 이처럼 두려웠던 이유는 인생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 엄마가 보여준 절절한 모성애는 나를 하염없이 작게 만들었다. 받아 보지도 못한 저런 사랑을 내가 과연 내 새끼한테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가보지 못한 길은 언제나 두려움이 앞서는 거라지만, 이건 싫다고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생명이 나만 믿고 세상에 태어나 온전히 본인을 내맡기며 나에게 사랑과 책임감을 동시에 부여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점점 불러오는 배를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엄마가 없는 엄마들은 무슨 마음으로 아이를 품었을까?’
세상에는 수많은 엄마들이 있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풍족한 사랑을 이어받아 그 사랑을 자녀에게 베풀고, 또 누군가는 빈자리를 느끼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사랑을 배워간다. 나는 분명 후자일 것이다. 엄마의 품을 느껴보지 못했기에, 더 서툴 수 있고 더 조심스러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고 하지만, 양육과정에서 겪을 수많은 실수들이 아이를 아프게 할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불안이 많은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결핍이 불러낸 자의식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자의식을 견고하게 해 준 것은, 결혼 전에 내가 자주 내뱉은 말 때문이다.
’나는 양가 부모님 다 있는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배우자에게서 채우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한 문장은 나의 무의식에 쌓이고 쌓여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얼마 전, 이런 두려움에 질투심까지 불러일으키는 일이 있었다. 출산한 지 100일 조금 넘은 친구 집에 놀러 갔었다. 갓난아기가 보여주는 무해한 몸짓과 표정을 보며 마음 한편이 몽글몽글해졌다. 나도 곧 아이가 태어나고 함께 육아할 수 있단 생각에 소녀들처럼 깔깔거리다가 자연스레 둘째 계획을 물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들의 대화를 듣던 친구의 친정어머니께서 단칼에 둘째는 안된다며 으름장을 놓으셨다. 이유는 그 친구가 임신기간 내내 심한 입덧과 구토를 반복하며 엄청 고생을 했기 때문이었다. 딸의 고생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듯, 엄마의 매서운 눈빛이 애꿎은 친구 남편에게 꽂혔다. 내 눈에는 그 장면 속에서 어머니의 눈빛과 말들이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지던지 몸서리치게 부러웠다.
그 장면을 떠올리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이 저릿했다. 부러움과 서운함이 뒤섞인 그 기묘한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내 안에 오래 머물러 있던 빈자리가 다시금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했다. 그러한 빈자리는 30년 넘게 수면 위로 선명하게 올라왔다 가라앉기를 반복했었다. 삶이 바쁘게 돌아갈 때는 원래 없었던 자리처럼 깊숙이 내려갔다가, 불현듯 찾아온 임신과 함께 그 빈자리를 여실히 드러냈다.
때때로 그 공허함이 단순한 결핍을 넘어 내 마음을 흔드는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아주 사소한 장면에도 불쑥 고개를 내밀면서 말이다. TV에서 아이와 눈 맞추고 웃는 엄마의 모습만 봐도, 동네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와 엄마의 대화 소리조차도 나를 잠시 멈춰 서게 만든다. 그 순간마다 나는 내 안에 오랜 시간 묻어둔 감정을 다시금 끄집어내야 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부럽고, 슬프고, 또 한편으로는 애써 무뎌지고 싶어지는 마음. 아무렇지 않게 웃다가도 문득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컥거리는 파도가 일어난다. 그 파도는 가끔 나를 이렇게 잠식시키곤 한다. 얼마 전 보았던 친구 어머니의 따뜻한 시선과 다정한 말 한마디가, 나에겐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임신기간 동안 내가 행하고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먼저 TV와 폰을 멀리한다. 정확히는 감정 동요를 일으키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더불어 밝은 부분만 확대 되어져 보이는 타인의 일상을 보지 않고, 오로지 내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쟁취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남편과 앞으로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자주 얘기를 나눈다. 그 대화 속에서, 내가 받고 싶었던 ‘엄마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부터, 내가 두려워했던 결핍을 어떻게 채워나갈 수 있을지까지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간다.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대화들이 쌓이면서, 우리들만의 부모 모습이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그것조차도 우리 아이에게는 충분히 따뜻한 시작일 거라 본다.
요즘 스스로에게 자주 되뇐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자.’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랑은, 엄마인 내가 끝까지 곁에 머물겠다는 약속이다. 부족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모른다면 함께 배우며, 때로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며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모성애가 아닐까 싶다.
아마 나처럼 엄마가 없는 엄마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두렵고 흔들릴 때도 많겠지만, 그만큼 더 단단해지고, 그만큼 더 아이와 깊이 연결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결핍은 아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사랑을 더 깊게 느끼게 해주는 문이 될 수 있으니까. 엄마라는 자리를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우리지만, 그 서툶과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아이에게 더 진심으로 다가가게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을 많이 받아 본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 결핍 속에서 사랑의 소중함을 배웠고, 그래서 더 간절히 아이를 품을 수 있다. 그만큼 내 아이의 작은 손길 하나, 숨결 하나에도 더 크게 기뻐하며 엄마로서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엄마가 없는 엄마라 해도 괜찮다고. 우리 아이에게는 세상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엄마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도록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그리고 내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02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