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초, 들리는 것과 드러나는 것〉

내가 아는 진실

by 루치올라

한때 망초는,

‘나라를 망하게 한 풀’이라 불렸다.

을사늑약 즈음,

침목에 묻어 들어와 철길 따라 번지던,

그 풀을 사람들은 ‘망국초’라 불렀고,

이름이 너무 흉흉하다 하여 ‘망초’로 줄여 부르기 시작했다.

무고한 풀 하나에 나라의 운명을 덧씌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망초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 시절,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도 무거웠던 탓이다.

견딜 수 없던 상실과 분노,

무력감 같은 감정들이 향할 곳을 잃은 채,

아무 죄 없는 풀에게까지 흘러간 것이다.


고통이 너무나도 컸던 시대의 반영.

그 안에서 망초는 이름을 잃었다.




들국화를 닮은,

작고 앙증맞은 꽃.

Erigeron annuus – 이리 저런 애뉴얼스.

엄연히 존재하는 학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를 잘못 만나 ‘망초’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 시대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들이 한 송이 꽃에게까지 번졌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망초는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진실은 말이 아니라,

존재로 드러나는 것임을 망초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삶도 그렇다.

누군가의 말보다 내가 살아낸 시간이 더 진실하다.

사람들의 판단보다 내가 나를 기억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뜨거운 태양이 매일 저녁 산 너머로 떨어져도

산이 불타지 않는 건,

그게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지 않는가.

망초도 알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든,

어떻게 나를 바라보든,

그 말이 곧 나의 본질은 아니다는 스스로의 믿음이 영향을 받지 않는 한.

그 어떤 말들로도 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을.


세상이 나를 오해하는데 시간을 써버리겠다고 하면,

그냥 그렇게 하라고 놔두고

나는 내 삶에만 더 충실하면 그만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면 그 어떤 이름으로도 나를 감히 어쩌지 못한다.

나를 오해하는 그 시선은 결국

상대의 불편함일 뿐,

내 불편함은 아니다.

그래서 망초는 오늘도 떳떳하게,

보란 듯이 뜨거운 여름 벌판에 하얀 서리처럼 피어난다.

어떤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말에도 꺾이지 않은 채,

제 자리에서 시원한 물결 만든다.

산들바람에 맞춰 하얀 파도를 만드는,

망초의 그 물결을 보며 오늘도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다시 한번 배워본다.





비르기트 바르가 (Birgit Varga)

"당신을 정의하는 것은 당신을 보는 그들의 눈이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