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등과 – 너무 이른 궤도

잃어버린 감각”

by 루치올라

다산 정약용은

인간이 겪는 불행 가운데

대표적인 세 가지를 언급한 바 있다.

그중 하나는 ‘소년등과(少年登科)’,

즉 어린 나이에 너무 빠르게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이다.

이 글에서는 그 ‘소년등과’가 왜 불행인지, 그 본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위로 올라가길 원한다. 남들보다 앞서 도달하고, 일찍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은 말했다

. “소년등과는 인생의 불행이다.”

소년등과란,

글자 그대로 ‘소년(어린 나이)’에

등과(과거 급제)’하는 일이다.

즉, 너무 이른 나이에 높은 자리에 도달하는 것을 뜻한다.

언뜻 보기엔 복처럼 보이지만,

다산은 그것이야말로 삶의 순서를 어지럽히는 위험한 일이라 보았다.

왜일까?

너무 빠른 높음은 단련할 틈조차 없이

궤도에 오르게 한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실패하며 회복하고, 무너지며 단단해질 수 있는 시간

그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버린다.

겪어야 할 혼란,

헤매야할 미로,

무너져봐야 알게 되는 것들과

일어설 근육.

그 모든 것을 건너뛴

높음은 겪지 않음의 문제가 아니라,

깊어질 수 없음의 문제다.

사람은 아프기 전엔 멈추지 않는다.

돌이켜보지 않고, 감사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는다.

목이 바싹 말라봐야 물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고,

숨이 턱까지 막혀봐야

공기가 얼마나 고마운지 깨닫게 된다.

건강은 잃어봐야,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고,

밥은 굶어봐야, 밥 한 끼가 얼마나 귀한 줄 안다.

모든 감각은, 잃어야 깨어난다.

그래서

고통은, 우리에게 삶의 진짜를 보게 해 준다.

겉이 아니라, 뼛속으로 가르친다.

삶이 제대로 나를 단련시키지 않은 채

너무 일찍 높은 곳에 올려버렸을 때,

인간은 내면의 감각을 잃는다.

그리고 반드시 대가는 찾아온다.

그 대가는 실패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더 못 보게 치명적인 형태로 다가온다.

감각의 결핍,

공감의 부재,

내면의 낯섦 같은 것들로.

자신의 속도만 알고,

자신의 높이만 기억한 사람은

다른 이의 고통, 다른 삶의 속도,

다른 세상의 온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결핍된 경험의 결과다.

결국, 너무 빨리 올라간 사람은 아래를 모른다.

더딘 사람을 무시하고,

넘어진 사람을 비난하며,

자신이 오르지 않은 길을 쉽게 말한다.

소년등과의 진짜 불행은

올라가는 사이,

내려다보는 법만 배우고

들여다보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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