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2화
"길어봤자 3개월입니다" 의사의 선언은 무미건조했다. “보호자님!”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를 뒤로 하고 진료실을 나오면서 온몸으로 느꼈다. 내가 피보호자 자격에서 이젠 보호자의 위치로 역전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느낌과 동시에 아빠를 살려야 된단 생각에 사방팔방을 뛰어다녔다. 한마디로 나에겐, 울고 자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 후 13시간의 큰 수술을 이겨내신 아빠는 지금도 여전히 내 곁에 함께 계신다. 수개월 동안 보호자 역할을 하며 병원을 오갔던 난, 인생에서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다. 바로 병원 안에서의 시간과 바깥에서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공간이 주는 압박감 때문인지 병원에서의 시간은 정말 더디게 흘러갔다. 하지만 되게 급하다고 생각되었던 현실적인 문제들이 그곳에선 세상 부질없는 일들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걸 볼 수 있는 혜안을 얻게 되었다.
아빠는 퇴원 후 곧바로 고향집으로 내려가셨다. 회복을 위한 2차 병원도 마다하며 퇴원하자마자 곧장 터미널로 가셨다. 동시에 보호자인 나의 내적 갈등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빠 집은 경상남도 칠원. 내 생활 반경은 서울. 자그마치 차로 왕복 8시간이나 되는 거리다. 단순히 그 공간적 한계를 떠나 가장 맘에 걸리는 건, 내가 승무원으로서 한 달에 반을 해외에 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해야 할 동생도 걱정이었지만 아빠를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날 더 심하게 짓눌렀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가 더 들어갈지 모르는 병원비를 생각하면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인은 앞으로 길게 내다보라며 비행 복직을 내게 권유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비행하는 동안, 혼자 케어할 동생에겐 미안한 한편 아빠에겐 씩씩한 장녀인 척해야 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 소모와 서비스 노동이 겹치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간병휴직을 고민하던 그때, 때마침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는 불가피하게 비행업무를 할 수 없는 경우니 오히려 정부지원금을 받으면서 일을 안 가도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팩트는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문제가 되기도 하고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난 이 기회를 누리고 싶었고, 아빠와 함께 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만 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은 힘들어봐야~ 진짜 인생에서 소중하고 중요한 게 뭔지 알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내 진정한 보호자 또한 바로 내 자신이라는 것도.
2022.10.10
https://www.nadio.co.kr/series/271/episo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