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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Mar 24. 2017

탐방서점 : 햇빛서점  (1부)

#07-1 : 금정연, 김중혁과 함께 하는 서점 기행

2016년 탐방서점은 새로운 동네 서점들의 움직임을 탐구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김중혁, 금정연 작가와 함께 8개의 서점을 탐방하는 서점 기행과 책방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서점 수업, 그 외 특별 강연 및 라운드 테이블을 포함한 행사로 이어졌다. 그리고 <탐방서점>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한강문고를 제외한 7개의 서점 탐방에 참여하며 틈틈이 보고 들은 것을 천천히, 끝까지 개인적 기록으로 남기고 나니 오랜 숙제를 끝낸 것처럼 안도감이 밀려온다. 책으로 묶여 나오는 대담을 굳이 남길 필요가 있었을까? 그럼에도 가장 즐거웠던 탐방은 마지막을 장식한 LGBT 서점, 햇빛서점이었다. 금요일 저녁 총총거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도착한 공간은 본인을 포함한 4명의 신청자들과 금정연 작가, 박철희 대표, 그 외 스태프와 함께 단란하게 꾸려졌다. 단출한 인원만으로도 꽉 채워진 서점은 어느 곳보다도 아늑하고 첫 만남의 긴장감이 스르르 풀어지는 기이한 기분을 맛보았다. 소수의 소수만을 위한 햇빛서점에서 역설적으로 서점탐방의 묘미를 담뿍 느꼈다.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위안을 준다는 것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햇빛서점은 2015년 5월, 이태원 우사단로길에 위치한 LGBT를 위한, 특히 게이를 위한 1호 서점이다. LGBT를 목표로 하였지만 손에 가깝데 닿는 부분이 게이가 강하다 보니 그러한 정체성이 생겼다.


"2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내가 게이임을 인정하게 됐어요.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야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우리나라의 게이 문화가 밤에만 치중돼 있어요. 클럽이나 술집에만 있어서 낮에는 게이가 갈 곳이 있다면 위안이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점을 시작하게 됐어요"


박철희 대표는 국내를 비롯한 해외의 여러 자료들을 보고 싶은 욕심에서 서점을 시작했다. 내가 골라 놓은 책을 찾아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서점의 힘, 비슷한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매개체로써의 힘, 책을 파는 행위보다 사람들이 모여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서점의 힘을 믿었다. 금정연 작가는 서점을 하게 된 이유, 왜 서점이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방문객이 사물화 된 무언가를 들고 돌아가는 것이 매력적이다'라는 어느 인터뷰 답변이 매력적이었어요. 더 부연 설명해 줄 수 있나요?" "햇빛서점을 시작했을 때의 그 느낌이 좋았어요. 항상 이성애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굳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더 나에게 맞는 것은 없을까 싶었어요. 그런 '것'들이 내 옆에 놓여 있는 것을 봤을 때, 위안을 얻는 내 모습을 보면서 서점을 해서 가장 좋은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었어요"





2016년 4월까지 주말에만 오픈한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주말에만 열고 있다.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고 디자이너와 서점을 병행하다 보니 평일 오픈은 어려웠다. 조교를 끝내도 미루어 두었던 일들을 처리하느라 공지 수정할 틈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주말에만 서점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태원 거리 특성상 주말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종로와 이태원에 특히 게이들이 많이 모인다. 종로는 주로 술을 마시러 가고 이태원은 클럽을 찾는다. 이 두 지역 중 한 곳에서 서점을 열고 싶었다. 무조건 1층으로. 하지만 종로는 여전히 비싼 지역이다. 할아버지밖에 살지 않은 동네에도 1층은 저렴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교적 집 값이 싼 이곳 언덕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불현듯 아직 이곳이 저렴한지 궁금해진다.


"아직은 저렴한 편이에요. 그런데 권리금이 생기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권리금 없이 들어왔지만 그때만 해도 한창 권리금이 생긴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어요. 실제로 권리금을 천 만원 내고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 힘들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심지어 저는 여기 계약도 연장됐어요. 계약 연장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옆집 화장실과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집주인에게 불편하다고 말했더니 대신 계약을 연장시켜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5년 연장했어요. 아마 중간에 나갈 수도 있지만요"


뜻하지 않게 5년이라는 계약 연장 소식에 작은 서점 안 손님들의 안도 섞인 호응을 보낸다. 서점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월세 걱정이다. 그것도 계약 기간이 가까울수록 운영자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앞날을 걱정하는 어두운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만큼 서점 운영은 녹록지 않다. 그러나 햇빛서점은 월세 걱정은 두 번째이다. 좁고 활동이 쉽지가 않아서 프로젝트 공간을 따로 준비하고 있다. 커뮤니티 활동에 더욱 중점을 두고 싶기 때문이다.  




박솔뫼 작가는 햇빛서점의 모델이 되는 해외 서점이 있는지를 진행자를 통해 물어왔다. 미국의 게이 서점들은 60년대부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역할 혹은 소명을 다 했다는 판단 아래 서서히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아마존 혹은 대형 서점에 LGBT 카테고리를 만들고 그들의 권리와 존재를 당당히 호출해 내는 것이 당시 오프라인의 서점의 역할이었다. 그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 서점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햇빛서점은 그러한 소명과 역할에서 한발 떨어져 사회 운동보다는 오직 개인의 즐거움, 나의 즐거움에서 시작됐다. 거기부터 출발하여 주변으로 확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페이스북에서 시작한 고추 그림 콘테스트와 2015년 퀴어퍼레이드에서 판매한 부채도 재미로 시작한 이벤트 중 하나였다. 부채는 서점 오픈하기 전부터 기획된 판촉물 아이디어였다. 여름 퀴어 퍼레이드에 적합하고 해외의 사례를 참고한, 충분히 국내에서도 볼 수 있는 19금 부채이다. 차이점이라면 부채 뒷면은 삽입을 할 수 있는 성기 그림이고 가운데 동그라미 쿠폰은 서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햇빛 코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재미로 시작한 아이디어였지만 본의 아니게 SNS 상의 논란의 중심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퀴어 퍼레이드를 망친다' '기독교 세력과 한편인가' '지능형 안티 같다' '동성애를 지지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공공장소에서 이런 걸 하느냐' '너희 때문에 욕먹는 게 싫다' 등의 LGBT로부터의 비난 섞인 불만과 불편을 호소하는 반응이 쇄도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고민도 많았다.


"저한테는 공부가 많이 됐어요. 결론은 사람들의 아직도 항문 섹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충분히 관리를 잘할 수 있는 성행위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를 알았죠. 이 부채가 그런 사람들을 족집게처럼 골라내 주는 역할을 해준 거 같아요. 아직도 편견을 마음속에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 거죠. 얼마 전에 글도 남겼지만 마음이 너무 안 좋아요. 부채를 비롯해서 게시판 여러 댓글들을 보고 멘탈이 흔들렸어요. 반성도 하고요. 그래도 여섯이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돼서 좋았던 점은 어그레시브 하게 표현할 필요는 없겠구나, 이해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겠다는 거였어요. 일단은 어떤 것인지 알리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너무 갑자기 확 오픈해버리면 놀라는 건 당연하죠. 절반의 생각이 들었어요"

  

2016년 퀴어퍼레이드를 위해서는 드랙퀸을 연습했다. 과장된 여장을 한 남성이 춤을 추는 퍼포먼스이다. 여장이 처음이고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아 준비가 벅차다며 1주일밖에 남지 않아 기대반 걱정이 앞선다.


 



실제 서점 안의 책은 많은 편은 아니다. 국내는 대부분 트위터를 비롯한 SNS의 소식을 보고 연락을 취하여 위탁 판매 형식으로 책을 받고 있다. 해외의 경우 20% 콜 세일 서비스를 받아 구입한다. 국내는 수량이 적어 작은 책이라도 모으는 편이지만 해외는 흥미가 있거나, 사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을 때 구매를 한다. 외서는 영어가 능숙지 않아 주로 화보 책을 고른다. 끌리는 것을 고르며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다. 차츰 책이 많아지면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겠지만, 지금은 무작위로 책을 선정하고 있다. 2015년 말부터 폭발적으로 관련 서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잡지 <DUIRO(뒤로)>와 <여섯>도 그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동화책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가 나왔을 땐 신이 났다.   



"책 제작자에게 바라는 점은 딱히 없지만 우려스러운 부분은 있어요. LGBT 문화를 생성하는 것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지금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자료나 책자로 쏟아져 나오지만 나중에는 LGBT의 소속된 구성원들만을 위한? 그들의 삶과 즐기는 것들, 일상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아요. 갈수록 내부화 되어 가는 거죠. <여섯>이라는 잡지는 이성애자들도 볼 수 있는 포맷이고 <DUIRO(뒤로)>도 '알리는' 제스처'가 강한, 문제점을 드러내는 매거진이거든요. 점점 시대가 좋아질수록 LGBT 안쪽의 삶으로 더 이동해 나가지 않을까요"  


잡지에는 가가랜덤채팅 상의 무작위 대화 글이 실렸다. 다짜고짜 낯선 상대에게 "나는 게이다"라고 밝히는 것이다. 재밌다며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욕을 하며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혹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실제 햇빛서점 이야기도 했지만 실제로 방문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커밍아웃하고 반응을 채집하는 것이 주요 취지의 대화글이었다.  





주말에 오픈하는 특수한 상황이라 손님은 식사 후 산책 코스로 오후 3시와 저녁 7시에 집중되어 있다. 하루 최대 20명, 적으면 5명 안팎이다. LGBT라고 표기해 놓지 않았기에 지나가다 들어오는 손님들도 간혹 있다. 살갑게 인사하며 반기기보다는 먼저 말은 걸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다.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이성애자로 느껴지는 손님들은 LGBT 인권 현황 혹은 조카 선물을 위한 동화책을 사거나 팩트가 정리된 선물용 책을 구입하는 것 같고 동성애자로 느껴지는 손님들은 자신의 성적 취향을 즐길 수 있는 책을 구입하는 것 같다.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도 받아요. 친구가 커밍아웃을 했는데 걱정이 되어 검색하고 왔다는 손님도 있었어요. 자기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지 추천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서점 안의 책은 이미지 중심이라서 대신에 열람용 책으로 인권 단체 보고서가 있어요. 교사를 위한 LGBT 단어장 같은 것으로 기초적인 용어 정리라도 읽어보면 좋겠다고 권해드린 기억이 있어요."


이외에도 기억에 남는 손님이 많아서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보광동에서 오래 살았다는 게이 커플이 이곳을 반가워했을 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저기 걸려 있는 새장도 손님이 사 오셨어요. 남해에서 그림을 그리는 할아버지 화가였는데 인터넷 기사를 보고 서울 병원 가는 김에 들리셨어요.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다가 최근 암투병을 하는 와중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다고...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인정하니 앞으로 고민이 많아졌지만 암투병을 하고 나니 더 이상 참고 살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드셨데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가 저에게는 충격적이었죠.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고 종종 연락 오기도 하고요. 앞집에서 사 온 새집이라고 했는데... 암투병을 하고 난 뒤에 저런 우리 속에서 나오고 싶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서점 열기 전에 고민도 많았다. 근처에 이슬람 사원이 있고 바로 옆에는 교회가 있어서 나름의 걱정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반면 동네 주민의 반응을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없었다. 아직까지 주민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타 서점이나 카페는 지역의 공헌하는 바가 크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 서점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은 해봐도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 본 토크는 2016년 6월 3일 탐방서점, 햇빛서점 편을 개인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오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더 자세한 공식 내용은 도서 <탐방서점>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저자는 편집부와 전혀 무관함을 알립니다.

* 일부 사진 출처 : 햇빛서점 공식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unnybook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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