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증

아무도 없었다.

by 유빈


여기, 엄마와 아들이 있다.


내 기억을 갉아먹는 좀 같은것이,

꽃밖으로 튀어나와

어느 틈에 내 머리로 가지 않았는가,


첫 번째엔 입을 절게 하고,


두 번째엔 몸을 통제하며,


세 번째엔 머릿속을 지운다.


그리고, 두 번째엔,


뭐더라,


기억이 나질 않네,


기억이 나질 않아서,

노트와 펜을 가방사이 두고 다닌다.


기록한다.


그날의 향기,


그날의 약속,


그날의 풍경,


세세하게,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내면 속 기억현상은 필름 속 사진 마냥

희미해져 간다.


고장이 난 것인지, 도통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데, 손이 말을 들었던 적이 있던가,

매번 반찬 투정에 툭하면 삐치기나 하고,

내속을 타들어가게 해 놓곤, 곤란하게 한다.


여기에 두 남녀가 있다.


이 남자, 참 훤칠하게도 생겼어라,

뉘 집 아들내미 인지, 어디서 왔는지,

부끄러워 말을 못 걸겠다.

그런데, 말은 어떻게 하는 걸까,


생각은 어떻게 하는 것이고,

몸은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모든 것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이상해 지는 건, 뭘까,

무언가는 무엇일까,


이 남자, 갑자기 얼굴을 찡그린다.

뒤돌아선 어깨를 들썩이는데,

뭐가 그렇게 재미난 걸 하고 있는 걸까,


여기에 , 아빠와 딸이 있다.

나는 오늘도 학교를 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다.

반찬도 매번 맛없는 거만 내주고,

국은 또 왜 이리 짠 것인가,


날 자꾸 이상하게 쳐다보는 그 눈빛이,

그게 너무 싫다.


난 아빠가 싫다. 너무나도,

기억나질 않는 걸 기억하라 하니까,

날 자꾸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니까,

나 더러 뭐 어쩌라는 거지,


아빠는 온 세상 매일이 주말이래,

그래서 학교를 안 가도 된다는 거야,

그런 게 어딨어, 벌써 결석만 2년째인데,


한 줌의 모래를 두 손으로 모은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모래,

사라지는 기억들,

희미해진 얼굴들,


기억의 상실,

고장 난 신체,

그리고, 죽음의 문턱,


수많은 모래들이 내손에서 흩어져간다.

나 또한 두 손에서 사라져 간다.


분명, 배가 아팠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후엔 나날들이 피곤하게 선잠만을 보냈고,

지독하게 아끼며 사랑으로 채웠던 아이가,

내 곁에 머물렀던 것 같은데,


돌아오질 않는단다.

그렇게 난 홀로 가는구나,

길가에 보인 꽃은

어느새 내 허리보다 훨씬 굽어져 있다.


한 번만, 더 살아보고 싶어,

아직 이대로 끝나기엔,

아쉽잖아, 너무 아쉽잖아요.


분명히 여기 내 아가가 있었다고요,

아저씨, 좀 찾아주세요, 내 아이,

피칠갑을 하고 내 몸에서 태어난 그 시점이

아직까지 생생해요,


너의 몸부림,

너의 우는소리,

너의 반짝이는 눈이,


이 어미의 기억엔

놓지 못하고 살아있단다.


어디 있니 내 아가,


어디 있니, 아들아,


네가 어디에 있든, 엄마는 널 사랑한다

다음엔 엄마 곁에 있어줘,

또 올게, 다시 만날 때까지,


그렇게 나의 엄마는 한참을 중얼거리곤

깊은 수면의 늪으로 빠지셨다.

구해내질 못했다.


이맘때쯤 찾아온 좀은

잔인하게도 잠식을 마쳤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을

잃어가는 기분을,


좀은 알까,


그날의 향기를 다시 한번 맡아봐도,

그날의 약속장소를 매번 기다려봐도,

그날의 풍경을 매일 바라보아도,


곁에 있었던 꽃은 생기를 되찾지 못한다.

그리고 나 또한 점차 시들어간다,


여기에 가족이 있었다.


두 남녀도 존재했고,


아빠와 딸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첫 번째,


뭐더라,


애당초 여기엔 아무도 없었다.


남아있는 건, 메말라버린 꽃 두 송이,


그리고 고요한 적막,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