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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Apr 12. 2017

작가주의 예술책: 비플랫폼 (1부)

#4회서울책방학교 1-1강 : 김명수 작가님과의 책과 책방 담화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책방학교가 4회를 달고 문을 열었다. 2017년 3월 7일~5월 16일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서울 도서관 사서교육장에서 다양한 독립 서점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회는 전문 서점이라는 주제 아래 각자의 취향을 만족하는 문화공간으로써의 책방 이야기를 들려준다. 1회 첫출발은 작가주의 예술책을 다루는 서점, 비플랫폼이다. 


작년 5월 탐방서점을 통해 찾아간 비플랫폼은 가 오픈전이었다. 그 이후의 책방 이야기를 김명수 작가님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워지자 조급함과 아쉬운 마음이 짙어졌고 고민 끝에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 날 기적 같은 답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강의는 놓쳤지만 언제 날을 잡아 책방에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약속이었다. 그리하여 아랫글은 비플랫폼 서점에서 나눈 개인적인 담화를 기록으로 남겨둔 페이지라 할 수 있겠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1회의 포문을 연 비플랫폼은 작가주의 예술 서적을 주제 삼아 책의 형태는 저마다 각각 다르지만 책 내용만을 중요시하는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 즉, 형태 중심에서 내용을 바라보는 책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다. 과연 비플랫폼은 어떤 서점이고 어떤 목표를 지향하며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예술 서적으로 대답하고자 한다.   


이것도 책이군요!


동그란 모양에 스프링이 달려 있는 손바닥만 한 작은 책. 데이비드 스테어즈(David Stairs)의 1983년 초판 작업한 에디션으로 펼쳐볼 수 없는 책, 즉, 바운드레스(Boundless) 북이다. 묶이지 않은 책이면서 묶여 있는 책. 독자들은 상상으로만 이 책을 열어 볼 수 있다. 그 자체가 저자가 바라보는 책의 내용이며, 아티스트북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독자의 머리 속 상상으로는 묶이지 않으면서, 물리적으로 묶여 있어도 묶인 게 아니면서, 독자의 의해서만 합본할 수 있는 책이다.  



북아트라는 장르를 눈 앞에 들이 밀면 독자들은 '이게 뭐지?'라며 당황하기 쉽다. 직접 설명을 들으면 결코 이해가 어려운 장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반드시 설명이 필요한 작품 읽기는 아니다. 일상 속에서 읽으려고 노력만 한다면 어렵지 않다. 단지 우리가 책에 대하여 탐독만 할 뿐, 탐미하려는 습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책의 지면은 X축과 Y축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책은 오브젝트(object), 즉, 물성이기 때문에 Z 축으로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만 읽어왔고, 다르게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한다. 단면으로도 측면으로도 볼 수 있는 입체이지만 데이터상의 화면으로만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초중고 내내 코덱스 북 형태로만 책 읽기를 배워왔기에 문화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문맹률은 낮은 반면, 다르게 읽는 방식은 학습되어 있지 않아 낯설고 어려울 뿐이다. 그러한 낯선 부분만 해소된다면 유아원이 초등학교 입학하는 수준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해독할 수 있다.  


이 책은 카니발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많이 만든 우연의 기법의 기초한 책이며, 기본적으로 팝업북이라 부른다. 전혀 다른 이미지의 합, 가령,  원숭이 머리에 여우의 몸통, 새의 몸통을 붙여가며 다양한 모습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우연히 만들어진 이미지의 합으로 인간은 풍요로운 사유를 할 수 있다.  



비플랫폼은 그들이 가장 잘 소개할 수 있는 책과 작품을 소개하고 전시하며 어떤 맥락에서 작가들이 책을 만들었는지 알리는 것에 집중한다. 형태도 콘텐츠에 따라서 몸집을 달리하듯, 잘 살펴보면 책이라고 무조건 네모 반듯한 모양은 아니다. 심지어 인쇄도 독특하게 할 수 있다. 외관만 보면 전혀 그 차이를 모르겠지만 그 가치를 알면 왜 가격이 달라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격이라는 것 자체가 가치에 의해서 매겨지기 때문이다. 가령, 실크스크린 인쇄를 모르면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에 비하여 가격이 높은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책의 가치에 대한 공유도 중요해진다.



(실크스크린의 대표적 작가는 앤디 워홀이다.) 실크스크린은 망점을 통해서 잉킹을 하는 기법으로 망사대 틀에 채색할 부분만을 망점으로 뚫어놓고 파란색 잉크를 밀면 파란색만 인쇄가 되고, 판을 바꿔서 화이트로 칠하면 화이트만 인쇄가 된다. 4도 인쇄는 검은색, 핑크색, 파란색, 연두색으로 이루어진다. 색감 자체가 4도 혹은 16도로 도수가 나누어져 칼라가 단조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쇄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깊이감이 새겨진다. 실질적인 두께도 높아지며 두께감과 잉킹의 퀄리티만으로 더욱 생생한 원색의 색감을 경험할 수 있다. CMYK라고 하여 색상은 섞여 있지만 순수한 그 색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내용과 이야기에 잘 어울리는 음악이 따로 있듯이 책 또한 그에 걸맞은 인쇄 기법이 존재한다.  



1세대 차정인 작가의 <실 한가닥>이라는 책은 소통에 관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 한가닥이 이어지면서 끝까지 풀어내는 이야기 방식이다. 제본 방법도 실 한가닥이고 채색되어 있지 않은 방식이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판형도 손바닥만 한 엽서 사이즈로 읽기 딱 좋다. 편안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매력이 신선하다. (국내 북아트라는 장르를 소개한 작가를 가리켜 1세대라 칭한다.)




비플랫폼 전시와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들


서점 안에는 책에 관한 다양한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신진 작가들에게 무료로 공간을 대관해주고 홍보할 수 있는 루트로 활용할 계획이다. 곧 다가오는 비플랫폼 오픈 1주년을 기념하여 지금까지 전시한 작품들의 포스터를 모아 전시할 계획도 갖고 있다.


또한, 책을 만드는 서점 콘셉트답게 실제적으로 직접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워크숍과 스튜디오 공간이 있다. 이와 함께 책방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담론이다. 책에 대한 예술적 가치에 대한 담론을 나누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공간을 추구한다. 1달에 한번 있는 그림책 중독자의 모임과 북앤드테이블은 지난 2년 동안 진행해왔다. 앞으로도 책의 예술적 가치를 토론하고 책 만들기 프로그램은 더욱 집중해 끌고 갈 생각이다. 북바인딩 워크숍은 대중적 취미 코드부터 전문가 과정을 아우르는 모임이다. 가장 기본적인 개론만을 소개하는 강의이며 스스로가 취미이든, 작가를 꿈꾸든 참여의 자율성에 맡기고 있다. 실제 작가인 사람도 있을 만큼 그에 대한 레퍼런스 또한 다양하다.


그림책 중독자 모임은 이름만 보면 얼핏 진정한 동화책 마니아들만 모이는 것 같지만 실제 입문자들도 편하게 참여하고 있다. 커뮤니티의 목적 중 하나는 함께 한다는 것주제에 대해서 공유하는 면이 강하고 치유의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부담 없이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어 참여율도 높고 연령층도 다양하다. 그 외에 북바인딩 팝업 워크숍, 더미북 워크숍이 있으며 북바인딩 Q&A는 궁금한 점들을 묻고 답하는 시간도 있다. 앞으로 독해에 관한 수업과 책에 관한 워크숍도 계획되어 있다.


교보문고 VS 비플랫폼


조만간 합정역에도 여기보다 33배나 더 큰 교보문고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에 비해 교보문고의 화장실만 한 작은 규모의 서점이지만 비플랫폼이 추구하는 방향은 더욱 명확해진다. 직접적으로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책을 만들고 그 책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판매하는 플랫폼을 견고하게 구축할 계획이다. 작가들이 책을 만들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서포트함으로써 비플랫폼이 할 수 있는, 비플랫폼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책의 예술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교보 서점이 옆집에 생긴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거예요. 그게 바로 독립서점이 아닐까요. 망원 문고나 한강 문고 같은 대중 서점이라면 당연히 교보문고의 영향을 받겠죠. 땡스북스 역시 어떻게 포지셔닝할지 지켜봐야 할 거예요. 자신의 색이 뚜렷해도 땡스북스 역시 대형 서점과 90% 이상이 책이 겹칠 거고, 나름의 큐레이션이라는 경쟁력이 있지만 어떻게 그 차이와 개성을 드러낼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샌프란시스코 코덱스 북페어에 대하여


작가들이 2년에 한 번씩 모여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샌프란시스코 코덱스 북페어는 환상적인 도서전이다. "천국 같은 곳이에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천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행복을 연상할 것이다. 도서관 또한 천국으로 비유되지 않던가. 북페어는 소개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기관에서 소장되기도 하고 판매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번 페어에서 국내 작가들의 출품작들이 한 번씩 다 판매되는 고무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전 세계적으로 불모지가 아닌 곳이 없지만 가치의 희소성을 알아봐 주는 시선은 소중하다.


대부분 북아트라고 한다면 오래된 책의 고서 본들을 가리키는 말로 장식적인 요소가 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시대 작가의 작품은 현대 예술, 컨템퍼러리(contemporary) 북아트라 칭한다. 미디어 자체를 책으로 선택한 것이며 문화적으로 시장 자체가 형성되기 어려운 부분도 그 때문이다. 시장 가치가 정확하게 책정되지 않아 거래가 어려운 것이다. 고서 본 같은 경우는 이미 시장가가 정해져 있다. 윌리엄 모리슨은 권당 1억 가라는 책정된 가치가 책정되어 있지만 컨템퍼러리 아이트스북 작가는 정해진 가격은 있으되 시장가는 형성되지 않아 시장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해외도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도서관과 미술관 같은 공공기관에서 작품을 구입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작가들이 오래도록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코덱스 북페어 또한 예일대나 모마 미술관에서 직접 책을 보고 현장에서 구매해 간다. 카탈로그를 가져가서 기간 내에 다시 협의하고 구매하기도 한다. 컬렉터들이라면 작품만 보고 취향을 반영해서 구입한다면 기관은 현대 미술이기 때문에 작품 못지않게 작가의 안목 또한 중요하게 판단한다. 즉, 작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지속성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할 작가인가 아닌가, 만약 그런 작가라고 여겨지면 그 작가의 작품에 투자할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원데이 워크숍에서 취미로 만든 책이라면 아티스트북이라 할 수 없다. 본인이 만든 책을 가족만이 구입해준다면 그것을 과연 작품이라 할 수 있겠는가.



비플랫폼의 목표와 지향점


지난 1년 동안은 책방의 포지션을 잡는 일에 주력했다면 앞서 말했듯이 이제는 직접적이고 긴밀하게 작가와 협업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협업을 통해서 여기서만 접할 수 있는 책을 직접 만드는 것이 주요 과제이자 목표인 셈이다. 대형서점에서는 결코 구매할 수 없는 책 말이다. 또한 작년 12월에는 비플랫폼의 이름으로 출판사 등록도 마쳤다. 출판사와 서점을 겸하며 정식 작품을 출판할 포부도 갖추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는 책의 유통, 제작, 기획을 모두 맡아 움직였다면 앞으로는 업무를 콤팩트 하게 줄여 나갈 예정이다. 모든 니즈를 수용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쳐 나가야 할지가 고민이지만 욕심을 내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정하고자 한다. 만약 책이 기성복과 같아서 사이즈가 정해져 있고 4가지 타입으로만 만들 수 있다면 가격은 저렴해지고 작업 또한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예술 서적은 맞춤 정장처럼 요구사항이 다양하고 주문 제작을 받으면 비용도 올라간다. 선택적으로 맞춰 운영해 나가려고 한다.






* 본 글은 비플랫폼, 김명수 작가님과의 담화를 개인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오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 4회 서울책방학교 비플랫폼 강연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 일부 이미지 출처: 비플랫폼 공식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BPLAT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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