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정의를 분노로만 해석하지 않기를

by 루치올라

필요한 화[火]


불편함을 감당하는 누군가 덕분에,

누군가는 편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필요시에 가끔 화를 낸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말을 한다.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고,

불합리한 것을 짚고,

잘못된 태도에 “그건 아니지 않나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냥 넘어가지, 왜 그래.”

“너무 까칠한 것 같은데.”

“너무 예민한 거 아냐?”

“좋게, 좋게 가자.”


하지만 내 세상에는

좋게 좋게 넘어갈 일이 따로 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이 일은 또 반복될 것이다.


세상은 조용한 사람을 좋아한다.

말을 아끼고, 공손하고,

웬만한 일은 참고 넘어가는 사람.

그래야 “성격이 좋다, 착하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잘못을 봐도 침묵하고,

상처 주는 사람이 있어도 외면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자세로 사는 사람이

정말 성격이 좋은 사람인가?


성격 좋은 척하지 마라.

착한 척하지 마라.

당신은 어쩌면,

그 순간 가장 위험한 방관자일 수도 있다.


피를 묻히지 않고, 깨끗하게 살고 싶다고?

그 편안함은

누군가가 대신 부딪히고, 말하고, 싸운 덕분이다.


누군가의 불편한 외침 덕분에

당신은 지금,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의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정의는 책임의 감정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2차, 3차 피해자가 생기고,

그 침묵 속에서

무례와 폭력은 정당화된다.


나는 성격이 나쁜 게 아니라,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니 말한다.

정의를 분노로만 해석하지 마라.


그건 감정이 아니라,

책임이고, 감당이고, 용기다.


불편함을 감수한 사람 덕분에

누군가는 고통을 면했고,

누군가는 다시 상처 입지 않았다.


성격 좋은 척,

착한 척

그건 결국 비겁한 회피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방관은 조용한 공범이다.


세상은 조용히 방관한 사람보다,

한 번 더 외친 사람 덕분에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나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