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경이 – 익숙함에 묻힌 위대함〉

‘보는 것’과 ‘알아보는 것’

by 루치올라

아득한 옛날,

전쟁이 끝나지 않던 어느 여름이었다.

한나라 광무제 시절,

마무 장군의 군대는 적을 추격하다 황하 북쪽의 벌판에 이르렀다.

그곳은 물도, 식량도 바닥난 황무지였다.

병사들은 피오줌을 누며 쓰러지고, 말들도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전쟁에는 이겼지만, 가뭄과 병마 앞에서 군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 말을 돌보던 마부가 이상한 광경을 발견했다.

수많은 말들 가운데 단 세 마리만이 멀쩡했던 것이다.


그 말들은 마차 앞에 돋아난,

돼지 귀처럼 넓은 잎을 가진 풀.

그 풀을 유독 열심히 뜯고 있는 것을 본 마부는 풀로 국을 끓여 병사들에게 먹였고,

기적처럼 병사들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풀을 ‘차전초’라 불렀다.

수레 앞에 돋아난 풀이라는 뜻이었다.

수레바퀴에 밟혀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피어나는 생명력,

잎이 질겨 차바퀴나 사람의 발에 짓밟혀도 살아나는 질긴 생명력.

길가에 많이 자라기 때문에, ‘질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질경이는 그 시절에도,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길 위에서 굳건히 잘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 있는 흔한 들풀.

그러나 눈길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너무 흔하기 때문에,

쓰임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소중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지만, 이 흔한 들풀은 토종 허브이기도 하며

동의보감 ‘간장 편’에도 기록될 만큼 그 힘은 실로 놀랍다.

탁함을 빼내고, 속을 맑게 해주는 치유의 식물이다.



흔하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희소한 것만을 귀하다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답답하고 뒤틀린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래서 익숙함은 자주 위대함을 못 보게 만든다.

삶도 그렇다.

매일 마시는 물, 숨 쉬는 공기, 문득 비치는 햇살.

그 속에 스며든 위로와 기적.

하지만,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 이상

그 위대함을 쉽게 지나치거나,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가까이 있었지만 알아보지 못했던 소중함,

그 소중함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는 이 깨달음은 넓이보다 깊이를 보려 할 때,

가장 평범해 보였던 자리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그냥 ‘보는 것’과 ‘알아보는 것’ 사이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질경이는 그 차이를 보여주는 존재다.

그저 지나치는 들풀 같지만, 시간을 내서 바라보면,

그 안엔 수없이 많은 치유와 진리가 숨어 있다.

그동안 알려고 하지도 않아서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진리와 이치도 들풀처럼,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고 고요하게 늘 놓여 있다.

그러나 그 가치를 품을 수 있는 건 절대 공평하지 않다.

진리와 이치를 알아본 이의 삶은 언제나 지혜와 은혜로 가득해진다.


질경이의 꽃말은, ‘발자취’.

길 위에, 언제나 있었던 진리.
어떤 평가에도, 어떤 밟힘에도 사라지지 않고,
질기고 강하게, 기어코 자취를 남긴다.



소크라테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 가장 알아차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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