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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Aug 04. 2016

땡스북스의 아이덴티티 (1부)

#서울책방학교 10-1강 : 홍대의 떠오르는 랜드마크, 땡스북스

2016년 5월 10일, 서울책방학교 마지막 10강은  홍대의 땡스북스(ThanksBooks) 이기섭 대표님의 강연으로 마무리되었다. 유어마인드의 이로 님을 필두로 많은 서점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만약 당신이 책방을 하고 싶다면 꼭 땡스북스 대표 님의 이야기를 들어라" 


땡스북스는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책이라는 아이템으로 꾸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잘 구축해 놓은 시스템을 바탕으로, 좋은 북 큐레이션과 홍대라는 특수한 동네 안에서 다양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동네 서점으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다져가고 있다. 이번 책방 학교를 기회 삼아 땡스북스만의 대체 불가능한 정체성과 뚜렷한 목표 의식, 그리고 문화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신념에 대하여 깨달음과 함께 감탄이 절로 일어났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써 그 어떤 경영가 못지않은 수완과 오픈 마인드, 동시에 합리적인 경영관을 장착하고 있는 대표 이기섭 님의 '홍대의 떠오르는 랜드마크, 땡스북스의 아이덴티티' 강연을 지금 이 자리에서 풀어 보고자 한다. 




만약 책방을 하고 싶다면 그것과 관련된 실질적인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올해 6년 차를 맞이한 땡스북스가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6년 차를 맞이하고 있는 홍대의 랜드마크 땡스북스의 내부 전경


최근 1년 동안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책방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일상이 가능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여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다. 요즘은 어떤 일을 진행해도 성공하기 힘든 저성장 기조가 바닥에 깔려 있다. 우리는 한동안 가파른 고성장을 경험해 왔고, 그 빠른 스피드에 익숙해져 어느 순간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할 틈 없이 사는 대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오직 자본에 의한, 돈에 의한 가치만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단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도 그 질문의 끝은 과연 돈을 벌 수 있는가, 아닌가로 귀결된다. 어른들은 그 일을 해서 밥 먹고 살 수 있는가를 제일 큰 고려 대상으로 삼는다.  즉,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빨리 해결해야 할 급선무였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고도의 압축 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저성장 기저로 바뀌면서 그 가치 또한 다변화되어 가고 있다. 생존을 떠나 문화를 향한 시선과 생각 또한 다양해질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 것이다. 예전처럼 자본을 쫓아서 에너지를 쓰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던 사회도 종말을 고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취업은 어렵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뽀죡한 수도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암울한 현실이지만 반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해 보자라는 생각의 전환도 여기서 생겨난다.  


한국보다 산업화가 훨씬 먼저 일어난 유럽이나 미국, 일본만 하더라도 국민 소득이 높은 선진국들은 문화적으로 다양한 양상을 보여 준다. 번화가에 가면 재미있는 스토어도 훨씬 많고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화가 살아 움직인다. 반면 서울은 그에 비하면 문화적 다양성이 한참 부족하다. 그렇다고 문화의 발전 속도가 느리다고 섣불리 속단할 수는 없다. 비록 서울이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과정이지만 학습 효과 또한 빠른 편이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지금보다 더 일상에서 풍요로운 문화적 가치를 중요시할 날이 올 것이다. 서점도 그 일환 중 하나로 봐도 무관하다. 서점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없다. 책의 마진은 식당이나 옷 가게와는 다르다. 그러나 본인의 씀씀이가 크지 않아 먹고사는 일에 큰 지장이 없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가치에 시간을 더 쓸 수 있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2011년 3월, 땡스북스는 다른 곳에 비하면 일찍 동네 서점을 시작하였다. 그때 당시는 도서 정가제가 시행되기 훨씬 전이었고, 온라인 서점으로 인하여 동네 서점이 크게 줄어든 해였으며, 그로 인하여 매체에서는 너도나도 걱정과 우려 섞인 보도를 하기 바빴다. 땡스북스의 대표는 본래 홍대 부근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아마도 전문 경영인이 아닌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다른 시선과 관점으로 서점을 바라보고 운영할 수 있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서점은 본인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히 반영되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힘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의 시작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와 하고자 하는 일이 일치해야 한다. 이 부분은 서점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함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땡스북스의 아이덴티티란 무엇인가 


땡스북스는 좋은 건물주를 만나 세련된 내부의 좋은 공간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픈 초반에는 책장에 있어야 할 책이 빼곡하지 않았다. 꽂을 책이 부족하여 표지가 보이도록 배치할 정도였다. 서점이지만 팔아야 할 책이 부족한 것이 오픈 초기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어떤 일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성장하기 마련이다.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면 서점은 밥벌이의 생계 수단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라는 마음이 훨씬 컸다. 머리털 나고 스스로가 가게를 운영할 거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로 만난 클라이언트 중 한 명이 지금의 건물주였고, 갤러리 전시가 있을 때마다 포스터 디자인과 제작을 맡아 진행했다. 땡스북스 건물은 지하 1층은 갤러리로, 지상 2층은 운영 사무실, 1층은 카페였다. 홍대 주변이 워낙 카페가 많다 보니 1층 카페가 문을 닫게 되었고, 카페 대신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문의가 들어왔다. 때마침 홍익 서점이 폐점하면서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책을 사러 가는 일이 불편해지자 개인적인 바람으로 카페 대신 서점을 추천했다. 홍대 주변에는 전문 서점은 있어도 모든 책을 다루는 서점이 없었기에 건물주에게 서점 사업 기획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1997년 1년 동안 뉴욕에 머물면서 지낸 어학연수 기간 동안 서점에 관한 좋은 경험과 인상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학원이 끝나고 남는 시간을 주로 뉴욕의 반디앤노블 서점에서 보냈다. 그 당시 뉴욕 서점은 한국 서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환경이었다. 문화 공간으로써의 기능이 전무했던 국내 서점과 달리 뉴욕의 서점은 커다란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어 계산되지 않은 책도 편하게 읽을 수 있었고, 스타벅스 커피를 사 와서 다 마신 다음에 놓고 가는 모습도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외롭고 힘든 타지 생활은 뜻하지 않게 뉴욕 서점에서 위로받고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한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돌아와서도 서점을 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어졌다. 국내 서점은 문화 공간이 아닌 이상, 책을 읽는 것에 인색하며 작은 서점이라면 더욱이 책을 사지 않고 구경하면 눈치 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이와 다른 차별화된 문화 공간으로써의 서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여기서 문화가 가진 속성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한다면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만족감은 일정 부분은 포기해야만 한다. 그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누리는 행복감에 만족해야 한다. 대신, 그러한 노력으로 얻어진 경제적인 대가가 크지 않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올해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 행사를 방문하고 여유 시간을 마련하여 스위스와 독일 베를린의 새로 생긴 서점들을 방문할 기회를 마련하였다. 독일 베를린 안에도 수많은 서점들이 있다. 베를린은 현재 뉴욕과 파리가 예전에 맡았던 역할들을 흡수하고 있는 도시이다. 통일 이후 동베를린의 싼 물가 덕분에 유럽의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뮤지션들이 대거 그곳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유럽은 어디를 가더라도 온라인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독립 출판사들도 상당수가 베를린을 거점으로 하고 있다. 그곳 또한 서점이 아닌 맥주 가게나 아이스크림 가게를 한다면 경제적으로 큰 소득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이 책을 판 수입으로 충분히 내가 먹고살 수 있다면 돈은 적게 벌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더 시간을 쏟겠다는 마인드이다. 단지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자본 획득이 큰 목표라면 서점을 해서는 안된다.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거나 건물의 세를 줘서 소득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문화적 유산들이 더욱 많아져야 도시의 문화적 다양성이 확보되고 풍요로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은 저성장 기조 아래 자연스럽게 문화적 공간들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 어차피 자본 획득 노력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의미가 있고 좋은 일, 조금 더 문화적 유산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한 풍조가 개인이 서점을 운영하는 환경적 요소에 플러스알파가 되어 가고 있다. 책을 파는 공간으로 시민들과 함께 공간을 향유하면서, 그로 인하여 또 다른 새로운 프로젝트, 즉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을 이어서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단지 책만 팔아서 수익을 내고 운영하는 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부분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다. 땡스북스를 지금까지 이끌어 올 수 있었던 현실적인 이유 역시 일단은 경제적으로 큰 소득이 없이도 생계의 위협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부으며 참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동네 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점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유지할 수 방향에 관한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크게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번 강연의 큰 맥락을 짚어 나가기로 한다.  


콘셉트 


명확한 콘셉트가 있어야 그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규정할 수 있다. 땡스북스의 콘셉트는 시작부터 동네 서점이었다. 동네라는 부분을 서점 안에 최대한 끌어 들었다. 지금은 동네 서점이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 당시 동네 서점이라면 주로 참고서를 판매하는 곳으로 공간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 당시의 서울은 동네 빵집도 사라지고 파리크라상과 던킨도넛과 같은 프랜차이즈가 장악해 가고 있었다. 지금은 개성 넘치는 작은 개인 빵집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빵집이나 서점이 동네마다 다양하게 많이 분포되어야 풍부한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땡스북스는 단순하지만 홍대라는 동네 성격을 잘 담아낼 수 있는 동네 서점을 지향하였다. 


그에 따라 땡스북스라는 이름도 영문으로 지었다. 만약, 서촌, 북촌, 인사동과 같은 서울 중심가에 오픈했다면 네이밍이 달라졌을 것이다. 일단 홍대라는 동네를 생각할 때, 외국인들이 많이 방문하고, 젊은 세대들도 많은 트렌디한 곳이다. 비록 외국 서적을 다루는 책방은 아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집중하기 위하여 영문 이름을 찾았다. 브랜딩을 시작할 때 이름을 정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중요한 관문 중 하나이다. 그리하여 처음 서점을 하고자 한 본질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책이 좋았고, 책한테 고마운 마음이 강하였고, 글자 그대로 그런 고마운 마음을 담아 땡스북스(ThanksBooks)라고 짓게 되었다. 바로 구글링을 통하여 검색되는 영문 이름이 없자 도메인부터 구입하였다. 




그래픽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네이밍이 정해지자 그다음의 디자인은 수월하게 이어졌다. 클라이언트 없이 오롯이 서점을 위한 디자인 작업은 손길 닿는 대로 구현할 수 있는 재미와 즐거움이 컸다. 칼라도 따뜻한 공간의 서점을 원했기에 노란색으로 정했다. 땡스북스의 노란색은 인쇄 잉크 중에서도 순도 100%의 노란색이다. 즉, 어디 가서 인쇄해도 똑같은 원색이 나오는 색이다. 로고의 조합도 어감에서 S에서 끊어지고, 중간의 바(bar)는 책 등을 표현한 심플한 심벌이다. 가운데 바를 넣은 것도 한눈에 다른 로고 타입과 구분하기 위한 변별력으로 작용하였다.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지만 다른 영문 로고들 속에 섞여 있어도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가운데 바를 넣고 텍스트가 감싸는 디자인을 적용했다. 이는 컵에도 적용 가능하며, 봉투도 노란색으로 하고 친근한 느낌을 살리기 위하여 수박 머리를 한 땡스라는 캐릭터도 만들었다. 


본업이 디자인이다 보니 서점의 아이덴티티를 위한 기본적인 디자인 틀을 잡는 일은 손쉬웠다. 그러나 만약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비용으로 들어가는 외주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디자인이 좋아야 서점이 잘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디자인은 하나의 경쟁력일 뿐, 투자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 비용을 굳이 디자인에 투자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아이덴티티 안에서 디자인적 영역이 크다면 살릴 필요는 있지만, 자기만의 아이덴티티가 확실하다면 크게 상관없는 부분이다. 서점 창업의 비용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더욱 집중해서 비용 관리에 힘을 써야 한다. 서점만의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시스템 


시스템 구축이 제일 큰 일이다. 같은 일들을 반복해야 할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3개월은 꼬박 서점에 기거하며 힘을 쏟았다. 시스템이 안정이 되자 3개월 이후에는 다른 일도 병행할 수 있었고, 지금은 가끔씩 간단한 일들만 체크하기 위하여 방문한다. 그렇다면 땡스북스의 시스템은 무엇일까. 바로 윈윈(Win Win)이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서로가 도움이 되는 영역을 찾아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일을 하다 보면 늘 결정의 연속이다.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은 바로 선택이다. 이것을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언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이 또한 수월해진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판단이 필요할 때는 어떤 방향이 서로를 위한 윈윈인가를 고려해 본다. 그러한 차별화된 일환 중에 하나가 매달 새로운 출판사 전시를 지속적으로 여는 일이다. 이는 출판사에게는 책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처음 서점을 오픈할 때는 서점 안에 빈 공간이 많아서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시를 위하여 메인테이블과 제일 큰 벽면을 비워두고 있다. 그곳에 책을 배치하면 매출 증대가 발생하겠지만 그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매달 한 번은 새로운 전시로 보여 주고 있다. 독자들도 서점을 방문했을 때, 관심 있는 콘텐츠가 있다면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전시는 열린책들에서 세계문학전집 200권을 기념한 편집자의 책상이라는 콘셉트로 책상을 그대로 들여놓은 전시였다. 


열린책들 W세계문학 - 1X200 (2012.04.05~ 05.03)


편집자의 책상은 <노인과 바다>를 만들기 위한 1교, 2교, 교정본과 참고로 살펴본 자료들을 다 가지고 와서 책상 그대로를 옮겨와 서점에서 전시를 한 것이다. 교정지들도 그대로 볼 수 있고, 벽면에도 선택되지 않은 비컷 표지 디자인들을 모아서 전시하였다. 지금 표지와 어떤 것이 좋은지 독자들의 의견도 직접 듣고, 이렇게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의 과정들을 오픈 공개하여 독자들의 호응이 좋았던 전시로 회자됐다. 서점은 결과물의 책만을 볼 수 있지만 그 책이 나오기까지는 저자 노트가 있을 수 있고, 그중에서 발췌하고 요약하여 압축된 한 권이 있기 때문에 서점 전시는 그 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풀어냈다. 


열린책들 편집자의 책상 
노인과 바다의 다양한 B컷 표지들 


출판사에게 무상으로 한 달 간의 서점 전시를 제공하고 있다. 대형 서점이라면 매대 앞의 특정 출판사의 책을 배치하고 홍보하기 위해서 일정의 비용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땡스북스는 시작부터 직거래를 고집해 왔고, 기꺼이 서점을 믿고 출판사가 위탁하는 책이므로,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한 달이라는 사이클로 전시를 열고 있다. 이것이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며, 땡스북스의 북 시스템은 윈윈이라는 서클 안에서 지속적인 직거래를 구현하고 있다. 






2011년 1월 중순 처음 서점을 하기로 마음먹고 먼저 정한 일은 오픈 날짜였다. 오픈은 한 달 조금 더 시간을 두고 3월로 정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된 상태에서 오픈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그러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고 준비된 것이 없었기에 하루라도 빨리 부족함을 깨닫고 개선하자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서점을 오픈하고도 실제 팔 수 있는 책은 예상대로 부족했다. 출판사를 통해 직접 책을 받았다면 시작부터 갖춰놓고 책을 팔 수 있었겠지만, 이 서점을 하고자 하는 것도 일종의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무작정 서점에만 올인할 수 없었다. 책을 구입할 수 없는 예산 안에서 느리게 가더라도 출판사와의 직거래를 꾸준히 늘려 나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오픈할 때는 5군데의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시작했다. 그전에 미리 홍대에 이런 서점을 오픈하니 직거래를 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20군데 이상의 대형 출판사에 의욕적으로 메일을 보냈다. 문학동네에서만 딱 한 번 답장이 왔으마 직거래는 어렵다는 거절의 내용이었다. 원칙적으로 대형 출판사는 동네 서점과는 직거래를 하지 않는다. 교보문고나 온라인 서점 이외에는 직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들어 조금씩 동네 서점들과도 직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출판사의 책을 직접 구입할 수는 없었다. 마진율이 있어 총판을 통해 서점을 오픈하면 모든 예산을 책 구입에만 사용해야 할 판이었다. 


1년을 버티기 위해서는 일단 출판사와의 직거래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시작할 때는 5군데였던 직거래 출판사가 6개월이 지나자 50군데로 늘어났고, 현재는 500군데 넘게 증가하였다. 이제는 반대로 책을 입고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도 공간이 부족하거나 성격이 맞지 않으면 정중히 사양하는 시기까지 이르렀다. 운이 좋아서 6개월이라는 빠른 시간 안에 해결되어 안정화에 접어들었지만, 많은 노력의 결과임을 말할 것도 없다. 당시 동네 서점이 사라지던 시기에 처음 생긴 홍대 동네 서점이라는 이점으로 많은 매체에서 소개해주었고, 출판사들도 한 군데 정도는 편의를 봐준 덕분이었다. 이렇게 출판사와의 직거래 시스템이 구축되고, 출판사에게는 전시라는 혜택을 제공하며 윈윈 관계를 유지해 가고 있다.  




땡스북스는 책 이외에도 음반도 함께 취급한다. 문화 공간의 서점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공간이 작아도 책을 돋보이게 하는 아이템들도 필요하다. 영화에서도 아무리 주연 배우가 연기력이 좋고 잘 생기고 멋있어도 그것만으로는 흥행하지 못한다. 맛깔스러운 조연들도 필요한 법이다. 서점의 책은 당연히 주인공이지만 그와 함께 음반, 문구, 커피 등이 함께 한다면 더욱 돋보인다. 문화 공간의 서점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음반 매출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청음 시설을 갖추고 무료 음감을 해 놓은 이유는 책을 읽다가도 음악을 들으며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여유를 가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최근 교보문고가 음반 매장을 축소하고, 클래식 룸도 폐쇄했을 때는 팬으로서 서운한 마음이 앞섰다. 교보문고라는 공간에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소중하기 때문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은 경제적 논리로 생각하기보다 아끼고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 크다. 땡스북스를 운영하면서 절대로 하지 않은 일 중 하나는 동네 서점이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책을 더 사달라는 내용의 캠페인이다. 보이지 않게 힘든 부분도 있으니 조금 더 아껴달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동정은 한두 번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스스로가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발휘해야 한다. 땡스북스는 교보문고나 예스24가 줄 수 없는 매력을 독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물론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은 경쟁이 불가능한 막강한 상대들이지만, 그들이 못하는 부분을 땡스북스가 채워줄 수 있다면 충분하다. 




음반 이외에도 서점 안에는 조명, 가죽 제품, 독립 출판물, 꽃도 함께 취급하고 있다. 이것은 다 홍대 근처에서 나온 일종의 동네 산물들이다. 초기에는 직배사 소니의 앨범을 들여놓았지만 온라인 가격으로 판매할 수가 없었다. 가격 정보가 오픈된 상황에서 굳이 온라인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앨범을 들여놓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가격 경쟁에서 밀릴 뿐만 아니라 더 유니크한 아이템에 집중하고 싶었다. 또한, 콘셉트가 동네 서점이기 때문에 홍대라는 동네 레이블, 동네 스튜디오의 제품들, 동네에서 생산된 물건들에 집중했다. 그야말로 홍대라는 동네에 서점이라는 공간을 개방한 것이다. 이런 부분들들 열어 놓았더니 결국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콘셉트를 동네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동네 서점이라고 정했더니 서점을 필요로 하는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서점이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보여 주고 개방하니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의 연결 고리가 생겨났다. 


땡스북스 초기에는 바이헤이데이 가구의 쇼룸처럼 활용되었다


SNS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통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모든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그러면서 소통이 일어나고 인연이 발생한다. 가령, 서점 초기에는 매대를 구입할 비용조차도 없었다. 중고 매장에서 가구를 사서 오픈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온라인 가구 사이트를 살펴봤다. 바이헤이데이(ByHeyDay)도 그 당시 막 생겨난 온라인 가구 회사였다. 그러나 온라인 신생 회사이다 보니 가구 쇼룸이 당시에 없었고, 땡스북스를 쇼룸처럼 사용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곧 무상으로 가구를 받아 땡스북스를 쇼룸처럼 활용하였고 오프라인 매장처럼 판매도 진행하였다. 이는 서점 창업 비용도 절약하고 가구까지 판매한 셈으로 바이헤이데이 또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구 한 대가 책 30권 판매와 맞먹었으며 마진의 5%를 책 한 권과 교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제는 바이헤이데이도 자체 쇼룸이 생겼고, 비슷한 가구 브랜드의 등장으로 자체적으로 고가의 마케팅 전략으로 이동함에 따라 서점의 가구 판매도 초기만큼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땡스북스 또한 첫 해를 넘기면서 책 구매가 꾸준히 이루어졌고, 지금은 매출의 75% 이상이 책 판매이다. 이처럼 땡스북스는 철저하게 동네 서점이며, 동네와 소통을 시작했고, 윈윈이라는 큰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다. 


실제로 서점을 운영하는 대표 스스로도 윈윈이 되어야 한다. 나와 직원과의 관계, 우리와 출판사와의 관계, 독자와의 관계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하면 모두가 윈윈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입장이 대표의 역할이다. 출판사와는 전시라는 형태로, 홍대 동네 사람들과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장으로, 땡스북스 직원에게는 최대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직원들에게는 책 판매의 마진만으로 넉넉한 월급을 보장해 줄 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도 직장이 되고 매일 상주하다 보면 초반의 즐거움이 반감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이 직장과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지속적인 포인트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운이 좋게도 같이 시작했던 2명의 직원이 서점과 함께 성장해 주고 있어 이직률이 거의 없다. 재미있는 점은 처음 서점 오픈 때 아르바이트로 와준 제자이자 학생이었던 친구가 지금은 땡스북스의 점장이 되었고, 전 직장의 디자이너가 지금의 실장을 맡아주고 있다. 이 두 직원 덕분에 시스템이 자리를 잡아가자 대표가 서점을 비우고 다른 일을 할 여지가 생겼고, 강연 의뢰도 수락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직원과의 윈윈 관계는 당연한 부분이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이루 어지가 쉽지 않다. 스스로의 기쁨도 물론 중요하지만 상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신중하고 현명한 선택이 뒤 따라야 한다. 




우리는 서점을 이용하는 고객이 중요하며, 그들에게 어떤 편의를 줄 수 있을까


일단, 책을 읽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이곳은 책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모두가 이 공간으로 들어선 순간부터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가야 하며, 굳이 책을 사지 않더라도 그러한 목적을 갖고 운영되는 문화 공간이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너무 살갑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서점 내부에서 음료도 판매하지만, 외부 음료 반입도 가능하며, 사진을 찍어도 제재하지 않는다. 반면, 카메라 찍는 소리가 커서 다른 고객에게 방해가 된다면 그럴 때는 가볍게 주의를 준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독자들은 이 공간이 마음에 들고 편안하다면 다시 찾아오게 마련이다. 재방문이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소비 또한 이루어진다. 한번 와본 것만으로 구입을 강요한다면 문화 공간의 기능은 자동 상실된다.  


그것으로 서점이 유지되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주말에는 평균 4백 명 가까이 방문하고 있고 꾸준히 책 판매는 늘어 75% 이상이 매출로 발생하고 있다. 서점이 먼저 손을 내밀고 베풀면 그 혜택은 저절로 따라온다. 무엇이 먼저인가 묻는다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꺼이 줄 수 있는 것을 많이 주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시스템이 안정이 되고 지속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하여 먼저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이치이기도하다. 







* 본 강연은 2016년 5월 10일 서울책방학교 강연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 2부는 땡스북스만의 콘텐츠와 질의응답으로 이어집니다. 

이미지 출처 : '땡스북스' 공식 홈페이지 (http://www.thanks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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