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계보학에 대하여
성격이 팔자라는 말
성격이라는 이름의 운명, 감정의 계보학에 대하여
개인이 느끼는 이 감정의 결은 어디서 파생된 것일까.
문득 솟구치는 죄책감, 무의식적인 희생,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할 것 같은 기분,
혹은 사랑이 곧 의무처럼 느껴지는 태도들.
이 모든 것의 뿌리는,
정말 나라는 개인 안에서만 자라난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성격은 선천적 기질과 후천적 경험의 교차점 위에서 형성된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경험은
단지 개인의 삶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세대 간 전이 속에 있다.
감정은 기억된다.
단지 머릿속이 아니라, 몸과 관계와 침묵 속에.
트라우마의 대물림은 그 대표적인 예다.
할머니의 전쟁, 어머니의 억압,
그리고 나의 조용한 불안은
서로 만난 적이 없어도
조부모, 부모, 그리고 나까지
어딘가에서 연결되어 있다.
시공간은 달랐지만
함께였다.
한 사람의 성격은 시대의 감정적 기후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
조부모는 감정을 삼키는 것이 생존이었다.
나의 부모는 감정을 눌러야 가정이 유지되었다.
그리고 나는, 감정이 없어야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렇게 감정은 표현되지 않았고,
억제되었으며,
결국 인지되지 않은 채 전이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생존에 큰 영향을 주는
마치 공기 같은 것.
이것이 바로 감정의 계보학이다.
말로 하지 못한 것들은
감정이 되고 행동으로 옮겨진다.
침묵은 조용하지만 분명 유전된다.
그리고 결국, 성격이라는 형태로 굳어진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말했다.
역사는 끊김이 아니라 연속으로 읽어야 한다.
심리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존재는 단절된 주체가 아니라,
기억의 궤적, 감정의 연쇄 반응 속에 있는 흐름이다.
내가 화를 잘 못 내는 이유,
늘 양보하고 눈치를 보는 이유,
혼자 있는 게 익숙한 이유조차
그 시작은 내 어릴 적 경험이 아니라
그 이전 세대의 감정 체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심리학자 보울비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영아기 주 양육자와의 관계는
인간의 정서 구조와 대인관계의 기본 틀을 결정짓는다.
그 양육자는 누구에게서 배웠는가.
조부모님의 시대, 문화적 요소.
부모님은 조부모님의 시대와 문화를,
그리고 다시 부모 세대에서 더해진 것들.
이런 조각들이 모여 확대 재생성된다.
그것은 양육 태도 이전에
감정의 서사였다.
나는 이제야 그걸 이해한다.
나의 성격은 단지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건 세대가 물려준 감정의 유산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유산을 되돌려주고 싶다.
감정의 이름을 붙이고,
그 연결을 자각하고,
무의식의 흐름을 끊어내는 것.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심리적 독립의 첫걸음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말했다.
당신이 의식하지 못한 것을 자식이 대신 짊어진다.
나는 이제야 안다.
내가 나를 자각하지 않으면,
그 대물림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복잡하고 힘들어 보이는 감정을
바르게 이해하면
비로소 감정은 세대에서 벗어난다.
원하지 않았던 강제적 유산을
자발적으로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