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어, 아직 모를 뿐이야'
학명은 Chelidonium. 희랍어 chelidon, ‘제비’에서 유래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제비 새끼는 태어날 때 눈을 뜨지 못한다.
그때 어미 제비가 백굴채의 노란 진액으로 새끼의 눈을 씻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굴채를 눈을 뜨게 하는 식물이라 부른다.
한때는 독이라 여겼던 그것이, 어떤 생명에게는 세상을 처음 보게 한 첫 빛이 되었다.
‘백굴채(白屈菜)’라는 이름에도 그 의미가 스며 있다.
흰 백(白)은 밝음과 순수, 굴할 굴(屈)은 자신을 낮추는 굽힘,
푸성귀 채(菜)는 자연의 치유력. 즉, 이 이름은 밝음을 품고,
굽어 자라며, 치유를 담은 풀이라는 뜻이다.
특별한 존재감 없이 조용히 살아가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어둠을 밝혀줄지도 모르는 식물.
그 이름부터 이미 존재의 이유를 증언하고 있었다.
그 줄기를 자르면 노란 꽃과는 전혀 다른,
진한 주황빛 진액이 흘러나온다.
그 안엔 독이 있다.
세포를 죽이기도 하고, 균을 없애기도 한다.
하지만,
그 독은 조심스럽게 다루면 약이 된다.
피부 질환을 치료하고, 상처를 덮는다.
무지하면 해가 되지만, 알게 되면 도움 되는 것.
독은 언제나 독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쓸모는 때로, 발견이라는 시선을 기다리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식물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단점을 보고 돌아서고,
또 누군가는 그 속에서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쓸모를 발견한다.
누군가에게는 까칠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솔직함이고,
누군가에게는 예민함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섬세함이다.
누군가에게는 결점처럼 보였던 그것이,
어떤 순간엔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 된다.
그래서 모든 성질은 두 얼굴을 가진다.
무엇이 될지는,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성분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독 일지 몰라도, 그 독이 어떤 삶에는 약이 된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쓸모는 있다.
아직, 모를 뿐이다.
지금은 몰라볼지 몰라도,
어느 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런 존재들이 가진,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장 조용한 기적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쓸모가 있다. 문제는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