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금정연, 김중혁과 함께 하는 서점 기행
염리동, 소금길이라는 지명은 여전히 낯설고 생경하다. 늘 익숙하게 드나들던 이대역과 무척 가까운데도 말이다. 소금길로 이어지는 역 출구로는 나가본 적이 없다고 말 한 이대 자취생도 있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고 가는 주변 풍경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음이 놀랍다. 사실 염리동을 알게 해 준 주역은 다름 아닌 책방 <일단멈춤>이다. 개인 책방이 손에 꼽을 그 당시 여행 서적만을 취급하는 책방이라는 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신선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탐방서점을 마지막으로 일단멈춤과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저 멀리서도 눈에 확 띄던 하늘색의 청량함을 잊지 못하기에 소식을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책방이지만 탐방서점을 통해 김중혁 작가와 주고받은 이야기는 이곳의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나름의 공식 방문이 있던 날은 시작 시간을 조금 넘겨 도착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방 문 여는 시간은 오로지 제 개인적인 타임에 맞춰져 있어요."라는 친숙한 목소리가 이미 모인 자들의 웃음소리에 뒤섞여 들려왔다. 조용히 눈으로 앉을자리를 찾아 슬그머니 그 곁으로 다가가 앉는다. 시간 내 들어오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안고 그다음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개인이 책방을 한다면 책을 많이 좋아해도 힘들고 그 책들이 팔리지 않아도 힘들 것이다. 만약 책방을 한다면 가장 필요한 개인적인 덕목을 꼽자면 일희일비하지 않는 자세이다. 갑자기 손님이 많이 찾아와 한 권 이상을 사가는 날도 있지만 그다음 날은 평소보다 더 안 팔리는 날들이 줄줄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다시 반짝 사람들이 모이고, 그럴 때마다 본의 아니게 책방 주인의 마음도 들쑥날쑥 감정의 널을 뛴다. 왜 오늘은 손님이 없을까, 고민 아닌 고민도 시작된다. 그 외에도 비슷한 책방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비교를 하게 된다. 혹은 묻지 않아도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형태로 이런 것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 지금 이 공간이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는지, 운영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고 홍보도 없이 열고 있는데 툭하면 밖으로 외출하고 가끔 주말에 문도 닫는 일도 있는데 이것이 맞는 건지 아닌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므로 최대한 일희일비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방만하게 운영하는 탓에 정확한 수익을 계산하지 못하고 있다. 독립 출판물은 위탁의 형식으로 판매되어 매달 말 일에 정산을 한다. 70%를 떼고 나면 순수익이 나오지만 백만 원도 못 되는 일이 현실이다. 실제 대부분의 수익은 책 판매보다는 책방의 워크숍, 책 만들기 수업, 일러스트 관련 수업으로 강사와 나누는 수익 배분에서 채워진다. 그것을 합쳐야 백만 원 정도가 한 달 수익으로 책정된다. 이마저도 스스로 쉬고 싶은 마음이 커서 프로그램들을 지워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책방에 앉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섭외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책방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공간에 모여들었고 우연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음악을 하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재능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즉석에서 함께 하기로 이루어진 경우가 90% 이상이었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꾸려졌고 여행 토크처럼 작가들과 함께 하는 일회성의 기획들과 장기 워크숍 등을 1년 동안 진행해왔다. 그중에서는 독립출판물을 만드는 프로그램은 오는 분들이 툴을 배우고 싶다는 요청에 인디자인 수업도 열었고 관련 일러스트 수업으로 이어졌으며 프랑스어 수업도 열렸다.
유일한 생계 수단이며 수입원이기 때문에 매일을 꾸준히 굴려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로 인해 밤 11시에 저녁을 먹는 생활이 1년 이상 지속이 되어 내 안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느낌도 없지 않아 생겨났다. 그런 이유로 차츰차츰 워크숍을 정리해나갔고 일회성 워크숍만을 운영하게 됐다. 10월 말이 책방 계약 만료일이라서 앞으로 이 책방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측면도 한몫한 것 같다. (주: 현재, 일단멈춤은 영업을 종료하였다)
여행은 인생의 큰 계획 속의 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 지점이 있다면 여행과 관련된 출판물을 만드는 것,
책방 차원의 장기적 목표로 삼고 싶다
책방을 하면서 사소하면서도 많은 인연들을 맺어왔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집트의 같은 곳에서 함께 다이빙을 했던 사람도 만났고 어쩌면 같은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했을 수도 있는 그런 인연들을 발견할하기도 했다. 여행을 왜 좋아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스스로가 정착을 잘 하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책방의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정작 책방의 미래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에 관하여 특별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가면 무조건 신이 난다. 스스로가 소극적인 사람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사람, 안으로만 돌고 도는 사람이지만 여행에서는 새롭게 다가오는 자극들에 하나하나 흥분이 된다. 스스로가 많이 느끼고 그런 부분 때문에 계속 밖으로 향해 나가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책은 주로 한 권씩만 있고 사입하고 있다. 한종당 1-2권만 들어오기에 반품하는 경우가 없다. 한번 빠진 책은 들어오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그중에서 가져다 놓으면 잘 팔리는 책이 있다. 늘 구비되어 있는 책은 배수아 작가의 <잠자는 남자와의 일주일을>이다. 실크로드에 관련된 그림책도 반응이 좋다. 만약 책방에서 한 권만 팔 수 있다면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꼽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비록 여행책은 아니지만 넓은 범위의 여행과 관련된 카테고리 안에서 판매가 가능하다면 가장 많이 팔고 싶은 책이다. 매일 읽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또 한 권을 꼽자면 정수복 작가의 <파리를 생각한다>이다. 개인적으로 첫 배낭 여행지가 파리였고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찾아갔다. 굳이 파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어떤 도시가 됐든 그 도시만의 결들을 촘촘히 읽어낼 수 있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추천한다. 하지만 대개는 이 책을 어려워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대부분 손님들은 말랑말랑하고 감성적인 책, 후루룩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원하지만 정작 추천하는 책들은 인문학적 성격이 담겨 있는 책들이다.
추천이란 늘 어려운 분야 중 하나이다. 손님들 역시 추천해달라고 하지만 아무런 정보도 구체적으로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어디를 가고 싶고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를 반대로 물어야 한다. 사진을 좋아하는지, 에세이가 좋은지 마치 숨은 고개를 하듯 여러 가지 세부적인 질문들을 주고받으며 범위를 좁혀 나간다. 만약 프랑스라고 한다면, 예술 전공자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프랑스의 영화관들만 찍은 사진집 <시네마 드 파리>라는 독립출판물을 추천하겠다. 이 책은 이름과 주소 같은 정확한 정보는 적혀 있지 않지만 사진 속 간판과 분위기만으로 영화와 프랑스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만족할 것이다. 혹은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말랑말랑한 감성의 책을 찾는 독자에게는 글이 많은 책보다는 사진과 글이 적절히 수록된 독립출판물 책을 여러 권 찾아 펼쳐 놓고 보여준다. 1년 반 넘게 책방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 선뜻 책방에 와서 추천해달라는 손님은 열의 한번 꼴이다. 어쩌면 분위기의 성격 탓에 말을 쉽게 걸지 못하는 이유도 있겠다. 보통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거나 말을 섞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추천을 해도 성공할 확률이 낮은 편이다.
해방촌의 문학 서점 고요서사는 일단멈춤보다도 공간이 더 작은데 손님이 막상 들어오면 머뭇거리며 책을 사지 않고 나가 죄송하다고 말한 손님도 있다고 한다. (웃음) 아직까지는 사과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보다는 벼르고 별려서 특정한 날을 잡아 오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큰 결심을 품고 찾는 이들이라 어떻게든 한 권의 책을 사고자 하는 의지가 엿 보인다. 간혹 주말을 찾는 커플이나 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진만 찍고 가겠구나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내부 및 표지에 관한 사진 촬영은 간섭하지 않지만 너무 자세하게 책 내부를 찍는다면 가볍게 주의를 준다. 그래도 가장 힘든 경우는 책방 외관을 10-20분 정도 한참을 둘러보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찍거나 책을 들고 찍어 그 자리에서 올리거나, 특히 독립출판물의 경우는 "나 이거 알아"라는 식으로 과시용 사진을 찍고 바로 나가버리면 곤란함을 느낀다. 뮤직 비디오의 배경으로도 활용이 된 적은 있는데 난감했던 경우는 공간이 예쁘고 작아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시간을 내어 촬영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마주할 때다.
블로그, 페이스북, 홈페이지를 운영하는데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SNS는 서점 운영에 완벽하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할 수밖에 없다. 대로변에 있지도 않고 노출이 잘 되는 곳도 아니기 때문에 매일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주로 인스타그램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즉각적인 책방의 상황을 올리기 위함이다. 대부분 책방에 자주 올 수 없지만 책방은 늘 열려 있고 신경 쓰지 않아도 뭔가를 계속하고 있고 책방 주인은 이런 책을 읽고 있고 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책방은 조용하고 인적도 드물지만 활발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라는 뉘앙스를 심어 주고 싶다. 블로그는 주로 개인적인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공간이다. 이를 보고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분들의 호응에 힘입어 운영하고 있다.
올해부터 홈페이지를 오픈한 이유는 오프라인을 대신하여 온라인의 판매를 넓히고 싶은 장기적인 계획도 숨어 있었다. 책방 주인 모임에서 온라인 서점이 생각외로 잘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서점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판매가 높다고 한다. 아직은 지방에서 독립출판물을 구하기 어려워 온라인을 통해 찾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그 갭을 메울 수 있겠다는 판단이 생겨 온라인으로도 판매 가능한 사이트를 구축했다. 그결과 지금도 꾸준히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큐레이션은 작은 서점에게 있어서 중요한 포지션이다. 온라인 서점 상에서 여행 서적만 판매하는 곳은 일단멈춤이 유일하며 그 컬렉션도 유니크한 편이다. 개별 주문을 제외한다면 공식 웹사이트를 연 것은 일단멈춤이 처음일 것이다. 단행본은 예스24나 알라딘과 겹치는 게 많아 현재 온라인 상 구축되어 있는 책들은 대부분 독립 출판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 본 토크는 2016년 5월 25일 탐방서점, 일단멈춤 편을 개인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오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더 자세한 공식 내용은 도서 <탐방서점>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저자는 편집부와 전혀 무관함을 알립니다.
* 사진 출처 : 일단멈춤 공식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topfornow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