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은 지나간 자리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버틴 자에게 남기는 것이 하나 있는데,
대부분 추억과 마음 같은
인간의 가장 취약한 약점을 건든다.
부서진 집을 보고,
눈앞에서 사라진 너를 보고,
날아간 그 자리 위 기억을 본다.
함께 무너졌다면 맘이 편했을 텐데,
지나간 하늘은 개어진 채 맑기만 하다.
뭣하러 아이에게 빛을 비추는가?
최후의 생존자에게 주는 영광?
그렇다.
재앙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아픔으로 시작된 아이는,
태풍의 눈에 존재할 뿐이지,
주변의 도움이 닿을 수 없이
한 몸처럼 붙어 다니니까,
너는 나를 도울 수가 없어,
그것도 알고 있지만,
이해할 수 있어서
정말이지 아프댜.
그래, 너는 내게 과분하니까,
휘몰아치는 마음을 잘라낼 수 없어,
나약함을 인정할 수밖에,
멀리, 멀리 떠나가,
다가오면 너만 다쳐,
그러니까,
제발 나를 안지 마,
제발 나를 위로하지 마,
그럼에도 너는 내게 동정을 느끼는 거니,
어떤 폭풍이 지나갔길래, 너는 그리 강해보이니,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니,
마음에 홍수가 났다.
겨울이 찾아와 동결된 시점엔
재앙조차 느릿해지기 시작했다.
수북이 쌓인 눈들은
무너진 건물과 아픈 기억조차도 가려주더라,
그리고 조그만 아이가 키보다 높은
눈사람을 만들던데,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아팠을까,
옆으로 누운 눈사람이
지쳐 쓰러진 내 눈과 마주치잖아,
이상해,
두고 볼 수가 없었어,
기다려봐 , 폭풍이 지나칠 아이야,
일어나서, 일으켜 세워줄게,
그리고 난 다시, 일어섰다.
폭풍을 지나간 아이가,
폭풍을 지나칠 아이에게,
희망조차 남기질 않을 거란 생각을
품게 해주고 싶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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