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민 Feb 23. 2020

전태일 이후, 현재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은 어떠한가?

아이돌 노동환경을 중심으로.

이 세상의 많은 전태일들이 조금이나마 바꿔놓은 현재의 노동환경


    <전태일 평전>을 반쯤 넘게 읽고 있었을 때, ‘그래도 2019년 현재에는 이런 노동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노동자들의 인권이 존중되고 있구나’라는 안도와 함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나는 전태일처럼 생활고에 시달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용돈 정도는 내가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편의점, 레스토랑, 택배 물류, 학원 등 다양한 노동환경을 조금이나마 경험했다. 작년에 학교를 다니며 주말마다 약 1년가량 근무했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부터 언어폭력을 빈번히 경험했다. 일하는 쉬는 시간마다 힘들고 무서워서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울었고,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했다. 편의점에서 일했을 땐 임금이 종종 늦게 지급되는 상황도 벌어졌다. 누군가는 2주 정도 임금이 밀리는 게 별것 아닐 수 있겠지만, 일해서 버는 용돈을 교통비, 식비로만 지출하는 나로선 막막한 일이었다. 결국, 엄마·아빠께 돈을 달라고 연락했지만, 정말 죄송한 마음이 컸다.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던 학교 선배는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임금이 지속해서 늦게 지급되고, 주휴수당은 보장받지 못해서 노동청에 가기도 했다.

    1970년 낡아빠진 ‘근로기준법’을 전태일이 자신의 목숨과 함께 태우며, 세상에 부당함을 알렸기 때문에 그래도 선배는 노동청에 가서 이러한 임금체납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이런 상황들을 경험하며, 현재에도 노동자들의 인권이 완벽히 보장받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전태일과 같은 노동운동가들과 많은 노동자의 희생 덕에 평화시장에서 고통받던 노동자들과 같은 극악한 노동환경은 현재, 어느 정도는 개선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에도 지속해서 전태일이 분노했던 노동자들의 인간소외 현상은 다양한 노동환경에서 나타나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노동환경 속 인간소외 현상이 가장 잘 와닿았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연예계에 종사했던 노동자들, ‘아이돌’들의 잇따른 자살을 언론에서 접한 순간이다.


아이돌들의 잇따른 자살과 그들의 노동환경


    <전태일 평전>을 거의 다 읽어갔을 때, 비보를 접했다. 가수 구하라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1달 전만 해도 내가 굉장히 좋아했었던 설리의 죽음 때문이었을까, 구하라의 사망 소식은 더욱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만 이러한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접한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현재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자라오면서 몇 번이곤 언론사에서 충격적인 소식들을 접했다. 아이돌이나 연예인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지만, 샤이니 팬이었던 친구 따라 드림 콘서트를 두세 번 다녀오며 우리 집엔 샤이니의 응원봉과 민트색 풍선이 한켠에 자리 잡게 되었다. 샤이니의 팬인 친구와는 매우 친해서 재수할 때도 종종 같이 공부하곤 했었다. 그리고 2017년 수능이 끝나고 휴식을 즐기고 있었을 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엉엉 울며 전화 온 친구에게 샤이니 종현이 자살했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많이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며, 나도 많이 우울했었고 연예인들이 왜 이렇게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번 해, 설리와 구하라가 자살했다. 항상 당당했던 설리를 좋아했던 터라 이번 사건도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전태일이 생명을 바쳐 싸우고 원했던, 인간의 권리를 보장받는 기본적인 노동환경이 현재 연예계에선 잘 마련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살한 아이돌은 대부분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었다. ‘우울증’이라고 단편적으로 언론은 말하고 있지만, 결국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연예계 구조와 대중이 그들에게 가하는 폭력이 공공연하게 도사리고 있는 아이돌의 노동환경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게 아니었을까? 곱씹어 생각해봤을 때도, 아이돌의 노동환경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인간소외 현상이 가장 심각하게 발생하는 환경 같았다.     


아이돌 생산시스템 속 인간소외


    연예인 중에서 특히 아이돌들의 비보가 잇따랐다.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했다고 한 샤이니 종현, 설리, 구 하라 이들은 모두 아이돌 시스템에서 자라온 연예인들이다. 그렇다면 아이돌들을 처음 데뷔시키는 시스템은 어떠할까?


    우리나라는 차별화된 아이돌 생산방식을 가지고 있다. 케이팝의 창시자 이수만이 아이돌 시스템을 하버드대학교 강연에서 소개한 것처럼 말이다. 아이돌 생산시스템은 모든 것을 매뉴얼로 정리해 놨다. 해당 매뉴얼에는 어느 국가에서 공연할 때 어떤 이미지를 연출해야 하고 어떤 색깔의 아이섀도를 발라야 하는지 등이 모두 정리돼 있었다. 이러한 매뉴얼들을 기반으로 아이돌 생산시스템은 돌아간다. 아이돌의 통합 시스템은 오디션을 통한 연습생의 캐스팅과 그들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춤, 노래, 연기 훈련, 성형수술, 다이어트 관리, 영어, 일어, 중국어 등의 외국어 교육, 언론 인터뷰, 마인드 컨트롤 등의 하드트레이닝을 포함한다. 이 시스템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효율적이고 획기적인 ‘인재양성프로그램’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의 효율성은 순전히 기업의 논리에서만 적용 가능할 뿐, 이 시스템은 연습생 개개인 별로 살펴봤을 땐, 인재양성을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연습생 시절부터 그들은 다양한 규율 속에 살아야 했고, 언뜻 보면 그 규율들은 인간임을 포기하고 그저 아이돌의 말뜻처럼 ‘인형’처럼 사람들을 대해야하는 규율들이었다. 그들은 연애가 허용되지 않으며, 음식을 멋대로 먹지도 못하고, 소속사가 원한다면 자신의 얼굴을 고쳐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심각한 인권유린이 가득한 연습생 시절 노동환경은 아이돌이 됐을 때도 지속된다. 이들의 사생활이 철저히 관리되고 박탈된다. 연습생 시절부터 ‘인-하우스 시스템’을 통해 합숙훈련을 받는다. 아이돌 연습생들은 술과 담배, 개인 전화, 연애 등을 모두 금지당하며 그들 사생활의 모든 측면이 기획사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된다. 이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마치 공장의 조립라인과 비슷하다. 이렇게 과도하게 표준화되고 합리화된 생산시스템은 이들을 인간소외로 몰아넣은 것이다. 샤이니 종현의 자살 소식 이후 아이돌들이 자유와 권리를 제한당한다며 아이돌 기획사들은 ‘자살 예방 교육’프로그램을 아이돌 트레이닝 과정에 포함해, 해당 문제를 다시 관리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었다.


    그들은 인간소외를 일으키는 시스템 속에서 평화시장의 시다들처럼 폐병과 같이 육체적인 병은 아니어도 마음의 병을 계속해서 키워나갔을 것이다. 어리면 초등학생부터 연습생 생활에 뛰어드는 아이돌 연습생과 50년 전 평화시장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었던 시다의 노동환경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이라고. 부자의 생명처럼 약자의 생명도 고귀한 것이라고. 그는 고발하였다. 이 사회의 밑바닥에는 인간이면서도, 짐승이 아닌 인간이면서도 “그저 빨리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기를 기다리는, 그리고 죽어가고 있는 생명체들”이 있다고, 이들은 “모든 생활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말살당하고 오직 고삐에 매인 금수처럼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하여 끌려다니고 있다”라고, 그리하여 그는 맹세하였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도 노력할 것이다”라고…….”     

    

    전태일이 싸워갔던 ‘인간을 물질화는 세대’ 이러한 현재의 연예기획사들의 시스템은 전태일이 그토록 경멸했던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시스템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전태일의 ‘인간적인 요소를 말살당하고 오직 고삐에 매인 금수처럼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하여 끌려다니고 있다’라는 말 속의 ‘고삐에 매인 금수’는 노동환경은 연예기획사 속 아이돌 연습생들이나 연예인들과 다를 게 없다. 그저 연예기획사는 금전적인 이득을 위해 기계의 부품처럼 아이돌을 사용하고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의 마음의 병이 생기지 않는 것이 더 신기할 따름이다.  

    

아이돌의 감정노동


한 인간을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시키는 연예기획사의 시스템에서 그들은 감정노동을 지속해야 했을 것이다. ‘나’라는 주체를 지워버리고 회사가 만든 틀 안에서 나를 재창조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진정한 ‘나’이지 않기 때문에 감정노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한국의 저임금 경제가 딛고 선 냉혹한 인간경시, 인간비료화, 저 참혹한 노동 지옥을 상징하고도 남는다     


    1960년대 평화시장의 시다들이 일하는 환경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저임금 경제는 아니다. 하지만 급속으로 성장한 경제환경 속에서도 냉혹한 인간경시는 지속해서 발생해왔다. ‘인간’으로서 그들의 감정을 존중받기보단, 어떻게 하면 대중들을 만족시켜 회사에 돈을 창출 할 수 있게 그들의 ‘가짜감정’을 만들어낼지에 연예기획사들은 주목한다. 50년 전 전태일이 보고 듣고 경험했던 인간경시 풍조는 오늘날 연예계에서도 ‘감정노동’이라는 형태로 지속된다.


    아이돌이 자신의 삶을 연기함으로써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 아이돌은 그룹 형태를 띠기 때문에 각각의 구성원은 그룹 이미지에 맞추어 자신의 행동을 연출하고 이미지를 조율한다. 한 그룹 내 소속된 다수의 구성원은 각기 다른 역할을 맡고 있으나, 여전히 그룹 전체의 이미지를 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배정받고 그에 맞춰 연기한다. 이런 점에서 아이돌 그룹의 구성원은 자신의 개성을 삭제하고 그룹 이미지에 맞추어 행동함으로써 대체가능한 부속품 같은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아이돌이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획사는 아이돌이 강한 주체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단속하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서도 성과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긍정해내는 감정노동을 강요한다. 이렇게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아이돌은 분노와 저항을 느끼지 못하는 순응적인 주체가 되어가며 현재를 긍정하며 자기착취적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노동을 통해 아이돌들은 주체성은 점점 잃어가고 그저 아이돌 그룹이라는 기계의 부품으로서 노동을 지속한다. 이런 노동현상은 <전태일평전>의 작가가 50년전 사회를 바라보며 했던 말인 ‘인간비료화’와 다를바가 없다. 아이돌은 기획사의 금전적 이득과 문화산업의 성장을 위해 ‘인권’은 보장받지 못한 채, 그저 비료로서 내던져진다.      


대중이 가하는 폭력, 그 속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돌


    일반노동자들에 비해 이중으로 연예인과 아이돌은 고통받는다. 연예기획사인 그들의 회사뿐만아니라, 연예인들은 대중에 내비치는 직종이다보니 대중의 영향 또한 존재한다. 대중들의 악플과 그 속에서의 만연한 젠더문제가 그들에게 심각한 폭력을 가하고 있다.


    설리와 구하라는 모두 악플에 시달렸다.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 아이돌인만큼, 그들의 행동하나하나에도 대중들은 반응했다. 인신공격과 성희롱적 발언, 그들의 키보드 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악플’로 인한 연예인의 죽음은 그들의 죽음 전, 이미 최진실의 죽음을 통해 알려졌다. 심각한 악플로 인한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했다. 악플로 인한 죽음과 연예인들의 고통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은 2008년 최진실의 죽음 이후, ‘인터넷 악플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인터넷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관계 기관과 적극 협조해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과연 11년이 지난 지금, 변화한 것이 있을까? 최진실의 죽음 11년 후에도, 아직까지 많은 연예인과 아이돌들은 계속해서 포털 사이트의 연예기사에 달린 악플로 인해 우울함을 경험하고 언어폭력에 시달린다.  


    KBS뉴스에 따르면 가수 구하라와 관련한 댓글 만 3천여 개를 모두 분석한 결과, 대중의 혐오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데뷔 이후, 국내와 일본을 오가며, 활동 중이던 구하라 씨는 지난해 전 남자친구 최 모 씨와 폭력 시비에 휘말렸다. 최 씨가 성관계 동영상을 공개하겠다며 협박한 사실도 드러났고 이에 어김없이 악성 댓글이 달렸다. 또한, 이러한 사건이 대두되자,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1위는 ‘구하라동영상’이 되기도 했다. 대중들은 성범죄 피해자인 여성에게 2차가해를 어김없이 한 것이다.


    지난 5월 그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조차, 악플의 비방의 수위는 더 높아졌다. 자살의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성관계 동영상을 언급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시도가 실패한 게 아깝다, 다음엔 성공하라며 저주를 퍼붓고, 인격을 말살하는 댓글도 상당했다. 거친 욕설과 인신공격이 담긴 글도 60%에 달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담고, 페미니즘을 비꼬는 댓글들은 혐오 그 자체였다. 심지어 성관계 동영상을 언급하며 언어적 성폭력도 빠지지 않았다. 구하라 씨에게 쏟아졌던 악성 댓글 뒤엔, 뿌리 깊게 잠재된 혐오가, 그리고 폭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사에 달렸던 악성 댓글은, 또다시 기사의 소재가 돼 포털사이트에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구하라'라는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또다시 기사로 만들어지는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아이돌인 동시에 성범죄 피해자로 존중받아야 하는 그는,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지속해서 n차 가해를 받고 있었다. 이렇게 악플뿐만아니라, 여성연예인들은 대중들에 의한 젠더폭력에도 지속적으로 시달린다. 알려진 이들의 악플과 젠더폭력 뿐만아니라, 보이는 곳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여성연예인들을 향한 성희롱적 발언과 젠더폭력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미성년자의 나이인 아이돌에게도 네티즌들은 성희롱을 하며 젠더폭력을 가하고 있다.     

그들도 인간이다


    이렇게 아이돌들은 대중들로부터 정부의 정책으로부터 기획사로부터 그 어떠한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연예인들도 인간이다. 그들은 다른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계’가 아니다. 왜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환경 속에서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는것인가? 성적자기결정권을 포함한 기본적인 인권조차 갖춰지지 않는 사회의 대중 속에서 고통받고, 그렇다면 더더욱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야할 그들의 회사인 기획사 또한 대중과 마찬가지로 아이돌과 아이돌 연습생들의 인권을 ‘성공’이라는 가면을 쓰고 짓밟고 있을 뿐이다.      


기업주들의 비인도적인 착취는 사회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만들어져 지배 권력에 보호받고 있다.

    <전태일 평전>에서의 노동환경을 설명할 때, 작가는 비인도적인 착취가 지배권력에게 보호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50년 전과 비슷하게, 현재 아이돌들은 지배권력의 보호 아래에서 비인도적으로 착취 받고 있다. 전태일의 희생과 그 이후의 많은 노동자의 노력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종현, 설리, 구하라가 아이돌 산업과 대중의 비인도적인 폭력에 의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변화해야 한다. 아이돌도 인간이며, 그들은 인격적으로 대우받을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노동환경도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라고 외친 전태일의 죽음을 연예계는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5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50년 전 평화시장의 시다들과 같이 아이돌들은 노동자로서 혹사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기계처럼 노동하고 있다. 그 속에서 이들의 인격은 짓밟히고 있으며, 인간소외 현상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11년 전 최진실의 죽음에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은 ‘인터넷 악플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인터넷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관계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조해나갈 것이다’라고 주장했고, 현재 대한가수협회는 ‘포털사이트 댓글 즉시 중단하고, 국회, 언론, 네이버, 문화체육관광부에게 현실적인 대책을 수립하라’라고 입장문을 게시했다. 연예계의 구조와 대중이 그들에게 가하는 폭력이 공공연하게 도사리고 있는 아이돌의 노동환경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만큼, ‘악플방지법’과 같은 가시적인 해결책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노동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가 땅을 치며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너무나도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많은 아이돌과 아이돌 연습생들은 아이돌 산업 속에서 인간소외 현상을 경험하며, 인격적으로, 신체적으로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아이돌이기 이전에 인간인 그들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노동환경이 보장돼야 할 때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희생자들은 계속될 것이며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 또한 지속될 것이다.           





                    

참고문헌     

공민경, 「구하라, 숨막혔던 ‘혐오의 늪’... 뉴스 댓글 1만 3천건 분석」, KBS뉴스,    2019.11.20.,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34048&ref=A     

박성모, 「자본주의사회에서 나타나는 아이돌 그룹의 소외」, 『사회과학연구』, 31권 1호, 2015, 275-301쪽.     

방희경,오현주, 「아이돌의 정동노동과 노동윤리: 리얼리티 오디션 쇼 프로듀스101을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보』, 91, 2018, 76-117쪽.      

원용진,김지만, 「사회적 장치로서의 아이돌 현상」, 『대중서사연구』, 18권 2호, 2012, 319-361쪽.     

조영래, 『전태일 평전』, 아름다운 전태일, 200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