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쓰디쓴 기억이 약이 되는 이유〉

“버려진 자리에서 피어난 철학”

by 루치올라

“버려진 자리에서 피어난 철학”

쑥대밭이라는 말은 보통 어떤 것이 엉망이 되고 망가졌을 때 쓰인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

모든 생명이 사라진 자리에서 가장 먼저 다시 피어난 것도 쑥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쑥이라는 존재가 지닌 생물학적 구조와 생존 전략의 결과다.

쑥은 누구도 돌보지 않는 땅에서도 먼저 뿌리를 내린다.

척박하고 상처 입은 땅도 가리지 않는다.

쓴 향으로 벌레를 쫓고, 뜯기지 않기 위해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쓴맛으로 지키며,

함부로 침범당하지 않기 위해 외부 탓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략을 생존에 총 동원한다.

그리하여

쑥은, 험한 구조 속에서도 기필코 살아남게 된다.

그래서

단군 신화에서도 곰은 인간이 되기 위해 쑥을 먹는다.

달콤한 것이 아닌 쓰디쓴 것을 선택했다는 건,

단순한 금욕이 아니라 내면의 짐승성을 다스리기 위한 의지였다.

쓴 것을 견디는 시간만이 인간을 진화시킬 수 있다는 깨달음이 그 신화에 담겨 있는 것이다.

곰은 그 쓴맛을 삼키며 고요히 기다렸고, 마침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그 변화는 강요된 것이 아니라,

인내의 시간과 시련을 견뎌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빛나는 승리이자 승화인 것이다.

병든 땅 위에 먼저 돋아나고,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외로움 속에서 향을 피운다.

버려진 자리에서도 자신을 정화하는 대단한 에너지가 있기에 다른 생명을 위한 기운까지 나눠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자라야 할 자리가 어디든, 쑥은 겁내지 않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끝끝내 살아남는다.

독하고 무섭게 말이다.

스스로를 정화하고 극복해 내는 승화의 능력,

그 무엇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쓰디쓴 것을 견디며 진화를 선택하는 태도,

무너진 자리에서도 끝내 살아남는 존재



그 쓴맛은 단지 방어가 아니라,

세상이 던진 모든 독과 상처를 품고도 다시 끈질긴 승화로 피어나는 생존방식이다.

인간의 능력은 뛰어난 부분이 많긴 하지만,

"고苦"에 대한 승화 능력은 쑥을 따라잡을 수 없이 현저하게 부족한듯하다.




쑥보다 승화 능력이 많이 부족 한 나에게

쑥이 말없이 쪽지 한 장을 건네며

알려준다.


사실은 내가 말이야

쓴맛이 나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저것,

이런저런,

고[苦] 통의 일들을 다 겪었기 때문일 거야

그런데도 쓴맛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그 고통들이 잘 승화되면

생을 사는 동안 교훈이 되고

동력이 된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 수많은 맛들 중에

기꺼이 쓴맛을 선택했는지도 몰라.

그러니까

너도 살다가 혹시라도 쓴맛을 맛보거든

꼭, 써먹어!

버리려고만 하지 말고 알았지?


from : 쑥으로부터.




빅터 프랭클 (Victor Frankl)

❝삶은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고통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자극이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