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소는 되었지만, 해결은 없다
욕은 삼키지 못한 감정이,
끝내 터지는 소리다.
마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압력솥같이
감정은 내면 깊숙이 증기처럼 응축된다.
임계점을 넘는 순간,
언어의 경계마저 밀어내며 거친 숨으로 분출된다.
감정을 삼키면,
그것은 말로 풀리지 못한 채 내면에 침전된다.
감정은 말로 풀지 않으면 무게로 남고,
그 무게는 결국 터져 나온다.
그렇게 터진 감정은
가장 거칠고도 본능적인 야생적 언어를 빌린다.
그것이 바로 욕이다.
그래서 욕은,
세간을 설득하려는 말이 아니다.
그건 감정을 견디지 못한 순간,
안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반사다.
밖을 겨눈 듯하지만,
실은 자기 안을 주체하지 못한 파열이다.
언어는 본래 소통의 도구다.
하지만 욕은 다르다.
욕은 방출이다.
말이긴 하지만, 동시에 소리이고 외침이다.
외부를 향해 던졌지만,
그 울림은 끝내 내게도 던져진다.
균열 난 내면의 응급출구인 것이다.
욕
그 대상은 다양하다.
사람일 수도 있고,
막히는 도로일 수도 있고,
말을 안 듣는 기계일 수도 있다.
혹은 갑자기 무너진 계획,
생각만 해도 속 터지는 투자,
문득 무의식에서 끓어오른 감정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결국 욕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향한
본능적 반응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다.”
욕은 그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몸짓 없는 절규다.
말로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감정의 압축 폭발이다.
물론 욕을 미화하려는 건 아니다.
욕은 결코 좋은 습관이 아니다.
반복되면 그것은 감정의 통로가 아니라,
상처의 화살이 된다.
자기감정을 겨눈, 부메랑 같은 언어가 된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욕은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려는
자가방어적 표현이다.
그 말이 왜 나왔는지를 묻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감정을 자각하게 된다.
욕은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
그 상황이 만들어낸
감정의 무게만 조금 덜어낼 수 있을 뿐이다.
익숙해지면 위험해진다.
속이 시원하다고, 감정이 풀렸다고
계속해서 이 방식만 반복하다 보면
그 말투가 내 언어가 되고,
내 언어가 내 성격이 되고 내 삶이 된다.
입이 거칠어지면,
마음은 무뎌진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가고,
말이 나보다 앞서 질주한다.
그러니 가끔은,
말보다 침묵이 더 정확한 언어일 때가 있다.
입으로 나온 시원함보다
내 안의 감정을 조용히 토닥여주려 애써야 한다.
끊을 수 없다면,
적어도 적당히.
그 욕이, 그 분노가 나를 삼키지 않도록
내가 말보다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
시원함이 습관이 되는 순간,
언어는 무기가 되고,
감정에 목줄이 묶여 끌려다니는 내가 된다.
해소는 되었지만, 해결은 없고
표현은 했지만, 치유는 없다.
그래서 욕은 감정의 해방이면서,
또 다른 속박이다.
속시원한 욕설이 정말 나를 살릴까,
아니면 내 운명을 갉아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