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책방학교 5-2강 : 독립 책방의 지속적인 도전
지난 5-1강은 독립 출판이란 무엇이며, 한국에서 책방을 한다면 무엇을 준비하고, 미리 생각해 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콘셉트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유어마인드의 구체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조언과 이야기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들어 보았다. 그 뒤를 이어 5-2강은 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 (Unlimited Edition)의 기획 의도, 내용 및 흐름 과정 그리고 일반 북페어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더 자세한 이야기를 엿듣고자 한다.
만약 당신이 앞으로 새로운 활동이나 새로운 서점 혹은 출판 및 기획이 필요하다면, 부족한 것만을 판단 기준으로 내세우지 않았으면 한다. 분명 우리가 갖고 있는 한계점에서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무언가는 반드시 있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발전되어 나갈 것이고, 새로운 활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아트북 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란 무엇인가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 (이하, UE)은 유어마인드가 주최하는 아트북페어로, 연말을 맞이하여 1년에 한 번, 이틀 동안 독립 출판 제작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실제 자신들이 만든 책을 판매하고, 설명하는 행사이다. 소위 인디펜던트 버전의 국제 도서전이며, 그 규모는 훨씬 작다.
홍보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다. 기괴하다 할 순 없지만 한 눈에 척 봐도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책을 판매하는 행사임에도 포스터 어디에도 책 이미지는 찾을 수 없다. 하물며 이 행사가 어떤 행사이며, 누가 진행하고 참여하는지, 어떤 관람객들이 와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주어져 있지 않다. 심지어 아트북페어라는 핵심 키워드는 아주 작게 들어가 있고, 본 제목 역시 대단한 정체성을 가진 텍스트라고 할 수 없다. 단순히 'Unlimited Edition'이라는 영어 단어를 가져왔을 뿐, 비주얼 속의 이 사람은 누구이며, 왜 수영장에 있는지, 이 파도와 도트가 무엇인지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다. 마치, 애당초 홍보할 의향이나 그럴 생각조차 없다는 듯이 무심하다.
이는 일종의 암호와도 같다. 이 포스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숨겨진 암호를 해독 한 사람만이 찾아올 수 있다. 바로 불특정 다수가 아닌 소수, 즉, 핵심 독자들만을 위한 도서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UE의 참가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책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제작자이면서 동시에 작가 자신이다. 본인이 직접 자신의 책을 독자에게 팔아야 하고, 일대일로 설명하고 직접 알려야 한다. 국제 도서전과 달리 소수의 취향을 공유하는 그들이 모여, 서론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책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 자리에서 피드백을 받는다.
"이 책 좋아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 책 기대하고 있어요", "얼른 작업해주세요" 등등 평소에는 쉽게 들을 수 없는 리뷰 혹은 평가를 그 자리에서 들을 수 있다. 이미 나는 당신을 알고 있고, 이 씬의 일부로써 당신은 유명한 작가이며, 기다리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환경적 요인 때문에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작가들은 어디서도 반응을 알 수 없는 평소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동시에 방문객들과 친밀감과 일치감을 갖는다. 서로가 이해 가능한 사람들이 모여 편하게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책의 내용을 따로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국제 도서전의 포스터는 서울의 대형 도서 행사라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절대다수를 모아야 하며, 수많은 작가들과 함께 책과 관련된 부대 행사 및 다양한 토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산업화된 박람회이기에 유명 작가들이 직접 나와 자신들의 책을 파는 일도 없고, 주로 출판사 직원들이 행사 요원으로 활약한다.
독자적인 제작이 모두 가능한 형식의 출판물
독립 출판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은 독자적인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디자이너도 자신이 '디자인' 한 포트폴리오로만 모아서 책을 만들 수 있다. 대개는 디자인을 학습하거나, 철학을 정리해 놓거나, 유명 디자이너의 책을 일반적인 형태로 출판한다면, 독립 출판은 디자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 자체로도 실험적인 선택이 가능하다. 국내 도서 시장은 '소형의 시각적인 것만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디자인은 단순히 내용을 설명해주는 수단이자 기술로만 소비된다. 이뿐만 아니라 미술 및 도판 역시 텍스트를 배제하고 이미지로만 제작이 가능하며, 굳이 말이나 글의 힘을 빌려 서술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출판 및 저술에도 확대 적용된다. 그러므로 아트북페어의 주도적 장점은 모두가 예술가, 예비 예술가, 예술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나도 해 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심어 주고, 그들 모두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한편, 독립 출판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작이 가능하지만, 올해는 어떤 책이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고, 한마디로 설명하거나 파악하기 힘든 씬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독자 개개인들이 직접 페어에 방문하여 눈으로 보고 파악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진다. 독립 출판은 1년의 결산 과정 혹은 어워드 형태의 결과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일반적인 감각으로는 손쉽게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아트페어를 통해서라도 체험의 욕구를 충족시켜 나간다.
2009년 1회에는 900명의 제작자가 참여, 900권의 책을 판매하였다. 정보가 일체 전무한 상황 속에서 방문객들은 제일 마음에 드는 한 권만 구입했을 것이며, 이는 서로가 서로를 학습할 수 있는 계기로 작동했다. 그리고 2015년 약 15,000명의 최대 방문 수를 기록하며 나름의 고무적인 양상을 이루었다.
소규모 행사는 어떻게 작동하며, 왜 중요한가
독립 출판 제작자들은 자신을 알리고 소개하는 채널이 한정적이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고 들을 수 있는 장소와 기회가 차단되어 있어 대부분이 가려져 있거나 고립되어 있다. 그리하여 어느 사이엔가 독립 출판은 '불친절하다'는 인식이 쌓여 왔다. 왜냐하면 이름을 알리겠다는 의지도 없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도, 각오도 부족하다. 그러나 막상 이틀에 걸쳐 150여 개의 독립 출판이 한 자리에 모이면 불친절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상기된 얼굴로 책에 관하여 열띠게 설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너무나 친절 과잉의 사회라서 불친절하다고 느껴지는 것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은 아니다. 실시간 소통을 통해 작가는 평소의 답답함이 해소되며 개방감을 느끼고, 독자는 인사도 안 할 것 같고, 반겨주지 않을 것 같다는 선입견이 깨지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대화에 개입한다.
- UE : 소규모 책을 모아서 시각적인 결과물들을 보여주고, 진열, 판매, 토크하는 북아트 페어
- 과자전 : 워크스 디자인 스튜디오가 주최하며, 전국의 1인 소규모 베이커리, 과자, 빵, 디저트 등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직접 판매하고 구입하는 행사이다. (일단, 품절되기 전에 빨리 사야 하기 때문에 의외로 행사 사진이 없는 편이다. 일단, 그들이 만든 제과들은 대부분 생김새부터가 독특하고 과장되어 있으며, 이상할 정도로 모양에 집착한다)
- 레코드 폐허 : 음악 마니아를 위한 레코드페어라는 큰 행사에서 파생된 행사이다. 50-100장 정도를 자신의 골방에서 굽고 만들어 판매, 구입하는 행사이다
- 굿즈: 출판, 음악, 과자가 아닌 미술, 행위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들이 구매 가능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위와 같은 소규모 행사들은 만드는 사람이 곧 제작자 겸 창작자 겸 독자 겸 관람객이다. 대부분의 행사들은 내부에서 기획, 제작되거나, 전문 진행 기업에 위탁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위탁 진행 방식은 주로 기업 관련 행사로써, 편리한 동선과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두어 여유 있게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한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대신에 행사들 간의 특별한 차이는 없으며, 매년 비슷한 콘셉트와 내용으로 그 안에서 정작 보고 느끼는 것은 이전과 다를 바 없어 실망하기 쉽다. 그러나 소규모 행사는 주최자 본인 스스로가 이런 문화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참여한다. 재미있는 점은 소위 요즘 잘 나가는 핫 아이템 혹은 유행 코드를 차용하지 않아도, 이 자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받으며, 이 문화를 좋아하고 즐기는 최고한의 방문객을 확보할 수 있다.
언뜻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필요 인력과 기획력, 비용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큰 공간을 빌릴 여유가 없어서 좁고 불편하며, 편안한 동선은 기대할 수 없다. 콘텐츠의 취향은 일치하지만, 관람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제작자와 관람객들은 당연한 일로 감수하며 입장하기 위하여 긴 대기 줄도 마다하지 않는다. 진입 장벽은 높지만 이 씬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체험하기 위하여 멀어도 불편하지만 찾아오는 것이다. 즉, 이 씬 안에서만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아트페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는 것이다.
벽의 존재 유무 : 모두가 개방되어 있다
또 하나의 재미는 개방된 공간 안에서 팀별 구분 없이 서로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는 것. 보통의 행사라면 'ㄷ'자 벽을 세워 출판사만의 역사 및 철학,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 주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국내 독립 출판은 생성 역사도 짧고, 체계도 모호하기 때문에 각각의 독립 공간을 확보하기보다 하나의 큰 공간 안에서 모두가 뒤 섞여 흘러가는 방식을 채택한다. 벽을 세울 수 있는 자본적 여건도 부족하지만, 서로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다 보면 그들 사이에서 '특이한 감정'이 유발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행사 참여자들은 본인의 강한 에고와 자아를 거쳐 만들어진 결과물에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자신이 만든 책이 가장 잘 만든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전체 씬 안에서 이런 사람이 나 왔고, 이런 책을 만들었고, 독자들은 이렇게 반응하는구나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가 많아진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노선을 수정할 수도 있고, 혹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는지 체크해 볼 수 있다. 어떤 제작자들은 더 폐쇄적인 방식을 고집하거나 앞으로 더 고립의 길로 가도 되겠다는 판단의 근거를 확보한다. 벽의 유무에 따라서 서로를 관찰하고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큰 페어와 다르게 흘러가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부대 행사 : 취향과 소비의 일치화
7회에 걸쳐 언리미티드 에디션 북아트 페어를 진행해 오면서 '작년에 이렇게 했으니 올해도 이렇게 하면 되겠다'라는 최소한의 노하우가 쌓이면서 탈 아마추어적인 안정적 노선을 취하려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씬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취지와 어긋나지 않는가, 익숙한 방식이 아니어서 다음이 궁금하고 관심이 가는 문화가 핵심인데, 평소 취지와 달리 점차 멀어져 가는 것은 아닌가 라는 고민 끝에 작년 처음으로 새로운 부대 행사 '포스터 온리'(poster only)를 마련하였다.
일민 미술관 전시회 벽 면 위에 낱장의 포스터만 부착하고, 자유롭게 관람하면서 마음에 들면 매대에서 그 포스터를 구매할 수 있는 행사이다. 이를 만든 계기는 다음과 같다. 지금의 예술, 미술, 디자인 등의 시각적인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취향은 무척 디테일하고 탄탄하여 인터넷과 매체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타인과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훈련을 거쳐 발달했지만, 정작 잘 만들어진 고가의 오리지널 작품은 현실적으로 구입할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관의 오리지널 작품의 최저가도 살 여유가 없는 형편인 것이다. 이 같은 괴리감에 빠진 젊은 친구들은 소비와 취향의 불일치를 경험하게 된다.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는 확고하고 그 안에 담긴 철학은 선호하지만, 현실은 가까운 유니클로 매장을 찾아간다.
이로 인한 한계와 슬픔은 예술가에게도 통용된다. 좋은 작품이지만 한 작품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컬렉터가 찾아와서 선뜻 거래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한 장의 아트워크가 백만 원이라면 포스터의 형식을 빌려 백장으로 만들어 만 원으로 판매한다고 가정해보자. 백만 원의 아트 워크는 부담스럽지만 한 장의 만 원이라면 적절한 소비가 가능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셜 펀딩처럼 한 작품을 백 장의 포스터로 나누어 판매한다면, 작가도 동일한 형태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발상에서 시작된 '포스터 온리'는 마치 옥션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고르 듯, 진지하게 포스터를 감상하고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하는 방문객의 자발적 참여와 성황으로 이어져 기획 의도와도 맞아떨어진 행사였다. (개인적인 희망대로 집안의 꽃무늬의 벽지를 가리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되고 있다)
Q&A
Q1. 6년 동안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이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힘들었던 순간은 2009년 서점을 한지 8개월 정도 됐을 때, 배송을 해야 하는데 계좌에 배송비가 없어서 못 나간 적이 있었다. 배송비가 부족하다는 우체국 직원의 연락을 받고 나서 감정이 바닥을 친 적이 있었다. 외부에는 힘들다는 말도 못 하겠고, 어려운 점을 어필하거나 노출할 수가 없어서 스스로 고립되거나 답답할 때가 많았다.
또 다른 것은 나 스스로를 문화 기획자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자영업자 혹은 장사꾼이라고 소개하는 편이다. 겨울 빙판길에 책을 옮기다가 넘어져서 이마에 큰 상처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픈 것보다 책에 피가 묻어 못 팔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본능적으로 내가 장사꾼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한 사건이었다. 의도적으로 문화 기획자라고 소개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 이 문화 씬을 위해서 내 한 몸 바치고 있다는 희생정신 혹은 억울함을 내세우고 싶지 않고, 나를 알아봐 달라고 호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Q2. 독립 출판의 큐레이션은 주인의 취향과 선별에 따라 정해지는가
추상적이고 직관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모두 다 거래하기 어렵고, 오래갈 수 없음도 서로 알고, 면밀하게 명문화된 규정을 정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규모와 관계없이 조금이라도 자기만의 색을 갖고 있는 책을 받으려고 한다. 골방에서 혼자 만들었다고 해서 받지도 않고, 그런데 그 결과가 시중의 여행기와 똑같다면 더더욱 사양이다. 조금이라도 더 이상하고, 자기만의 요소가 갖춰진 책을 우선한다.
- 직접 제작도 하고 납품도 하는가?
유어마인드도 1년에 5-6권 정도 책을 만들고 납품도 한다. 교보, 알라딘, 예스에도 납품하면서 소수의 취향이 대다수의 독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본다. 판매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극단적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유어마인드 독자가 동시에 알라딘에서도 책을 구입하는 것 보편적이다. 여러 가지 시도를 재미있게 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Q3. 독립출판문화 자체가 불친절하고 비사업자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최근 서점이 많이 생기면서 그에 따른 유통 통로가 많아지고 대중들에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면도 있는데,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체성이 흔들리다고 보는지 아니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최근 독립 서점이 많이 생기는 걸 보면서 작년 올해 좀 이상했고, 내년에도 또 달라지겠구나 싶은 예감이 들었다. 앞서 독립 영화, 인디 음악 업계가 한 번씩 겪어 갔던 상황을 보는 것 같았다. 갑자기 한 번에 히트하고, 추락하면서 회생이 힘들어지는 타 업계 현황을 보면서 어떤 문화라도 연차가 쌓이면, 오래되거나 더 불분명한 독자들이 유입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약간 더 넓어지면 조금이라도 차별성이 생기는 것 같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책방이나 서점마다 갖고 있는 셀렉이나 다른 요소들이 더 뚜렷해질 것이고, 그것을 쫓아 찾아가는 독자들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다양해질 것 같아서, 내부적으로는 반기는 입장이다.
Q4. 독립 서점은 지역 서점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성 책을 취급하는 소형 서점들도 지역 서점의 기능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 한국의 소형 서점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소형 서점들은 사라지고 있는데 반대로 독립 서점은 증가하고 있는 모습이 일상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평범한 소형 서점을 한 예로 들어보자. 매출이 계속 떨어지는 동네 서점이었는데, 폐업 위기 앞에서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을 계속 섭외하고 초대해서 매일 행사를 진행했다. 무명작가의 낭독회와 사인회를 수개월 있어가자 사람과 지역 내 소문이 퍼지면서, 다양한 작가들이 유입되고 그들의 매력을 알리는 일들이 반복되어 갔다. 이것이 일종의 도화선이 되어 서점은 갱신이 가능해졌고, 이 행사의 핵심 포인트는 쉬지 않고 매일 했다는 것이다. 인기가 없거나 불성실한 작가라도 큰 타격 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특수했던 경우가 여러 종류의 상점 안에서 가장 빨리 복구되고, 가장 빨리 사람들이 모여들고, 가장 빨리 단기간에 활성화된 곳이 서점이었다. 피해 지역 내에서 연대하고 커뮤니티로써 대화하고 싶고 참여하고 싶은 공간이 미용실이나 슈퍼마켓이 아닌 서점이라는 것이다. 서점 안에는 텍스트와 말이 있고, 상대가 없더라도 활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핵심적인 치유 커뮤니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경우 어떤 서점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의 서점처럼 갱신되는 새로운 서점이 나올 수 있고, 헌책방에서 매달 랜덤으로 책을 보내주는 서비스를 오픈하여 믿을 만한 책을 공급하겠다는 서비스 마인드가 나올 수도 있고, 책방을 특수화시켜서 아이들 특성에 맞춰 부모와 연대할 수 있는 책방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Q5. 책방을 운영하면서 출판도 하고 있다. 다양한 독립 출판물을 큐레이션 하는 장점이라면 다양한 트렌드를 볼 수 있고, 고객을 접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알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분야에 잘 알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스스로의 프레임에 갇혀 비 실험적이거나 선호도에 따라 흘러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독립 서점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출판과 기획을 하고 있는 것에 따른 어려운 점이 없는가.
- 실제로 그렇다. 그 씬에서 없는 요소를 찾아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 안에서만 갇혀 보고 판단한다는 단점도 있다. 보통의 독립 출판은 본인의 욕구와 계기로 만들어지지만, 유어마인드는 그와 다른 최소한의 전략으로, 살짝 비켜가는 일종의 편협한 전략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더욱 강박적으로 다양하게 역할을 회전시키고 있다. 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벅차고 힘들지만, 회전이 안되면 더 갇히겠다는 불길함을 느낀다.
책방과 출판만 하면 더 갇힐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글도 쓰고, SNS도 하고, 아트북페어도 기획하려고 한다. 어떻게든 환경에 맞춰서, 산만하고 방만하게 해 나가면서, 고정된 프레임을 연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도쿄 아트북페어도 가는 이유가 직접 보고 확 다른 자극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한 요소들을 개인에게 투입하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그 틀 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다.
현재로써 유어마인드의 출판물도 기성화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상 불친절하다고는 했지만 추천사 따위를 넣고 있는 걸 보면 이거 배신 아닌가 싶다. (웃음) 그럼에도 이런 점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으로써 조절해 나가려고 한다.
*본 강연은 2016년 4월 5일 서울책방학교 강연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언리미티드 에디션' 공식 홈페이지(http://unlimited-editi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