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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Mar 25. 2017

탐방서점 : 햇빛서점 (2부)

#07-2 : 금정연, 김중혁과 함께 하는 서점 기행

서점은 밑 빠진 독 같은 취미이다. 가장 힘든 일은 책을 선택하고 리서치하는 일이다. 그래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북 매니저 혹은 디렉터의 필요성을 체감한다. 대신 서점 하기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행사를 열 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때이다. 오늘처럼 서점 안이 꽉 찰 때는 보람을 느낀다. 국내 1호 LGBT 서점이라고 하지만 거대한 역할이나 소명 의식이 크지 않다. LGBT 서점 1호로써, LGBT 독립 제작자들과 서로 선순환을 주고받는, 일종의 의무감의 형태가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의무감, 소명 의식 등의 엄숙함과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다. 너무 엄숙해져 버리면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1호가 됐고 그것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겠지만, 어디까지나 취미로 간직하고 싶다.



다만 열심히 하고 싶다. 국내 LGBT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국내 성(性) 인식에 큰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가장 좋은 메시지는 즐겁게 살고 있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미래의 차별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가정 하에 계속해서 해맑게, 즐겁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진지하면서도 해맑게. 아직도 싸워야 할 것들이 많고 실제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지만 햇빛서점은 '마치 미래에 있는 것처럼' 해맑게 꾸려 가려고 노력한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이라는 인문서에도 "모든 당자사의 기본 모토는 이미 그런 세상 속에 있는 것처럼, 자유로운 세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라고 했듯이.

 



26세 뒤늦게 정체성을 인정했다. 그 동기는 책보다는 사람이었다. 이성애자와 연애를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좌절감을 많이 느꼈고 대신 남자 친구를 만나자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비로소 노래 가사가 나의 이야기로 들리는 기분을 느꼈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고민이나 상담을 받는 가운데 추천하고 싶은 책은 친구사이라는 인권단체에서 만든 <게이컬쳐홀릭>이라는 책이다. 내용의 깊이보다는 게이 문화 전반의 주요한 사항들을 수박 겉햝기 식이라도 읽기 좋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좋다. 흔들려하고 고민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약 9개월 가까이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라면 <DUIRO(뒤로)> 라는 잡지이다. 그리고 레즈비언 웹디자이너가 만든 <도쿄일인생활>이라는 요리책이 있다. LGBT와의 관련성보다 일반 사람들도 다 좋아하는 책으로 나온 지 며칠 만에 완판 됐다. 한 달 동안 한권만 판다면 하드코어 한 게이 만화를 그리는 타카메 겐고로 작가의 만화책을 고르고 싶다. 서점 한 켠에도 걸려 있는 족자 그림도 같은 작가의 작품이다. 게이 매거진 <DUIRO(뒤로)>의 텀블벅 리워드로 제작한 것이다. 한국 독자만을 위한 족자로 그림 속에 특별히 무궁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독립 출판물은 위탁판매이며 기성 출판사 책들은 1:1  전화를 통해 위탁판매가 가능하다고 하면 사입을 한다. 간혹 총판을 통해 진행하라고 하지만 아직 총판 거래는 해본 적이 없다. 앞으로 문학도 갖추고 싶어서 총판 거래를 통할 예정이다. 간혹 출판사에서 먼저 입고 제안 메일이 오기도 한다. 보도자료를 보내주기도 하고, 대부분 연락이 오면 입고를 하는 편이다. 동화책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처럼 서점과 내용이 잘 맞고 좋다면 직접 연락하기도 한다.

 

"독립서점이 늘어나는 붐에 대해서는 서점의 개수로 느끼기보다는 오늘처럼 서점 관련 행사나 인터뷰를 통해 느끼고 있어요.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 저도 최근에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잡지사 같은 곳에서 서점 관련 기획을 많이 하더라고요. 이것이 어떤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노홍철의 철든책방의 경우에도 주인 취향에 맞게 책들을 모아 놓을 텐데 그러면서 문화들이 다양하게 쪼개지는 현상이 더 실하게 생겨나면 좋겠어요. 작은 서점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북 큐레이션의 어려움은 있지만 행사를 더 많이 해서 즐겁게, 낮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고 싶다. 뒤편에 프로젝트 공간을 만들어서 워크숍도 하고 싶다.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 강연 같은 그런 일환의 기획이나 초청을 꾸려보고 싶다. 근처 가죽공방에서는 LGBT와 상관없이 가죽 소품 만드는 워크숍을 하고 있다. 섹스토이처럼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워크숍, 뜨개질, 코스메틱도 준비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도 있고 열심히 해서 수익도 발생하고 지원도 받고 싶다.

 

"서점 말고는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따로 해 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 이곳이 커뮤니티처럼 됐으면 좋겠어요. 책을 판매하는 곳이기보다 사람들이 와서 있다 갈 수 있고, 커피도 마시고,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사람들이 즐기다 가는, 즐거움을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꿈꾸고 있어요."






국내 1호 LGBT 서점이라는 타이틀과 상관없이 어디까지나 개인의 즐거운 취미로써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기획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햇빛서점. 의무와 사명감에 사로잡히기보다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개인의 행복에 기반을 둔 커뮤니티를 지향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응원한다. 


금요일 저녁의 작은 서점을 찾아온 4명의 게스트 앞에서 스스럼없이 자신의 능숙하지 못한 서점 운영과 책을 고르는 것이 무척 힘들다고 수줍게 고백한 자평은 모든 책방지기들의 공통된 고민 일 것이다. 그럼에도 열심히 하고 싶다고, 해맑게 나답게 끌고 가겠다는 의지는 여기 모인 이들의 마음속에 알게 모르게 위안과 긍정의 씨앗을 심어준다. 부드럽지만 강하고 다정한 마음의 손길처럼. 이어지는 Q&A는 적은 인원이 모여 서슴없이 묻고 대답하고 공감하는 친밀한 에필로그로 귀결된다.    



Q1. 저기 붙어 있는 '오늘까지 좀 부탁해요'는 무슨 뜻인가?

- 서울역에서 타이포 잔치 전시가 끝나고 버려져 있어서 주워왔다. 기계가 저 거울을 이동하면서 탁 깨지는 작업물이었는데 안 깨지고 남아있는 게 있어서 가져왔다.

- 프리랜서 디자이너라면 클라이언트에게 많이 들을 법한 말이다.

- 세 번이나 이야기했다. (웃음)


Q2. 책 고를 때 꺼려지는 부분은 없는가. LGBT 하면서 꺼려지는 점 같은?

- 글쎄... 보고서 형식이나 불쌍함을 내세우거나 슬픈 것은 싫다.


Q3. 혹시 책도 만들 계획도 있는가?

- 출판 기획도 하고 있다. 곧 나올 것 같다. 번역물 같은. 같은 이름으로 출판 등록도 했다. 독립 출판물의 형태이지만 일반 유통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의 드랙퀸을 다룬 인터뷰나 화보를 만들 것 같다. 르퀸이라는 이태원의 드랙퀸 쇼를 하는 클럽도 있다. 


Q4. 혹시 외국인들도 오는가?

- 서점에 외국인들도 온다. 단골손님은 아직 없지만 종종 온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고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


Q5. 여기 가구는 소목장세미 브랜드인가?

- 로고를 무상으로 만들어 드린 적이 있어서 이 책상으로 보상을 받았다.

- 한 다리 건너면 모든 인연이 이어져 한 자리에 모이는 것 같다. (웃음)


금 작가: 여기 작은 서점을 하고 싶어 참여한 분들이 있다면 어떤 서점을 하고 싶은지 듣고 싶다.


독자1: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끼리 와서 교류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만나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서점이 될지 다른 종류가 될지 고민을 하다가 탐방서점을 보고 지난번 땡스북스 편에 처음 참여를 했고, 이것이 두 번째 참여인데 지금도 고민 중이다. 어떤 것을 어떻게 구현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박 대표: 땡스북스라면 극과 극 체험을 한 거다. (좌중폭소)


- 만약에 서점을 한다면 햇빛서점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잘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공간을 만들고 싶지만 아직 구체적이지 않고 계획이 없어 아직은 막연하다.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 방법이 있다면 조언을 듣고 싶다.


박 대표: 나는 사람들에게 다 말하고 다녔다. "할 거다"라고 말하고 다니면 언제 오픈할 거냐고 물어보고 "그때 할 거다"라고 밝히고 다니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더라. 서점 준비는 할 일이 은근히 많다. 공간을 찾고, 전기 공사, 사업자 등록증 내고 카드 기계 들이고... 이것저것 하나하나가 다 힘들었다. 인테리어가 가장 힘들었다.  


독자2: 저도 당장 계획은 없지만 문학을 좋아한다. 여기 탐방서점의 문학 서점, 고요서사도 참여했었다. 가장 힘든 일이 장소 찾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어떤 공간을 보면 '여기가 딱 내 가게구나'라는 감이 온다고 하더라. 본인도 그럴까 싶었는데 직접 경험해보고 알았다고 하는데 나도 과연 그런지 궁금하다.  


박 대표: 나는 아니었다. 나는 이런 코딱지만 한 곳에서 어떻게 서점을 하나 싶었다. (좌중폭소) 스튜디오도 병행해야 해서 어떡하나 싶었다.


금 작가: 아무래도 탐방서점을 하면서 느낀 점은 독립서점의 대표님들은 서점 운영만으로 운영비만 나오는 정도라고 한다. 다들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프리랜서처럼 타 기획이나 디자인을 병행한다. 작업실처럼 활용하고 굴러가는 것 같다.


박 대표: 평일에는 여기서 작업을 하지만 문은 열어둔다. 구경은 할 수 있지만 평일에 내가 없을 수도 있고, 주말 운영으로 공지하고 있다.  


독자3: 나는 서울의 다른 지역도 그렇고, 어떤 작은 공간이 생기면 관심을 갖고 보고 있다. 트위터로 소식을 빠르게 접하고 있다. 햇빛서점 오픈도 트위터를 보고 알았다. 어떻게 되어가는지 문 열기 전부터 염탐을 해왔다.(웃음) 원래 계획하던 오픈일이 있었는데 꼭 팔아야 할 책이 없어서 일본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집념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 일본은 놀러 간 것이었다. (웃음) 일본 출판사들도 돌아보고 싶었지만 짧은 일정으로 게이 서점만 보고 왔다.


- 일본은 LGBT 서점이 많은 편인가?

- 일본은 LGBT 서점이 여기처럼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용품과 같이 팔고 있다. 잡지 DVD, 자유기고물 같은 것들.


- 일본은 성인용품 자체가 워낙 발달해서 교집합처럼 있는 것 같다. 혹시 여기서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없는가?

- 본격적이기보다 하나씩 하고 싶지만 상품 판매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Q6. 콘셉트가 독특해서 노출이 많이 됐을 것 같다. 잡지, 신문사 인터뷰나 소개도 많이 됐을 텐데 그런 후광 효과가 직접적으로 느껴지는가?


- 확실히 기사 보고 온 분들도 있고, 전시 보고 왔다는 분들, 문화 쪽에 관심 있고 행동으로 찾아오는 분들이 있다. 패션지 보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았다. 요즘은 인터뷰가 많아서 피곤하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고 질문도 비슷하다. 사실 인터뷰의 과정이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오늘도 많이 느꼈다. 서점 운영이 부족한 건 알고 있었다. 생업과 관련해서 운영이 잘 안 되는 부분을 나 자신에게 일깨우는 것 같아 힘들 때가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누추한 곳에 와주어 감사하다. 생각보다 편하게 운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고 그런 이야기를 오늘 많이 한 것 같다. 내가 서점에 자신이 없는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 본 토크는 2016년 6월 3일 탐방서점, 햇빛서점 편을 개인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오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더 자세한 공식 내용은 도서 <탐방서점>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저자는 편집부와 전혀 무관함을 알립니다.

* 일부 사진 출처 : 햇빛서점 공식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unnybook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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