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들림
최근 온 국민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준 참혹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여수에서 발생한 생후 사 개월 영아 학대 사망 사건입니다 갓난아기를 향한 부모의 끔찍한 만행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고 그 거센 분노는 결국 피의자들의 신상이 인터넷 곳곳에 낱낱이 파헤쳐지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대중의 공분 속에 떠도는 가해자들의 사진을 보며 우리는 깊은 절망과 씁쓸함에 빠져듭니다
화려한 웨딩 촬영을 하고 겉으로 보이는 삶의 이미지에만 집착했던 그들의 텅 빈 내면은 자신의 참혹한 결핍과 무책임함을 철저히 감추기 위한 허울 좋은 가면에 불과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취와 포장된 겉모습만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병든 마음은 마치 우리 사회에 퍼진 악마 바이러스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비통하게도 이런 괴물들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비극은 단순히 두 개인의 잔혹한 일탈을 넘어 오늘날 우리 사회가 과연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뼈아프게 묻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에 대해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고도의 물질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정작 지켜야 할 생명의 존엄이나 인간다운 책임감 같은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가치들은 내팽개치곤 합니다 그 대신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남들이 다 가지는 것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덜 중요하고 불필요한 것들에 맹목적으로 붙들려 열광합니다
군중 심리에 휩쓸려 모두가 껍데기뿐인 허상을 좇을 때 인간의 영혼은 서서히 메말라갑니다
칼 구스타프 융의 집단 심리와 무의식 분석을 빌려보자면 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범죄는 결코 범죄자 개인의 고립된 세계에서만 돌연변이처럼 탄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물질주의와 겉치레에 집착하며 무의식 속에 방치해 둔 거대한 집단 그림자가 어쩌면 저런 끔찍한 괴물들이 태어나고 자랄 수 있는 암묵적인 토양을 제공한 것은 아닐까요
평범한 우리 모두가 이 비극의 직접적인 공범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가치들을 외면하고 껍데기에만 열광해 온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마주하는 일은 지울 수 없는 무거운 씁쓸함을 남깁니다
결국 이 끔찍한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명확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보여주기식 삶이라는 허상에 붙들린 상태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진짜 가치에 집중해야 합니다
덜 중요한 것들을 과감히 덜어내고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가장 따뜻하고 무거운 가치들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되돌려 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 비극적인 악마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인간의 본질을 묻는 인문학과 마음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심리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눈부신 기술 발전과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작 우리의 영혼은 길을 잃고 병들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그림자를 직시하는 심리학적 성찰과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문학적 지혜 없이는 우리는 결코 이 거대한 허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음의 결핍을 채우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 그것이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자 괴물들이 자라나는 토양을 정화하는 유일한 백신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