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 아니라, 어떻게 ?=!
버릴 때 피어난다.
뿌리째 뽑혀도 다시 살아나는 생존력.
민들레는 붙잡지 않는다.
씨앗은 바람을 거슬러 날지 않는다.
흐름에 몸을 맡기고 어디엔가
닿을 곳을 향해 날아간다.
언뜻 보면 무방비해 보인다.
흔들리고, 뿌리 뽑히고, 흩어진다.
그러나, 바로 그 무방비함이
민들레의 가장 강한 생존 방식이다.
민들레는 집착하지 않는다.
도시의 틈, 벽의 금, 폐허의 땅에서도 피어난다.
여기여야만 한다는 고집도,
반드시 이래야만 해 라는 고집도 없다.
던져진 자리를 비극이 아니라 기회로 삼는다.
상황을 바꾸지 못하면,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는 진실을
민들레는 이미 안다.
주어진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낸다.
삶에서 우리는 수없이 뿌리째 뽑힌다.
관계에서, 일에서, 혹은 존재 그 자체로부터.
그러나 어디에서 뿌리내릴지는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이 결정한다.
놓아줌이란
단순한 포기가 아니다.
잡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워지는 마음이다.
민들레는 날아가며
자기 자리를 만든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흩날리며 가볍게 퍼지는 삶을 택한다.
그래서 민들레는 묻지 않는다.
‘왜 여기인가’ 대신
‘어떻게 여기서 피어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조용히 피어난다.
무심한 세상 한가운데,
민들레는 피어남 하나로 존재를 증명한다.
파나소닉의 창립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말했다.
“나는 세 가지 복을 타고났다.
가난했기에 감사히 배웠고,
몸이 약했기에 일찍부터 건강을 아꼈으며,
배움이 짧았기에 세상 모든 것에서 배웠다.”
민들레도 그와 같다.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부족함에서 자양분을 삼는다.
이곳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이곳에서 잘 피어날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한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뿌리를 내릴 방법을 고민한다.
민들레에게,
오늘도 조용히 삶을 배운다.
쇼펜하우어
“운명은 카드를 나눠주고, 우리는 그 카드를 가지고 게임을 해야 한다.”
→ ‘왜 이 카드를 받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 카드로 살아낼 것인가’에 집중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