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책방 학교 4강 : 여행에 관한 모든 것
여행책방 일단멈춤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보고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번 강연을 위한 PPT를 만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염리동에 위치한 '일단멈춤'은 2주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여행 책방이다. 독특한 이름 때문에 책방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단 멈추고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여행에 관한 책들 가운데 고심하여 셀렉 하여 가지런히 정리한 책방 풍경은 설렘과 함께 말이 필요 없는 신뢰마저 생긴다. 번듯한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한 1인 작은 책방이 최대한 노력하고 시도해 온 과정을 들려줄 수 있을 거라며, 떨리는 마음으로 입을 뗀 송은정 대표는 1년 동안 고군분투했던 작은 책방 생존기를 나지막이 풀어냈다.
'일단멈춤'은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판매하는 소규모 책방입니다.
여행, 그리고 책이 품은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부터
우리 일상의 폭이 한 뼘씩 넓고 깊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는 책방이 목표하는 지향점을 책방 지기가 스스로 만든 소소한 소개글이다. 여행책방 일단멈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콘셉트를 여행의 연결 고리 안에서 일목요연하게 문장으로 다듬어 보여준다. 보통 여행 책이라고 하면, 에세이, 가이드북을 많이 떠올리지만, 그것을 모두 포함하여 여행 전후로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 영감을 줄 수 있는 책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싶은 곳이 일단멈춤이다. 다양한 세계관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문학과 예술 관련 책도 소개하며, 여행이 새로운 세계와 사람,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2014년 11월, 책방을 하기 위해 지금의 장소를 계약하자마자 한 달이라는 짧은 준비 기간을 거쳐 문을 열었다. 세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고, 완벽하게 세팅하고 시작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서서히 서가를 채워 나가자는 마음으로 시작하였다. 예전부터 퀵 서비스 사무실이었던 이곳은 민트 블루의 화사한 칼라로 다시 태어났다. 주택가 깊숙한 골목 안쪽에 있어서 눈에 띄길 바라는 마음으로 칠했지만 지금은 트레이드 마크 색처럼 여겨지고 있다. 처음 이 건물에 왔을 때는 30년도 더 지난 커다란 철판 간판도 달려 있었다. 동네 안으로 자연스레 녹아들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남겨둔 오래된 흔적이자, 방문객들을 위한 이정표이고 했다. 나름의 상징성과 책방 이미지와 묘하게 어우러진 간판이었지만, 건물주 할아버지의 배려(?)로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철거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로 9개월이 지나 드디어 지인의 도움으로 나무 입간판을 마련하여 설치하였다. 마치 일단멈춤의 계절이 지나듯이 그렇게 간판의 교체도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책방 지기에게 묻고 싶은 10가지 질문
어떻게 책방 주인이 되었는가
어떻게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들도 많이 오고 간다. 부러움의 시선이나 응원 메시지를 받기도 하지만, 단 한 번도 책방 주인이 되고 싶다고 꿈꿔 본 적은 없었다. 원래는 글과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출판사 편집자나 잡지사 에디터로써 직장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여느 직장인들처럼 조직 생활의 회의감이 커지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용기가 생겼고, 그래서 나만의 공간을 찾게 되었다. 만약, 그런 공간이 생긴다면 무엇으로 채울까를 고민하다 자연스럽게 책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면서 가장 좋아하는 일의 교집합이 바로 책이었다. 당시 유어마인드도 즐겨 다녔고, 책방에 대한 이해도도 갖추고 있어서 큰 고민이나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책방을 연다면 어떤 책방으로 열어야 할까를 고민 민했다. 이미 유어마인드나 스토리지북앤필름처럼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서점들은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었고, 비슷한 콘셉트로 책방을 시작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 외에는 중고책, 어린이책, 디자인, 예술, 해외 서적 등을 다루는 서점들로 분류할 수 있었고, 그 가운데 속에서 나만의 색을 입혀보고자 떠올랐던 분야가 '여행'이었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인상적이었던 서점들을 추억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었다. 교토의 한 책방 앞에 자전거를 줄지어 세워놓고, 동네 주민들이 멈춰서 책을 구경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풍경들, 책방 안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삐거덕 하고 오래된 나무 목조의 운치 있는 소리들, 서점은 책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고유한 분위기와 정서로 채워져 있었다. (특색 있고 개성 있는 서점들을 보고 싶다면 일본 교토의 서점 투어를 추천한다.) 이처럼 지난 기억을 더듬다 보니 일반적인 개념의 모든 책이 아니라,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주제, 혹은, 좋아하는 주제이면서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주제가 필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여행과 책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일단멈춤의 소개글처럼 그 둘 모두가 세계관을 확장시켜주고, 경험의 폭을 넓혀주고, 일상 속 생각의 넓이를 넓혀준다는 것이었다.
브랜딩에 대하여
책방의 이름을 정하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은 이른바 브랜딩 마케팅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책방의 이름을 반드시 책과 연결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책방이 지향하는 여행의 의미를 담고 싶었고, 추상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싶었다. 누가 들어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직관적인 이름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라디오를 듣던 중, DJ의 멘트가 어느 순간 마음속으로 확 하고 꽂히는 순간이 있었다.
"일단 멈추고 어떻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제는 전후 앞뒤 이야기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일단 멈추자'라는 말과 여행이 가진 의미가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일단멈춤이라고 명사화하였다. 그러나 입에 쉽게 붙지 않는 네 글자, 여행책방을 붙이면 무려 8글자로 늘어난다. 기타 다른 이름과 함께 투표해 봤지만, 예상대로 그 이름은 한 표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일단 멈춰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회사, 학교, 일, 살림 등 일련의 행동을 멈춰야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일단멈춤이라는 단어가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책 페이지 위로 머무는 행위, 여행의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는 결론이 강해지자 미련 없이 이 이름으로 정했다. 그 뒤로 책방만의 로고 디자인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S극과 N극을 표시한 나침반과 책의 펼쳐진 이미지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stop for now'라는 영어식 제목도 만들어 부제로 표현했다.
왜 하필 동네 골목인가
서울에서 살아도 마포구 염리동이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대역과 가깝지만, 번화가와 반대 출구이며, 작은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가야만 찾을 수 있는, 흔하고 흔한 평범한 동네 골목에 있다. 심지어 지도를 검색해서 와도 책방 앞에서 전화로 찾는 손님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책방을 찾는 사람이라면 어디에 있어도 찾아서 올 것이라 확신했고, 불특정 다수가 많이 오고 가는 대로변을 따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책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나 위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장소만이 가진 힘을 믿기 때문에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서울을 구석구석 탐색해 나갔다. 저렴하고,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동네, 낯설면서도 새로운 곳이 있기를 바라며, 이태원의 해방촌 거리와 낙산 공원이 있는 대학로 이화마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재개발 등의 경제적 조건이 맞지 않아 우여곡절을 겪던 중, 우연히도 벽화 마을이 있는 소금길을 알게 되었다. 범죄 예방 차원에서 서울시에서 벽화 거리를 조성하게 된 소금길은 직접 방문해 보니 정겨운 풍경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벽화 마을과 대흥동의 동네 풍경, 주민들이 안 쓰는 물건을 내놓고 필요하면 가져가는 소박한 모습들이 도시에서만 산 젊은 세대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고민 없이 지금의 장소를 선택하고 나서, 재개발로 사라질 수 있는 공간들을 기록하는 소금길 언덕 투어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에 힘을 보탰다. 관광지보다는 주민들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집중해서 표현하는 프로젝트이다. 가령, 매년 제비가 찾아오는 집이나 주민들이 자주 모이는 평상, 30년 된 세탁소 등의 공간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예상치 못하게도 이 동네에 책방이 2군데가 더 생겨났다. 여기도 서서히 젊은 청년들의 공간이 생겨나고 있고,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이 생길 거라 기대하고 있다.
어떤 책을 판매하는가
여행책방의 콘셉트에 맞게 여행과 관련된 책을 다룬다. 흔히 볼 수 있는 단행본, 매거진, 독립출판물, 일부 해외 서적, 여행과 관련된 제품과 소품들도 판매하고 있다. (가령, 제주도 해녀 모빌 혹은 지도도 취급한다) 여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책을 다룰 수는 없지만, 나름의 기준으로 직접 큐레이션 하여 서가를 배치하고 있다.
일단멈춤만의 북 큐레이션 가이드라인은 바로 숨은 책을 발굴하자이다. 여행서 시장은 대개 가이드북 혹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여행 에세이가 메인 신간으로 소개되고, 빠른 시간 안에 소비되어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책방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구간 중에서도 의미 있는 책을 선별하여 발굴하는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에게 여행책이라고 하면, 여행만 관련된 부분만 취득하고 읽지 않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래서 여행과 무관하게 글이 좋고, 텍스트가 좋은 책을 중점적으로 선별하려고 노력한다. 오래도록 아껴가며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주관적인 선호에 의해 주저 없이 서가에 배치된다.
일단멈춤의 메인 서가는 표지가 많이 노출된다. 가장 큰 이유는 책 하나하나가 가진 고유성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책마다 판형과 종이와 디자인, 제본 방식, 각각이 가진 또렷한 특성을 책 고유의 물성으로 보여줄 수 있다. 서가에 꽂히면 동일한 덩어리로 인식되지만, 표지가 노출되면 각자의 의미를 강조해줄 수 있고, 판매율 또한 확연히 앞선다. 그 외에도 독립출판물을 함께 구비해두고 있다. 일반 단행본이 표현할 수 없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독립출판만이 가진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책방으로 경제적 수익이 가능한가
조심스럽지만 꼭 물어보는 질문이다. 지금까지 일단멈춤이 2015년 12월까지, 1년 동안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했는가를 정리해 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1년 동안 많은 일들을 했고, 약간의 수익도 낼 수 있었다. 여행 토크,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임, 4-6주로 진행하는 장기 워크숍, 콜라주, 북 바인드 등의 원데이 클래스, 어쿠스틱 공연과 5번의 전시, 드로잉, 사진, 캘러그라피, 플라워 등 다양한 워크숍들을 부지런히 진행해 왔다.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워크숍으로는 아프리카 관련 여행서를 낸 작가님과 흔치 않은 아프리카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두 번째 퇴사>라는 독립출판물을 발행한 작가님과 북 토크 형식으로 책과 이야기하는 시간, 도쿄, 오사카, 교토, 홋카이도 등의 일본 서점 투어에 관한 토크, 마호 출판사와 함께 메모나 사진 등으로 남긴 여행 기록들을 정리하고 기획, 책으로 만드는 3주 워크숍 등이 있었다.
책으로 사람을 모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책만으로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7.5평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의외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공연, 토크, 전시 등 시도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진행해왔다. 비록 규모가 작기 때문에 사람들이 과연 찾아 올까에 대해서 늘 걱정반 의문반 이었지만, 이런 소규모 행사를 좋아하고 즐겨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와 참여자들이 좀 더 친밀하게 이야기하고 관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라도 되도록 10명 내외의 1:1 코칭이 가능하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책과 여행이라는 큰 갈래를 중심으로 나만의 여행서를 만드는 수업과 그와 관련된 편집 프로그램,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여행 작가가 아니라도 특정 나라에 관하여 전문가 수준의 경험과 지식이 있다면,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등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토크도 진행하며 여러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려고 한다. 무료로 전시 공간을 대여하며, 다양한 아티스트와 직접 교류하고 그들과 워크숍을 만들어 나가는 재미가 있다.
최근 책방에서는 독자들과 쌀국수를 직접 만들어 먹으며 치앙마이 여행 이야기를 나누거나, TEA를 직접 끊여 마시며 그 나라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일단멈춤스러운 소소한 이벤트는 교보 문고 같은 대형 서점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이벤트이다. 교보만의 편리함은 덜하지만 작은 책방으로 모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생겨나는 예상치 못한 오늘의 사건사고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겨진다.
(참고로 한국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는 지역 서점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문화 행사에만 사용할 수 있는 지원금이다)
홍보는 어떻게 하는가
절대적으로 SNS 중심으로 홍보한다. 책방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열심히 SNS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책방에 오는 손님들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으로 소식 잘 보고 있다는 말을 하면 더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책방마다 성격에 맞는 SNS를 취해서 홍보하겠지만, 일단멈춤은 크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중심으로 사용층에 맞게 구별해서 콘텐츠를 재구성하고 있다. 기본적인 공지사항과 책 소개는 동일하게 올리지만, 같은 내용이더라도 포맷에 맞게 말과 사진을 바꿔서 올리고 있다.
- 페이스북은 가장 대중적인 홍보 수단이다. 책방을 방문하는 연령이 대다수가 2030대의 젊은 여성층이며, 간혹 중년 여성 고객들도 페이스북을 보고 방문한다. 폭넓은 연령층을 확보할 수 있고, 무엇보다 큰 장점은 공유와 빠른 확산 기능이기 때문에 주로 중요한 공지를 알리거나 워크숍 모객에 효과적이다.
-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보다 더 주력하고 있다. 이미지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여행 사진을 자주 올리고,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로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페이스북보다 크다. 해쉬태그로 인한 취향 공유도 확실하고, 개인 서점을 포함해서 작은 공간에 관심이 많은 유저들이 해쉬태그로 취향을 공유하고 퍼져나가는 속도가 탄력을 받으면 더 빨라진다. 그 안에서 좁거나 넓은 취향이 소비되고 있는 셈이다. 페이스북이 공식적이라면 인스타그램은 굉장히 소소하고 관계 지향적이며 사소하다. 책방에서 일어나는 별거 아닌 이야기들, 가령, 고양이 밥 주기, 꽃에 대한 이야기 등 운영자가 하는 일상적인 일들도 공유한다.
가장 좋은 점은 현장감 있는 이야기들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워크숍이나 행사 모습 등을 짧은 글로 공유할 수 있고, 책방 안에서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일부러 관심을 갖지 않으면 책방 주인이 과연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행사를 하는지, 이곳에 어떤 사람이 오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손님이 잘 없는 평일 낮과 저녁에도 책방은 여전히 문이 열려 있고,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는 공간이다. 오늘도 책방에는 적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책이 있고, 많은 일들이 있음을 늘 알려주고 싶다.
- 블로그는 서브 웹사이트로써 기본적인 소개와 공지를 올리고, SNS에서 할 수 없는 긴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일종의 책방 일기이다. 책방에서 일어난 일들, 책방 지기의 속마음 같은 글을 종종 올린다. 의외의 반응을 보내 주거나 위로해주거나 응원해주는 댓글도 받고, 책방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도 한다. 블로그에서는 비하인드 에피소드나 외고를 기고하는 여행 글, 앞으로 나올 출간 글 등을 올리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위한 소통보다는 책방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갑갑하거나 오해가 있을 때, 내 마음 같지 않게 벌어지는 사건사고들, 사람들이 이런 점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들을 길게 풀어쓰는 공간이다.
- 최근에는 공식 홈페이지를 오픈하였다. 순전히 책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오픈한 사이트이다. 이전까지는 SNS 메시지로 개별 주문을 받아 배송을 진행해서 절차도 복잡하고, 개인 정보 유출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웹사이트를 오픈하였다. 여기서는 워크숍 프로그램도 신청 가능하며, 독립출판물도 포함하여 취급 도서들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지금의 가장 큰 고민은 웹사이트를 판매처로 남겨 둘 것인가 아니면 블로그와 연계해서 여행 콘텐츠를 활용하는 장으로 만들 것인가 이다. 대부분이 판매가 위주이고,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유저들도 많지 않아서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하여 유입이 많아질지가 의문이다.
- 그 외의 방법으로 외부 매체를 통한 홍보이다. <작은 책방, 우리 책좀 팝니다> <우리 독립 책방> 등이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매달 주기적으로 책을 보고 왔다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일간지, 방송 매체, 매거진 등의 70여 곳에서 소개되고, 피키캐스트 같은 온라인 매체는 물론, 개인 블로그 후기, 기관, 기업 블로그 기자단이 많이 와서 취재했다. 그밖에 카카오 서비스의 브런치 홍보 영상에 책방이 모델이 되어 소개되기도 하였다. 매체에 따라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다른 편이다. 중년층은 일간지를 보고 찾아온다면, 젊은 층은 SNS나 온라인 매체, 개인 블로그를 보고 찾아온다. 매체에 따라 어떤 손님이 오는지 파악해서 선택적으로 인터뷰를 하거나 노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기본에 충실할 것: 사람들이 작은 책방에 기대하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이다
일단멈춤은 매일 한 권씩 책을 소개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소개하기도 하고, 최소한 두 챕터 이상 읽은 책, 전작이 굉장히 좋은 저자 혹은 믿을 만한 출판사인가 등의 개인적인 견해를 기준으로 책을 골라 소개하고 있다. 책방의 가이드라인과 맞아떨어지는 구간 위주의 숨겨진 책들을 발굴하여 매일 책 소개를 올린다. 그중에서 최영미 시인의 유럽 에세이 <시대의 우울>은 20쇄를 넘게 찍은 여행서 이지만, 대형 서점 안에서는 검색하지 않는 이상 찾기 어렵다. 독자들은 아마도 큰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완벽하게 신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본과 마케팅에 의해 노출된 책이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과 무관하게 책방 지기가 엄선해서 뽑은 책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는 그러한 곳에 있다. 그래서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책을 선별하려고 노력한다. 추천한 책은 다른 책에 비해 판매가 높은 점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영감을 주는 책, 혹은 특별한 롤모델은 없는가
책방을 시작하고 나서야, 참고하고 싶고, 영향 받고 싶은 서점이 떠올랐다. 바로 교토에 위치한 미시마샤(MISHIASHA) 출판사이다. (www.mishimaga.com)
도쿄에 본사가 있는 이 출판사는 지점처럼 교토에도 오피스와 책방이 함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깊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간판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는 가정집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 겨울에는 일본의 난방 기구인 코타츠를 중심으로 딱 늘어지기 좋은 분위기를 풍긴다. 다다미 바닥의 서가는 방을 둘러싸고 있고, 세션별로 책이 꽂혀 있다. 나름의 전시도 하고, 직접 제작한 에코백은 물론 기념품, 굿즈도 판매하고 있다. 물론 사무실이기 때문에 관리자가 한 곳에 좌식 책상을 놓고 가부좌 자세로 일을 한다. 그럼에도 어느 한 군데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는 편안하게 친구 집에 놀러 온 것처럼 스스럼없이 책도 읽고 ,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며 어슬렁 거릴 수 있다. 일반적인 사무실과 다른 이 출판사는 조잡하지만, 굉장한 애정을 담아 책 POP도 직접 손으로 쓰거나 만들고 있다. 이 책방의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은 월간 달력이다. 책방 안에서 어떤 소식이 있는지를 하루하루 기록하는 스케쥴러이다. 독자들도 회의에 참여할 수 있으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 알뜰살뜰하게 책방을 꾸려내고 있다. 비록, 크지도 않고 세련된 맛도 없지만 이 책방을 다녀온 뒤로, 규모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 버릴 수 있었다.
혼자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늘 부족한 것 같고, 더 서가를 꾸미고 채워야 할 것 같고, 트렌드에 발 맞춰야 할 것 같은 고민과 압박이 있어 왔다. 하지만 교토의 미시마샤 출판사를 보면서 외관보다는 내실이 충실한 책방, 그 안에 담겨 있는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영하는 사람의 가치관과 태도가 결합되어 있는 곳이 책방이고, 사람들은 책방의 스토리와 사연을 더 궁금해한다. 왜 이곳에 책방이 있고, 어떻게 열게 되었고, 어떤 책이 있는지를 호기심을 갖고 찾아오는 것이다.
"교보 서점을 놔두고 왜 일단멈춤으로 가야 하나"
주위로부터 이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면 초기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여행책을 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상, 대형 서점과 맞서기 위한 작은 책방만의 해결책이란 크게 없다. 교보 서점은 경쟁 상대가 아니다.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고, 찾아오는 포지션도 다르고, 역할도 다르고, 그에 맞설 방법도 없을뿐더러 필요성도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교보 서점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일단멈춤만의 역할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에서는 못하지만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지점이라 생각한다. 믿음직한 서가(걸맞은 덕목과 책임), 작은 단위의 교류(쌀국수 만들어 먹기, 차 끓여 마시기)야말로 일단멈춤으로 찾아오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일단멈춤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어떤 특정한 여행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온다면 90% 이상은 헛걸음 할 수도 있다. 방콕 가이드북을 추천해달라고 해도, 일단멈춤에서 보여줄 수 있는 책은 극히 제한적이다. 일단, 모든 나라 혹은 도시의 책이 구비되어 있지 않고, 그러한 정보성을 위한 책도 제한적이며, 좋은 글의 에세이나 관련 인문학적 책을 소개하고 있다. 특정 도시에 제한을 두기보다는 특정 문화권을 중심으로 선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방에 오는 분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작은 설렘 같은 것들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었으면 바란다. 챗바퀴같이 굴러가는 일상에서 작은 쉼터의 역할, 일단 멈춤이 필요한 사람들이 특정 정보를 찾기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편안하게 와주었으면 좋겠다. 빽빽하게 밀집된 마음의 공간 사이에 느슨한 책방 하나 정도는 필요하지 않은가. 거기가 일단멈춤이었으면 바란다. 오늘처럼 내일도 별일 없이 책방은 어김없이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Q&A
Q1. 동네 주민들의 참여율이 궁금하다
- 동네 주민들이 오는 일은 10명 중 1명 정도이다. 여기가 책방인지 모르는 주민들이 태반이고, 일반 서점 이미지와 달라서 개인 작업실로 아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일단은 서점 오픈 시간과 주민들의 방문 시간이 맞지 않다. 보통 13-20시 사이에 책방을 운영하는데 모두가 출근한 뒤 문을 열고, 퇴근하면 닫는 시간이라서 동네 주민들은 주말에 찾아오는 편이다. 지역을 위한 사업이나 행사를 계획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동네 책방이라고 하여 거창하게 지역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대의는 갖고 있지 않다. 자연스럽게 계기가 생겨서 동네 안에서 무언가를 할 수도 있지만, 지역 주민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아직 섣부른 일 같다. 서로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주민들도 여기가 어떤 곳인지 실체를 정확히 알아가는 일이 먼저 인 것 같다. 소금 언덕 프로젝트 역시 거창한 대의보다는 이 동네 안에 책방이 있고, 사라지는 공간들을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Q2. 작은 책방으로써 어떻게 공급량을 풀어가고 있고, 출판사와 어느 정도 합의와 조정을 하는지 궁금하다. 혹은 도서 정가제로 인하여 실질적인 도움을 얻었는가
- 도서 정가제의 긍정적인 효과를 봤는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한다면, 체감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책 유통에 관해서는 일반 단행본은 여러 가지 루트가 있다. 하나는 출판사와 직거래하는 것이고, 이는 제일 먼저 시도했던 점이다. 그러나 출판사 입장에서 책방과의 일대일 직거래는 굉장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총판을 사용하기를 권하고, 일단멈춤은 북센이라는 곳과 거래를 하고 있다. (총판 계약은 각자의 조건에 맞게 선택하면 좋을 것이다)
지금은 단행본을 비롯해서 모든 책들은 전부 사입하고 판매한다. 책을 파는 마진율은 정말 작은 편이다. 총판을 통한다면 더 작아진다. 그래서 외부 행사를 많이 진행하려고 한다. 간혹 작은 출판사들이 작은 책방의 의미를 알아봐주고 책을 위탁해주는 곳이 몇 군데 있다. 1인 출판사들도 이 작은 공간이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방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먼저 직거래를 요청하는 출판사들도 있지만, 관리 면에서 번거로운 과정이 있어서, 총판 공급률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총판을 이용한다. 간혹 좋아하는 출판사라거나 프로모션이 가능한 곳이라면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총판을 활용하는 편이다.
Q3. 여행이라는 주제가 한정적일 수도 있는데, 어려움은 없는가
- 초반에는 여행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책과 영감을 주는 책으로 구비했다. 실제로 여행서를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정말 좋은 여행기를 찾는 일은 어렵다. 대부분이 일회성에 가까운 에세이나 순간의 흘러가는 감정 소모적인 책들이 많아서 아쉽다. 그래서 여행을 구상할 수 있는 그 주변의 인문학, 문학, 예술 관련 서적들을 폭넓게 다루려고 하고 있고, 좋은 서가를 꾸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4. 혼자서 워크숍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있는데, 그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는지, 그리고 인기 높은 프로그램은 무엇이고, 앞으로 구상하고 있는 워크숍이 있다면 알고 싶다.
- 지난 1년 동안 이루어진 워크숍, 원데이 전시, 행사, 여행 토크를 포함해서 모두 철저하게 기획해서 진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지인들이 도와준 것도 아니었다. 책방에 오는 사람들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색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고, 재능이 있고, 이런 것을 하고 싶다는 꿈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디어가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개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어떤 정해진 복잡한 절차도 없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면 되고, 진행자들과 마음이 맞아서 일정이나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면 바로 계약하고 공지하고 모객하고 진행했다. 미리 기획해서 섭외하고 진행하기 보다는 어렵게 찾아온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이루어진 행사들이 더 많았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보다는 2-3개월 안에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생각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는 편이다.
인기가 좋은 워크숍이라면 아무래도 책을 만드는 일과 관련된 프로그램이다. 1인 출판을 하고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토크가 늘 인기가 많았고, 출판사를 세우거나,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그와 관련된 편집 프로그램을 배우는 행사도 늘 인기가 많았다. 새로 구상하고 있는 워크숍은 역시 마찬가지로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독자들은 책을 일로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매주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가깝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Q5. 책방의 다양한 일들이 많은데 여러 가지 일들을 혼자서 하고 있는가
- 그렇다 대부분 혼자서 하고 있고, 혼자서 하다 보니 어려운 점도 분명히 있다. 본의 아니게 쉬는 날, 혹은 휴가 때문에 1주일 이상을 비울 경우에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Q6. 공간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1년이 지난 뒤, 공급자와 수용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차이가 있는가. 공간에 대한 의미가 서로 공통되거나 다른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처음 책방을 열 때는 개인적인 목적이 컸다. 완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과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진 공간이 오롯이 필요해서 스스로를 위한 책방이라는 의미가 중점적이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하고 보니 개인적인 부분보다는 SNS을 통해 만나거나 찾아오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눈다는 공간의 의미가 더 커졌다. 공동의 공간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하루 쉬는 일도 이젠 부담으로 다가온다. 초반에는 내가 주인이고 관리하는 공간이니 내 마음대로 열고 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섣불리 그러지 못한다. 책방은 늘 휴무를 제외하면 열려 있어야 한다. 초반에는 이런 규칙을 잘 지키지 못해서 약속이 있거나 컨디션에 따라서 열고 닫았고, 지각도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책방 공간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졌고, 이곳을 공유하고 싶고,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임을 이해하게 됐다.
Q7. 새로 웹사이트를 통해 주문도 할 수 있게 됐다.
- 홈페이지를 만들게 된 계기는 지방 고객들을 위한 통로로 만들게 됐다. 개별적으로 들어오는 주문들이 대부분 지방 고객들이었다. 혹은 주변에서 독립출판물을 구하기 어려운 고객들이 많이 주문하고 있다.
*본 강연은 2016년 3월 29일 서울책방학교 강연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여행책방 일단멈춤' 공식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topfornowbooks) / '미시마샤' 출판사 공식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ishimas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