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 어둠 속에서 피는 소신의 철학〉

태양보다 더 강한 빛.

by 루치올라

태양보다 더 강한 빛이 있다.

어둠 속에서 피어난 찬란한 빛

달맞이꽃.

대부분의 꽃은

햇살이 퍼지는 낮에 피어난다.

해를 따라 피고, 해를 따라진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순리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그렇게 피어야만 하는 꽃도 있다.

바로, 달맞이꽃이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이 꽃은 해가 진 어둠 속에서만 피어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달맞이꽃의 생리학적 특성상

햇빛이 사라진 뒤에야 꽃잎이 열리는

고유한 리듬을 지녔다.

박수도 없고, 조명도 없는 시간.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고요한 밤.

그제야, 달빛 아래에서 조용히 피어난다.



달맞이꽃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법을 알고,

그 어둠 속에도

빛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건 나의 방식이고, 나의 시간이다.

달빛은 태양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어둠 속의 빛은 태양 못지않게

다른 힘을 지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강하지 않아도 괜찮다.

눈부시지 않아도,

느껴지는 빛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빛은

때때로 태양보다 더 깊은

생의 위로가 된다.



여기,

달맞이꽃을 닮은

마법 같은 삶을 살아낸

한 사람이 있다.

빛이 아닌 어둠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

삶은 그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살아야만 했다.

그의 이름은 폴 알렉산더.

1952년, 여섯 살의 소년이

갑작스러운 고열로 쓰러졌다.

진단은 소아마비.

그리고 전신 마비.

살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삶은

아이언 런이라는 철제 인공호흡기 안에

누운 채로 이어져야 했다.

머리만 간신히 밖으로 나온 채

몸 전체는 쇠통 안에 고정된 채,

움직일 수 없고

호흡조차 기계에 의지해야 하는 삶.

누구라도 그런 삶을

지옥이라 부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나는 갇혀 있지 않았다.

그는 입에 펜을 물고 글을 썼고,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텍사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변호사가 되었고,

자서전을 출간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며 살아냈다.



그가 이룬 삶은

누군가에겐 기적처럼 보였고,

누군가에겐 마법처럼 느껴졌지만,

그 본질은 단순했다.

그는 다른 삶의 길을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자기 삶을 자각한 사람이었다.

소아마비라는 조건은

그를 쇠통 속에 눕히고 가뒀지만

그의 마음은

결코 눕히지도, 갇히지도 않았다.

그는

낮이 아닌 밤에 피어난 달맞이꽃처럼

자기만의 시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피어났다.

그리고 그 자각은

삶을 기적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다르게 산다는 건 용기라고.

그러나 그 이전에,

그 다름을 알아차리는

자각이 먼저다.

달맞이꽃처럼,

폴 알렉산더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대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삶은

아침처럼 활기차고,

어떤 삶은

깊은 밤처럼 아늑하다.

강렬한 빛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둠 속에서

은은한 빛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삶이 맞고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삶엔 정답이 없다.

달맞이꽃은 말한다.

나는 낮이 아닌 밤에 피어난다.

그리고 그게, 나다.

폴 알렉산더는 보여주었다.

나는 어둠에 갇혀 있지 않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나는 나다울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조건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길을 그대로 살아낸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로 찬란한 사람이다.

빛은 언제나 있다.



이 글은

기적을 믿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고,

느린 리듬도 삶이라고,

태양처럼 눈부시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이야기다.

빛은 언제나 있다.

태양이 아니어도 괜찮다.

달빛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리고 때로는,

달빛은 태양보다 더 강한 빛이 된다.




“자유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스스로 묶인 줄을 아는 데서 비롯된다.”

– 몽테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