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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Apr 14. 2017

작가주의 예술책: 비플랫폼 (2부)

#4회서울책방학교 1-2강 : 김명수 작가님과의 책과 책방 담화

작년 탐방 서점에서 "국내의 이와 같은 작가주의 책을 접할 수 있는 다른 경로가 있다면 알려달라"라고 호기롭게 요청했었다. "여기뿐이다"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스스로의 무지가 부끄러웠던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 국내 환경 틈에서 서점과 작업을 병행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추측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이죠. 가령 독립서 점도 그렇지 않을까요? 독립 서점이라는 것 자체가 말 그대로 개성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어요. 더욱 그렇게 가야 하고 그게 아니면 일반 대중 서점과 다를 바 없어요.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야 해요.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작가주의 예술 서적이므로 그 자체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개하고 전시하는 것에 있어요. 앞으로도 그 부분은 더 도드라질 수밖에 없고 여기밖에 없는 공간이 될 거예요.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다면 무의미하다고 봐요. 굉장히 협소한 영역의 문화적인 수요층 입장에서 보면 몇 명이나 이런 문화를 소개할 수 있을까요."


1년 가까이 비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즐거운 부분도 있겠지만 힘든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예상과 많이 달랐을까. 혹은 상상대로 즐거웠을까. 기회가 닿는 대로 꼭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초반의 설렘도 크겠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알 수 없다"는 말이 자주 오가곤 했었다.  


"많이 힘들었어요. 작가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작업인데 잘 맞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 추구하는 바가 서포트 기능이 강하다 보니 서비스만을 받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물론 궁극적인 가장 큰 목표는 국내 작가들이 많아지고 그만큼 시장이 커지고 대중적으로 소비가 이어지는 것이지만 인건비도 안 나오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만을 강하게 요구하는 모습을 봤어요. 가령 책을 만드는 작가는 여기서 저 혼자뿐이에요. 전시하고 관리하는 부분은 작가가 단독 진행할 수 있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은 저만 할 수 있어요. 혼자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 스케줄에 맞춰줘야 하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도 더러 있어요. 한 번은 왜 자기 스케줄에 맞춰서 작업을 해줄 수 없냐는 요청도 받았고, 왜 지금 예약이 안되냐는 불만도 있었어요. 아무리 본인이 급해도 그 작가의 스케줄에 맞춰주면 다른 작업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건 서로 간의 기본적인 약속이라고 생각해요."


소비자, 즉 독자와의 관계가 힘이 들거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작가와의 관계 맺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다. 물론 불특정 다수의 고객이 방문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문제점도 따라오다. 가령 내지 컷만 다 찍고 나가거나 책을 구겨서 망가트리는 사람, 서점만 찍고 나가버리는 사람...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포기하는 면들도 있지만 작가와 부딪히는 일에서도 상식 밖의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이는 태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예술을 지향하는 작업에도 예외 없이 상대방의 작업 태도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여전함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소비자와의 관계에서는 가격을 직접 흥정하지 않으니 부딪힐 일은 생각보다 적은 편이다. 책에 대한 환불 혹은 반품도 낮은 편이다. 책을 확인하고 구매하는 과정보다 작가와의 협업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작업 의욕도 떨어트린다.   


"빨리 준비해서 보여주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하게 준비해서 공개해야 직성이 풀려요.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나 봐요. 작가들이 보기에는 하루 이틀 걸리면 금세 완성된다고 여기지만 저한테는 1주일이 걸릴 수도 있고 한 달이 될 수도 있어요. 24시간 서비스센터가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여전히 서점 업무도 만족스러운 부분보다는 부족한 부분들이 더 많아요. 이 서점을 하게 된 큰 목적 중 하나는 책 장사가 아닌 문화를 소개하기 위하여서예요. 잘 몰라도 같이 이야기하고 책을 소개하는 일이 더 신이 나요."


큐레이션의 어려움


큐레이션은 힘들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아쉽고 속상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 이유를 다시 묻자 할 일은 점점 많아지고 큐레이션을 할 충분한 시간이 부족한 현실 탓이다. 원칙적으로 정확한 큐레이션이란 무엇인가. 작가주의 예술 서적이기 때문에 작품보다는 그 작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책보다는 작가가 먼저인 것이다. 작가를 설명하고 그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다음 적극적으로 책의 가치를 소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하고 리서치도 충실해야 한다. 그만큼 시간을 들여야 독자와의 소통에서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이 곧 큐레이션이에요. 그 가치를 이야기한다는 것과 충분히 이야기한다는 것이 중요해요. 단순히 작가가 쓴 소개글을 읽는 것과 내가 이해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완전히 달라요. 스토리텔링 방식도 달라지죠.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부분이기에 큐레이션도 그냥 하지는 못해요. 위대한 작품이라면 왜 위대한지 충분히 공감해야 해요. 그냥 위대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거든요.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방식은 단순히 멋지다 혹은 예뻐요 라고 평가하는 일이에요. 예쁘다는 말은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이잖아요. 예뻐서 좋다고 이야기하고 소개하는 것은 폭력적일 수 있어요. 마치 당신도 예뻐야 한다는 것처럼 들려요. 이 책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왜 출판문화와 예술 문화에서 주목하고 있는가를 상대방에게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야 해요. 이게 바로 큐레이션의 중요성이죠."  


예술이라는 장르 자체가 독학의 연속


문득 이토록 책을 좋아하는 작가님이라면 글쓰기에 관심이 높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그러자 글 쓰는 건 어렵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즉각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책을 만들 때도 글을 먼저 쓰고, 그 책에 대한 가치를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도 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출판을 위한 글쓰기 작업도 병행하고 있음을 밝혔다. 짬을 내서 집중력을 높여 올해 안으로 글을 끝내고 싶은 바람도 드러냈다.



그렇다면 독서는 어떠할까.


"독서는 기본이에요. 편향적인 취향의 다독가는 아니지만 지식인의 서재에서 읽을만한 책이 있다면 바로 사서 읽어요. 과학, 인문, 문학을 가리지 않아요. 단 소설은 유난히 읽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편이에요. 한 번 읽으면 3~4시간이 걸리는데 시간적인 이유로 보통 소설을 영화한 것을 즐겨 찾아요. 영상으로 2시간을 집중적으로 접하고 이야기 자체를 영상을 통해 읽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편식임을 알면서도 책에 관한 책을 집중해서 읽게 돼요."


그는 특히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즐겨 듣는다고 밝혔다. 그 가치를 예쁘다, 좋았다는 평면적인 평가보다는 개인적인 이유라도 조목조목 설명하고 밝히는 소개 방식을 선호한다. 책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10권 중에 9권은 책에 관한 책이고 마지막 1권은 만화책일 때도 있다. 한 달 예산 중 일부분은 책 구입으로 정해져 있다고. 자랑스럽게 손 때 묻은 교보문고 할인 카드를 보여주며 높은 할인율 정보도 알려준다.   


"독학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스승은 책이에요. 책과 저자들이 곧 나의 스승이죠. 책에 관한 책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어요. 연구분야이자 관심 분야이기도 합니다. 뒤늦게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외국에는 이런 전공이 따로 있고 국내에서도 시각디자인이나 출판 디자인으로 마음만 먹으면 전공할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공부는 끝이 없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예술이라는 장르 자체가 독한 인 것 같아요."






최근 갑자기 책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 같다. 앞으로도 책방이 공간의 형태로 살아남을 것인가. 혹은 공간의 중요성은 과연 클까. 전자책은 서버만 있으면 되지만 책은 물성을 지녔고 공간이라는 스페이스가 중요하며 그 형태와 위치, 로컬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도서정가제 이후로 게임의 룰은 동일해졌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룰이 동등해졌으니 이제는 싸울만하다고 본다. 오프라인의 독립서점이 얼마만큼 늘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출판문화의 수요층은 보다 더 늘어날 것이다.


"서점은 책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곳이지만, 상품이면서도 작품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책이에요. 누군가에게는 작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돈일 수도 있죠. 책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시선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서점이라는 어휘보다 매장이라는 단어가 익숙할 수 있듯이, 저는 기본적으로 책을 만드는 작가이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방식도 쌓아두는 매대 식이 아니라 한 권씩 존중받는 기분으로 펼쳐놓고 표지가 보이도록 진열하고 있어요. 공간의 한계라는 문제가 동반되기도 하고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전시할 수 있는 책은 정해져 있지만 로테이션 방식으로 극복하려고 합니다."

기본적인 포지션이 책을 만드는 작가이기 때문에 그 입장에서 책이 알지 못하는 구석에 쌓여만 있다면 서운할 것이다. 만약 이 책이 나의 책이라면 디스플레이도 자연스럽게 달라질 것이다. 이것은 비플랫폼의 관점이고 그에 따라 소개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작가이기 때문에 공간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었고 그 안에 스튜디오와 전시 공간을 마련했고 그렇게 공간을 세팅해 오고 있다.






"서울책방 학교의 90분 강의 중에서 정확히 1시간 반을 책 이야기만 했어요. 책을 소개하고 정보를 학습한다는 의미에서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라며 준비했어요. 그날 아쉬운 점은 웃기지 못한 점? 웃긴다고 한 몇몇 이야기들에 슬쩍 미소만 지으시더라고요. 더 유쾌했다면 재밌었을 텐데 항상 아쉬운 부분이에요"


지루했을 것 같다고 멋쩍게 강연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밝혔지만 그 점 때문에 강연은 더욱 열띠고 진지한 모습에 대부분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무례한 요구라고 흘려보내도 좋을 나의 메시지에 응답해준 면을 보더라도 책에 관한 작업과 작품,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는 모습, 한 명의 독자라도 아껴주려는 마음이 전해져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미리 약속만 정한다면 언제든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예약만 한다면 늘 대환영이라는 말도 덧붙여본다.


끝까지 시간 내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김명수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리고 싶다.





* 본 글은 비플랫폼, 김명수 작가님과의 담화를 개인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오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 4회 서울책방학교 비플랫폼 강연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 일부 이미지 출처: 비플랫폼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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