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지나온 자들이 남긴 가르침
“그 일만 아니었으면…”
살다 보면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다.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고,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것 같은 마음.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삶에는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말 그대로, 불가역(不可逆).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고,
우리는 오직 ‘해석’만을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죽지 못해 살아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순간마다 고통을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가르침이 절실히 필요하다.
책으로만 배운 말이 아니라, 실제로 고통을 통과한 자들이 남긴 말.
극한의 고통을 지나온 자들만이 진짜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먼저,
프리드리히 니체.
그는 평생 병에 시달렸고, 말년에는 정신까지 무너졌다.
그가 남긴 한 문장은 언제나 나를 멈춰 세운다.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같은 삶을 살겠다.”
이 문장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리고 그 고통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었는지.
삶을 거부하지 않기 위해 끝내 삶을 껴안으려 했던 내면의 처절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들이 사는 이곳이 지옥 같아서,
“환생이 있다면 절대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고 말했던 나로서는 그의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삶을 왜 또다시 살겠다는 걸까?
하지만,
그 문장의 진짜 뜻은 고통을 찬양하거나 반복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삶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온전히 껴안으려는 ‘의지’를 사랑했던 것이다.
뒤로 갈 수 없는 시간,
앞으로만 흘러가는 삶 속에서,
그 고통까지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절실히 알았던 것이다.
한 사람은 수용소 ‘밖’에서 매일 고통을 견디며 철학을 써 내려갔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수용소 ‘안’에서 매일 죽음과 싸우며 삶의 의미를 붙들었다.
그는
빅터 프랭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매일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야 했다.
오늘 곁에 있던 이가 내일이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고문, 굶주림, 시체를 태우는 냄새, 인간 이하의 학대와 매질,
심지어 생리적 존엄마저 빼앗긴 시간들.
그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삶의 의미만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고통은 의미가 있을 때 견딜 수 있다.”
이 말은 단순한 위로나 이론이 아니다.
죽음과 동등한 극한의 고통을 살아낸 자의 증언이다.
그는 가장 절박한 순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 속에서 삶을 다시 살아낼 실마리를 건져 올렸다.
두 사람 모두 말한다. 삶이란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해석하며 살아내는 과정이라고.
지우고 싶은 기억은 지울 수 없고,
그 고통은 때로 지옥을 비켜간 값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 고통을 끝까지 통과한 자들만이 진짜 가르침을 남긴다.
우리는 언젠가, 그 언어를 흘려들었던 자리를 다시 떠올린다.
말보다 오래 남는 한 문장,
그리고 지금은 아무 말 없는 그들의 생존 자체에서 배우는 가르침.
그렇게, 무너졌던 자리에서 마음을 다시 세워본다.
이들이 남겨준 가르침.
우리는 그 가르침으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겪었던 수많은 고통은 어쩌면 더 처절한
지옥을 면한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지옥을 통과한 자들이 남긴 그 언어와 침묵,
그 고통으로부터 배운 교훈을 반드시 우리 자신의 삶에 적용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