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고침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한다.
이 짧은 문장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미국 작가 어슐러 K. 르 귄의 대표작
『아투안의 무덤(The Tombs of Atuan)』에서 주인공 게드가 테나에게 건넨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는 거요,
테나. 건너기 전에 보이는 것만큼 어려운 다리는 아니라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생물학적인 죽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 안의 과거,
붙잡고 놓지 못하는 고통,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습관, 두려움과 집착, 그리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오래된 패턴을 내려놓는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과거에 머물며
괴로워하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해로운 습관을 반복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상처를 반복하며,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크게 해칩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단순한 소설 속 대사가 아니라, 현대인 모두에게 건네는 질문처럼 다가옵니다.
과거의 나를 버리지 못한 채 어떻게 새로운 나로 태어날 수 있겠는가.
죽음은 곧 비움입니다.
집착을 버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익숙한 나를 내려놓고,
견고하게 쌓아 올린 자기 이미지를 허물 때 비로소 새로운 삶의 문이 열립니다.
철학자들이 말했듯이,
자유는 모든 얽매임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스스로가 무엇에 묶여 있는지를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남이 만든 줄보다
스스로 만든 줄에 더 오래 묶입니다.
비교, 증명, 미움, 후회.
그것들이 내 안에 얽히고설켜 결국 삶을 옥죄는 매듭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한다”는 말은 스스로 만든 매듭을 풀어내는 용기를 뜻합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죽어야 할 것은 과거의 나이고,
진정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은 비워낸 뒤의 나입니다.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한다.
이 말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할 삶의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억지로 피할 수 없는 삶의 흐름이자,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누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서툴 수밖에 없고, 그 서툼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습관과 사고방식이 굳어지고, 때로는 그것이 나라는 존재를 고착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되돌아봐야 합니다.
되돌아봄은 단순한 후회가 아닌 더 나은 삶을 위한 점검입니다.
그럭저럭 살만하다고
그냥 지나치고. 그 시기를 건너뛰면,
같은 괴로움과 같은 상처를 계속 이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질 수 없고,
죽지 않으면 새로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꽃도 꽃으로서의 삶이 다해야 열매가 되고,
열매도 열매로서의 삶이 다해야 씨앗이 된다.
그리고 씨앗은 어두운 흙무덤 속에 파 묻혀 다시 생명을 틔운다.
결국 삶은 끊임없는 새로고침의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