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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Jul 12. 2016

헌책은 헌책이 아니다:이상한 나라의 헌책방(2부)

#서울책방학교8-2강 : 헌 책을 대하는 서점인의 자세 

소로우의 <월든>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라기보다 현실적인 내용을 주로 하고 있다. 얼마나 경작을 해서 얼마를 벌어야 하고 써야 하는 등의 회계 장부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보통은 아침부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침이라는 시간은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해준다. 사람마다 몸의 리듬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또한, 오전이 아닌 오후 3시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연다. 오픈 시간을 3시로 정한 이유도 사르트르의 <구토> 때문이다. 초반부에도 나와 있듯이, 사르트르는 평소 동네 도서관에서 연구도 하고, 카페에서 글도 쓰며 보냈다고 한다. 그가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늘 시간은 오후 세시를 가리키고 있다. 3시라는 시간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이르거나 혹은 늦은 시간이며, 그러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일을 해야지" 하면 오후 3시, "좀 이르다. 그래서 조금 쉬었다 할까" 아니면, "너무 늦었다, 내일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만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는 매달 1일 재장정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의 작가 함석헌은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연로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늘 공부하고 배우려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특히, 자기 철학, 자기 역사, 자기 종교, 자기 사계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큰 울림을 전해준다. 책방 운영은 돈을 벌기 위한 생계 수단이지만, 나의 정체성과 철학을 만들어가는 장소이자 수련의 장이다. 과연 우리들은 어떤 삶의 철학과 정체성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가. 꾸준히 공부하고 자신을 바로 서게 하기 위한 실천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책을 읽혀야 한다는 실체 없는 환상에 매달리고 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집착하기보다는 '책을 읽어도 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가령, 거실에 TV를 치우고 도서관처럼 꾸며 놓고도 아이에게는 읽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못 읽게 하는 경우도 많다. 도서관처럼 꾸며 놓은 거실이라는 하드웨어는 잘 갖추어 놓더라도, 정작 아이가 읽어도 되는 환경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책방에 와서 책을 많이 읽게 할 수 있을까", "한 권이라도 책을 팔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 사람이 책을 사도 되는 이야기를 대화로 풀어가기 위한 방안과 노력이 필요하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확연히 한국과 외국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본 업계를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무조건 따라 하기보다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의 헌책방은 한국 전쟁 피난 과정에서 생겨난 반면, 일본은 메이지유신 개화기부터 필요에 의해서 헌책방이 생겨났고, 지금의 책방, 서점, 출판사가 형성되어 왔다.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헌책방 거리가 조성되고, 그에 따른 지자체 지원도 탄탄하며, 여전히 사람들이 찾고 있고, 학생들 또한 고서를 읽을 수 있는 순환의 고리가 활성화되어 있다. 최근 일본 학생들은 백 년 전의 책을 읽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러한 독서 흐름이 국내로 유입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책을 안 읽는 것이 아니다. 예능을 비롯한 영화, 드라마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정주행 하면서 독서는 평면적인 개념으로 접근하여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독서는 시간의 개념보다는 마음의 틈, 이 책을 할애할 수 있는 틈이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여유의 있고 없고의 유무보다는 마음의 한편을 빌려 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헌책방의 독서모임 '막독' 제18기 2차 예비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헌 책방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받은 질문 BEST TOP 3!


BEST 3. 헌책방을 해도 먹고살 수 있나요 


"사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자들은 인터뷰를 하면 늘 물어본다. 보다시피 운영이 어렵다면 여기까지 인터뷰를 할 수가 없을 텐데 말이다. 운영이 어려웠다면 단연히 그전에 서점을 접었을 것이다. 경제 지표라고 한다면 내가 회사를 다닐 때도 빚은 있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빚을 모두 탕감하여 지금은 빚이 없다. 


나는 본래 언행일치되는 생활을 동경해 왔다. 보수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책에서 읽었거나 본받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해 봐야지 라고 늘 생각한다. 이반 일리치 학자의 좋은 말들 중에서 꼭 실천해 보면 좋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신용 거래를 안 하는 것, 즉, 현금만 사용하는 일이다. 현찰로 내고, 현금으로 물건을 산다. 그리하면 큰돈을 비롯하여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렇게 해보는 것이다. 백만 원짜리 물건이 사고 싶다면 할부 카드 결제하기 전에, 10개월의 시간을 정해 놓고 그 돈을 모아 사는 것이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10개월 동안 모아서 사려고 했지만, 그때가 되면 갖고 싶다는 마음이 싹 사라진다. 돈을 모으는 기간 동안은 기대감으로 설레겠지만, 10개월 뒤에는 갖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고, 그렇게 모은 돈은 고스란히 자신의 호주머니에 남는다. 사소한 일이지만 실행해 볼 만하지 않은가. 아이들이 사 달라고 떼를 쓰면, 일주일 단위로 혹은, 3개월 뒤에 돈을 모아 사러 가자고 해 보아라. 3개월 뒤가 되면 알 수 있다. 아이들조차도 그 물건을 사고 싶다고 고집부리지 않는다. 가장 자랑스러운 점은 은행이나 개인에게 빚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큰돈은 벌지 못한다. 하지만 돈이라는 것은 자기가 쓰고 싶은 만큼만 벌면 된다고 생각한다. 명품 옷 입고 좋은 가방 메고 싶다면 돈을 많이 벌면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기 때문에 많이 벌 이유를 찾지 못했다. 쓰고 싶은 만큼만 벌면 되지 않겠는가"


BEST 2.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좋은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싫어할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영화는 1년에 고작 1편 보는 것이 다인 내가 카모메 식당이라는 일본 영화를 보았다. 일본 여성이 홀로 핀란드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파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내용 중에는 일본에서 온 여행객이 비슷한 것을 물어본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좋겠어요"라고 하니, 그 주인공이 했던 대사가 바로 내 생각이었다. "단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하는 것뿐이에요."라고.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안 해도 되는 삶이 행복하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자유로운 영혼이라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곰곰이 생각한다.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 과거에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진짜 자유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인 것 같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꼭 생각해 보길 바란다." 


BEST 1. 지금 행복한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추상적인 것을 물어보면 대답하기 힘들어진다. 생각의 여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자유롭고, 급하지 않고, 복잡하지 않은 상태라면 생각할 겨를이 있을 텐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행복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행복은 상대적이고, 실체가 없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서도 말해주고 있다. 애벌레들끼리 탑을 쌓으며 그 위에 대단한 것이 있다고 믿지만, 결국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탑만 있었을 뿐이다. 행복이라는 것도 그러하다. 그래서 떠올린 것은 행복보다는 '만족'에 더 방점을 찍으려고 한다.  


만약 행복 지수를 100이라고 한다면, 어느 한 순간 100이 주어졌을 때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100이라는 행복 지수를 한꺼번에 찾기보다는 우리 주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만족감들, 바닥에 떨어져 있는 1들을 주워 모으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다. 가령, 오늘 점심을 잘 먹었다는 1 정도의 만족감처럼, 밤에 숙면을 취했을 때, 내일 일어났을 때 급하게 처리할 일이 없다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이러한 소소한 1 정도의 만족감을 모으다 보면 금세 100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또다시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오늘 그리고 지금은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제도 오늘도 만족스러웠다고 말이다. 돈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책방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있다."




책방을 운영을 하면서 가장 필요한 요소는 바로 신뢰이다. 손님과 책방과 책방 주인의 신뢰 관계를 변함없이 꾸준히 구축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 나름의 신뢰 세 가지 법칙, MCM을 소개한다. 



비오는 날, 헌책방에 놓고 간 손님의 비닐 우산 


신뢰의 세 가지 법칙 


Mankind 

인간에 관한 신뢰는 중요하다. 인간적으로 신뢰가 어렵다면, 책이 아무리 좋아도 신뢰 관계는 깨지고 만다. 인간성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인격이 덜되어 있다면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Contents

책방의 책이라는 콘텐츠, 다시 말하여 책방에는 좋은 책이 있어야 하고 회전도 잘 돼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완독 하여 제대로 파악한 한 권의 책을 팔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보통 사람들보다도 독서 시간을 오래 갖고 책을 읽지만, 본인이 그 책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그 어떤 것보다도 책은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다. 한번 읽고 끝이 아니라, 그 한 권으로 사람의 정체성과 철학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텐츠 자체의 고유 가치에 관한 신뢰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Money 

아이러니하게도 책방이 상업적인 느낌을 풍기면 책이 갖는 고유 물성과 맞지 않다. 그래서 되도록 돈 냄새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분명 돈은 생계 수단으로 중요하지만, 돈을 밝히는 분위기는 신뢰를 떨어트린다. 돈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수익을 남겨야 하지만, 책을 팔아 돈을 번다는 느낌을 주면 관계의 믿음이 유지될 수 없고, 신뢰 관계 구축에도 되려 손해를 볼 것이다. 


월간  책(Chaeg)  6월호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장의 인터뷰가 실렸다




작가 허먼 멜빌은 미국 현대 문학의 흐름을 바꿔 놓은 위대한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은 흰고래가 주인공인 <백경> (모비딕)으로, 천 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장편 소설이지만 출간 당시에는 50권도 채 팔리지 않는 무명 소설가의 작품이었다. 그 당시 소설가로서 인정받지 못했을뿐더러, 가족 부양을 위하여 30년 가까이 미국 세관으로 평생 일만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퇴근 후 밤마다 집에서 소설을 쓰고 또 썼다. 결국 그는 <빌리 버드>라는 중편 소설을 집필하던 도중에 끝내 작업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당시에는 소설가로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사후 재평가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미국 문학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커다란 존재가 되고야 말았다.  


그의 정체성은 작가였다. 그가 쓴 책은 팔리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았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책상 앞에서 소설을 쓰다 죽은 소설가였다. 만약, 그가 작가로서 잘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비관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세관원으로 일하다 죽었다면, 과연 지금의 미국 문학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혼신의 힘을 다해 쓴 백경조차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에 실망하여 글쓰기를 멈췄다면 그다음 작품들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책방도 그러하다. 소위 장사가 안 될 때도 있고, 손님이 없을 때도 있고 많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책방의 정체성을 지키며 꾸준히 그 자리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책방은 그럴듯하고 화려한 깜짝 이벤트를 하는 곳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늘 지키고 서 있는 책방이 있다는 것이 책방만이 가진 힘이다. 그 하나의 힘을 굳걷히 믿고 지켜 나아가야 한다. 잘 안 풀리고 실패하는 일이 있어도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인간이라면 한 번은 제대로 생각해보고, 고민하며 어떤 시련을 마주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워 나아가야 한다.  




사업적인 책방 이야기보다는 운영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방에 관한 진솔하고도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와 태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혹시라도 진상 손님 대처법에 관한 조언이 필요하다면 시간을 내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떠나 보자. 책방지기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책방지기가 출간한 <탐서의 즐거움>은 오래된 옛 책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다시 우리들 곁으로 소환한 기록들과 그 책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처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도 숨겨진 자신의 인생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득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지기 윤성근 님의 <탐서의 즐거움> 이 최근 출간되었다






* 본 강연은 2016년 4월 26일 서울책방학교 강연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공식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2s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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