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소년의 자살 유서
“너는 내 삶의 사건의 지평선이었다.
네가 사라진 순간, 나는 끝없이 무너졌다. “
오늘 나의 세상이 무너졌다.
나의 존재 이유, 삶의 기둥, 가장 사랑하는 아이가,
오전 11시 26분,
10층의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였다.
나의 아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안면이 훼손되어 바라볼 수 조차 없었다.
피가 흥건했다. 흰 천이 무색할 정도로.
그 아이의 꺾인 발이,
힘없이 떨궈진 팔이,
정말 믿기 싫지만, 나의 아이였다.
주저앉았다. 턱이 나갈 정도로 입을 벌린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소년을 맞이했다.
그 아이와 함께 죽어버린 내 두 눈이,
구급차에 실려가는 모습을 담은 채로,
색색조명 가득한 내 세상이, 암전이 된다.
나의 희망, 나의 빛이자 모든 것이었던 나의 아이,
무엇이 문제였기에 죽음마저 극복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던 걸까,
힘들진 않았을까,
무섭진 않았을까,
아프진 않았을까,
그러질 않길 바랐고,
이겨내길 기도했고,
살아주길 빌었다.
신은 간절한 나의 간청에 응답이 없었다.
매일밤 같은 장면의 악몽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피폐 해진 내 삶은 회생될 수 없었다.
아이의 유서를 열어볼 수 없었다.
내 아이의 필체, 유서에 베인 냄새 까지도,
살아갈 의미나, 극복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보는 눈을 자극할 테고, 맡는 코를 마비시킨다.
그는 별이 무너져 생긴 블랙홀처럼 사라졌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닿을 수 없는 경계를 넘어
천천히 내 신체 일부를 흡수한다.
기억은 낫질 않는다.
머리를 열어 뇌를 해부하고 싶었다.
어떤 약으로도 마취되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의 죽음이 나를 해부하는 것보다
무섭지 않았을 테니, 아프지 않을 것이니,
정신이 나간 것쯤은 자각하고 있다.
살아가는 게 미안해서 죽으려 했지만,
나는 천국으로 갈 수 없단 걸 알기에,
내 아이의 얼굴을 볼 자격이 없었다.
차려놓은 밥상을 한 숟갈이라도 아이가
뜨기 전까진, 숨을 쉬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피칠갑을 한 천으로 둘러싸인 아이가
드디어 첫 숟갈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아이가 웃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앙상하게 보이는 뼈들을 보이며
물구나무를 섰다.
그리고 그렇게 선체로 밥을 입에 가져다 댔다.
아이는 이윽고 밥상에서 일어난 체
서서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밥을 삼킬 수 없어 전부 토해내었다.
거꾸로 보이는 아이의 영정사진이 신비로웠다.
아이가 떨어졌을 당시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내가 바라본 모습으로 보였던 걸까,
나는 점차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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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었고, 티브이를 틀어놓은 채 아이에게 전하는 말들을 담은 편지를 작성하였다. 티브이 뉴스에는 나의 아이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보도하고 있었다.
나의 아이, 엄마는 지금껏 수많은 죄를 지어왔어, 염치없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죄를 지어도 되겠니? 엄마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너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끝내 찾질 못했단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그래, 엄마도, 거꾸로 된 세상을 보고 싶어. 내 새끼, 엄마 기다리지 마, 나는 그곳으로 갈 수 없어. 그곳에선 자유로이 네가 하고 싶은 걸 찾고, 마음껏 놀다 갔으면 해, 못난 엄마, 잘해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
정말 사랑한단다…………………
내리는 빗줄기가 눈처럼 포근했다.
우산을 쓰지 않은 채로 그대로 만끽하였다.
도착한 곳은 어느 한 곳의 건물 옥상.
밤하늘이 예쁜 탓에 광활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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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유서를 펼쳐보았다.
엄마, 안녕, 만나서 반가웠어요.
제 세상은 데칼코마니였어요.
무의식의 세상은 반만 존재해도 다른 곳에 똑같은 행성이 생기는 법이죠. 저는 여태 나비인 줄 알았는데, 날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제스스로도 나비라고 불리는 게 싫어졌어요. 그래서 개도 되어보고, 고양이도 되어보았지만, 식상하기만 하고 재미는 없었지 뭐예요. 저도 알아요, 세상 사람들이 저를 신기한 눈빛으로, 또 한 번은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을요, 저는 매번 그 기억의 틈으로 항해할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껴요. 저는 매 순간 존재의 부정을 겪어왔어요. 인간은 제가 생각한 수준보다 훨씬 악마들이었어요. 저에게 상처와 억압, 학대가 기본시되었었죠. 좀 있으면 다시 나비가 될 텐데, 그전에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이번엔 정말 날 수 있어요. 비록 거꾸로 날아가는 거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멋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요. 그래서 정말 행복해요. 저는 언제나 엄마 곁에 있을 거예요. 그 어떤 것이 되어서든요.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엄마가 절 사랑해 줘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럼, 저는 이만 날아갈게요.
안녕!!
-아들-
아이의 유서를 읽고
기쁨에 찬 나머지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 엄마가 맞았어..! 드디어
널 이해할 수 있어!
우리 아이, 굉장히 큰 도전을 한 거였구나,
어찌나 꺾인 팔이 나비의 날개 같던지,
이 세상 그 누가 몰라주더라도 엄마만큼은
널 알 수 있었던 것 같구나,
널 낳게 되어, 정말 영광이었어.
엄마가 곧 너의 반쪽의 날개가 되어
나타날게!
네가 떠난 그날, 내 마음에도 하나의 블랙홀이 생겼다.
네가 남긴 자리는 사건의 지평선처럼, 돌이킬 수 없는 공백이 되었다.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쳤다.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서 난 미쳐갔던 것이다.
나는 아직 너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 경계선 앞에서 멈추지도, 돌아서지도 못한 채.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단지 다른 세계의 입구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모를 수밖에 없었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문.
저를 지나쳐 가실 사람들에게,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자유로운 나비였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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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사람들의 비명들이 내 세상을 채웠다.
거꾸로 보았던 사람들은 신비로웠다.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지만, 두 눈은
정확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아, 짧았지만 좋은 날갯짓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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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방에 틀어놓았던 티브이에서 뉴스속보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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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성이 한 아파트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60분 뒤, 20대 남성이 친구와 함께 1층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앞서 가던 친구가 비명을 지릅니다.
14층에서 투신한 30대 여성이 코앞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숨진 여성의 가족은 없는 걸로 확인되었으나, 방안엔 본인의 영정사진을 걸어둔 밥상이 차려져 있었고,
이름 모를 아이를 향한 알 수 없는 유서가 담겨 있었습니다. 2년 전 그녀를 진찰한 인근 병원에서는 숨진 여성이 극심한 해리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던 것으로 판정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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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떻게 넘어서게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