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분홍신

by 유빈


어느 날 허름한 창고에서 만난

빨간 구두,


누가 신었는지 모르지만,

그 공간의 세월은 짐작이 될 만큼

많이 지난 상태임에도

보존상태가 이상하리만큼 훌륭하다.


지나칠까, 하고 눈길을 돌렸지만,

홀린 듯이 구두 앞으로 서게 된다.


가지고 가면 죄인이 될 텐데,

주인에게 찾아줘야 할 텐데,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의 손이 멋대로 구두를 잡아 체 간다.


딱 맞는 사이즈와 흡족한 미소,

나는 이것을 신고 무도회에 갈 것이다.

귀족들이 나의 구두에서 눈을 떼지 못할 거야.


춤을 추고,

절도 있는 몸짓으로 한 바퀴 돈다.

그리고 , 반대 방향으로 나의 드레스와 함께,


“아가씨, 당장 그 구두를 벗어요. “


“무슨 일이시죠? “


“저주받은 구두예요, 제눈엔 보여요. “


“이건 제 구두예요. 제가 산거라고요.”


“잠식되기 전에 환각에서 벗어나세요.”


“이상한 소릴 하시는군요, 그쪽이야 말로 제 구두가

탐 이 나시는 거 아닌가요?”


“…. “


돈다, 돈다, 돈다,

춤을 춘다.


이제 잠시 쉬어가고 싶은데,

어째서 나의 발이 맘대로 움직이는 거지?


“저기,”


“이제 돌이킬 수 없을 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멈출 수 있는 거죠?”


“제가 말했잖아요.”


더 이상 나의 명령을 듣지 않는 발이,

무도회의 음악이 끝나가도, 빠르게 움직인다.


“도와주세요. 저의 발이 멈추질 않아요!”


“저쪽을 봐요. 훌륭한 춤이군요.”


귀족들은 나의 춤사위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아니에요, 이건 제가 추고 있는 게 아니라고요.”


“발이 생각이라도 한다는 겁니까?”


“그게, 잘 모르겠어요.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해요.”


구두이서 피가 나기 시작하고,

지나간 흔적에 피가 맺힌다.

미끄러지듯 넘어지지 않고

맹렬한 춤을 이어가는 도중,

의식을 잃을 정도로 격해지는 반동에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까 마주쳤던 그이가 눈에 보였다.


“저기..”


“여러분!! 마녀가 나타났어요!!”


“당장 태워버려야 합니다. 안 그럼 춤추는 악마가 되어 나타날 거예요!!”


무도회에 있던 귀족들의 비명이 공간을 채운다.


“어쩜 저리 역겨운 춤을..!”


“못 봐주겠어요, 당장 죽여버려야 해요.”


“아니에요!! 여러분 저는 마녀가 아닙니다!”


“마녀의 헛소리에 속지 마세요!! 힘을 합쳐 무찌릅시다 “


사람들이 나를 붙잡고 차디찬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그럼에도 나의 발은 잠식을 마친 듯 미친 듯이 요동친다


“다리를 잡고, 발목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그만둬요!!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나를 마녀라고 선동한 귀족이 내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인다.


“이 구두는 내 거야,”


도끼가 번개처럼 내리쳤다.


발목이 잘린 고통을 참지 못하고 무도회의 음악과 함께 섞인 나의 비명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전 그저 예뻐 보이고 싶었을 뿐이에요, 이 구두의 주인은 제가 아니에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저를 내버려 두지 말아 주세요.”


곧이어 나의 피가 바닥에 가득 고인다.

차가운 시선들이 나를 찔러댄다.


“오늘 행사는 이쯤 하고 물러나도록 하죠. “


“그게 좋겠어요, 파티에 마녀라니, 참..!”


“잘린 발은 무도회 밖을 뛰어 깊은 숲 속으로 사라졌다 “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간다.


나의 의식이 하나 둘 희미해져 간다.


공연이 끝났다.


.


.


.


.


.


당신을 숭배합니다.

다음엔 어떤 이가 이 구두의 유혹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오직


당신만이 신을 수 있는,

당신만이 감당할 수 있는,

분홍신,


아아, 오늘의 제물에 감사합니다.

일용한 양식이여, 그분이 네게 은총을 내리니,

하늘이 게어지고, 너는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작은 영혼, 우리 곁에서 영면하리라.


나의 시체는 악마의 제물이 되어,

귀족들의 귀품 있는 식사 자리로 가게 된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 말은 들리지 않으시겠지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어느 날 허름한 창고에서 한 아이가 나타났다.


아이의 눈에 띈 빨간 구두,


눈치를 보던 아이는, 이내 그 구두를 품에 안고,

집으로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엄마! 여기 예쁜 구두를 찾았어요!!”


누가 신었는진 모르지만,

그 공간의 세월을 짐작할 정도로,

아주 오랫동안, 그 구두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