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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현 Sep 02. 2024

불시착

나의 해방일지 1화


“손님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비행기는 런던까지 가는 나디오항공 907편입니다.” 이 비행을 마지막으로 긴 휴식기 들어갔다. 바로 코로나가 가져다준 해방일지였다. 그간 난 10년 근속상패까지 수령할 정도로 아주 말 잘 듣는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내 일상에서 비행이 빠지자 길 잃은 강아지마냥 수개월을 방황하며 지냈다. 어쩌면 비행이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단 걸 반증하는 것이리라.  

        

헌데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했던가? 이 널널한 시간들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몸만 피곤하게 만들 뿐 정작 이렇다 할 성과는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밀려오는 허무감에 매일 베개가 축축해 질 때까지 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공허감에 지쳐갈 무렵 친한 친구가 뼈 때리는 말을 훅~ 던졌다. “생각을 바꿔봐. 원래 살던 대로 살면 인생이 전혀 바뀌지 않아” 이 말이 아프게 다가왔지만 정말 맞는 말인지라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 후로 나는 달라지기로 결심했고, 가장 처음으로 허리까지 치렁치렁 길렀던 머리카락을 귀 밑 숏 컷으로 잘라버리는 의식부터 행했다. 다음으론 자기관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진정 내가 뭘 좋아하는지부터, 앞으로 먹고 살 생존과 관련된 작은 계획들까지 하나하나씩 써내려갔다. 아직 먹고사니즘에 대한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 인간인지 정도는 알게 되었다. 지금은 이걸 쉰 네 살이 아닌 서른 네 살에 깨닫게 해준 코로나에 감사할 뿐이다.               



요즘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너, 요새 좋은 일 있어? 얼굴이 확 폈는데?”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이 떠오른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그 행동이 바뀐 것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 예전에는 시차를 핑계로 무기력하게 누워있거나 손님들과 선배님들에게 치여 주눅 들기 일쑤였지만, 이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몰두하다보니 당연히 싱글벙글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코로나의 긴강에 징검다리가 된 나의 해방일지를 기록하며 내가 받은 선물들을 조금씩 열어 보기로 한다.     


2022.10.05






https://www.nadio.co.kr/series/271/epis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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