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초(狗尾草)
‘강아지 꼬리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불렸던 풀,
구미초(狗尾草).
그 이름을 귀엽다 말했지만,
강아지풀은 단지 귀여운 모습만으로 존재해 온 풀이 아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흉년으로 극심한 기근에 시달렸을 때,
사람들은 이 작고 투박한 풀을 말려
쌀이나 보리에 섞어 끼니를 이었다.
연약해 보이지만 굶주린 사람들이 기대던
구황작물 중 하나였다.
생존의 끝자락에서 의존했던,
작지만 당찬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밭에서 기르는 곡물인 ‘조’.
그 익숙한 곡물조차,
사실은 오랜 세월 강아지풀을 선별해 가꾼 끝에 탄생한 것이다.
말하자면, 조의 뿌리는
길가에 쓰러지듯 흔들리던,
이 여린 풀에서 비롯되었다.
강아지풀은 시대를 버텨낸 뿌리였고,
지금의 생을 이룬 시작이었다.
강아지풀은 변화에 맞서려는 고집을 내세우지 않는다.
거센 바람이 몰려오면, 그 방향을 살핀 뒤 기울인다.
무작정 버티기보다는,
흐름을 타며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안다.
그건 굴복이 아닌 생존의 전략이며,
흔들림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는 본능적 움직임이다.
우리는 종종 ‘단단한 것’을 강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고대 도가(道家) 사상에서도
“물처럼 유연한 것이야말로 가장 강한 것이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드러움은 약함이 아니라,
이치를 꿰뚫어 보며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힘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좋아하든 미워하든,
약해 보인다고 판단하든,
기억하든 잊든,
개의치 않는 강아지풀이
실바람에 실어 속마음을 들려준다.
나를 어떻게 평가해 대는 거?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몫이 아니야.”
그러니까,
“괜찮아. 흔들려도 나는 내 뿌리를,
그 자리에서 단단히 지키고 있어!
보이지 않는 뿌리 말이야!
남들이 몰라줘도 괜찮아.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으니까.
아무리 흔들려도
나는 내 자리를 지키거든.
나를 흔들어대는 바람은 어쩔 수 없어도,
내 뿌리는 내가 어쩔 수 있거든.
나는 내가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한 영역을 분명히 잘 알고 있지.
그게 되니까 괜찮다는 거야.
정해둔 기준에 맞춰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한없이 약해 보이는 강아지풀은
흔들리되, 보이지 않는 내면은 꿋꿋이 지킨다.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흔들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다시 중심을 되찾는다.
그렇다.
성숙해진다는 건, 나이도 세월도 아닌,
보이는 모든 것이 흔들릴지라도
보이지 않는 내면의 뿌리를 먼저 믿는 일이었다.
보들보들 연약해 보이지만,
진짜 강함이 무엇인지 이미 다 알고
생을 살아가고 있는 강아지풀들.
흔들리는 삶이 결코 혼란이 아니라는 것.
부드러움은 생을 지켜내기 위한
생존의 아주 현명한 형태라는 것.
귀엽다는 말로는 다 담지 못할,
한 존재의 깊이와 단단함
고요히, 그리고 우직하게 숨 쉬는
강아지풀 옆에서 오늘도 생을 배워본다.
장자 (Zhuangzi)
“삶의 진정한 지혜는 바람에 흔들리되 꺾이지 않는 것이다.”
“큰 바람은 오래 불지 않고, 큰 비는 오래 내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