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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Nov 17. 2021

'오징어 게임'으로 읽는 세상

돈이면 다인 안타까운 세상

   인천공항을 떠나 헬싱키에 도착했다. 스웨덴 알란다행 항공기 승무원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을 아직 보지 않았던 나로서 이색적인 광경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한국말을 모르는 유럽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어 발음이 신기하고 드라마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요즘 지구촌 곳곳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게임이 한창이라고 한다. 손자가 다니는 기초학교에서도 종이딱지 놀이가 아이들 사이에 인기라고 한다. 한국 드라마 위력이 이 정도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최고 인기 드라마로 나온다. 북남미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 중동 등 전 세계 66개국에서 1위를 휩쓸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가 나온 지 2개월 밖도 되지 않았는데 스웨덴에서도 최고 인기 드라마로 기록 중이다. 한국 드라마가 국제 사회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오징어 게임이 처음이다. 드라마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J.K 롤링의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가 수십 조원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냈듯이 '오징어 게임'이라는 브랜드 가치는 환산조차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게임이 세계적 유행어와 함께 사랑받는 밈(meme)이 되었고, 인터넷 쇼핑몰에는 달고나 키트, 핼러윈 가면, 양은 도시락이 신상품으로 변신하여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녹색 운동복은 지구촌 곳곳에서 게임 캐릭터 상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드라마 촬영장 마이 랜드 월미 문화거리가 명소가 되는 것은 물론 한국민속촌은 오징어 게임 체험 프로그램이 관광 상품화되어 해외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아니라면 관광산업이나 한국경제에도 엄청난 이익을 가져왔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없는 틈을 이용해 3일에 걸쳐 드라마를 챙겨 봤다. 평소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한데 무슨 드라마 이길래 세계인들이 그리 좋아하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문방구 옆 '또 뽑기' 게임, 줄다리기, 구슬치기, 강 건더기, 오징어 땅콩 놀이는 한국의 전통 놀이 문화였다. 외국인이나 현대인 관점에서 매우 생소하고 흥미로운 소재이다. 복잡한 이해나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단순한 놀잇감이다. 쉽게 따라 배울 수 있는 게임이다. 파급력이 폭발적인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필자가 6~70년대 즐겨했던 오징어 땅콩 놀이가 떠올랐다. 동네 논밭이나 학교 운동장에 그려 놓고 놀던 오징어 게임이 오징어 땅콩 놀이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싸우는 장면으로 연출되었지만, 여럿이 두 편으로 갈라놓고 벌이듯 격한 전쟁놀이다. 서로 치열하게 밀치고 부딪치는 사내아이들의 게임이다.  딱지치기나 비석 치기나, 땅따먹기, 말뚝박기 놀이 등과 함께 흔히 하던 놀이였다. 한국의 전통 놀이 문화에 456억의 거액을 걸어 놓고 사투를 벌이는 '오징어 게임' 드라마가 눈길을 사로잡지 않을 까닭이 없어 보인다.


    '오징어 게임'드라마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거액의 돈에 목숨을 걸어 놓고 게임에 탈락한 자를 죽이는 살인 게임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하고 참혹한 살인이다. 더욱더 가슴 아픈 것은 환락과 향유를 즐기는 부자들이 그러한 장면을 쾌락적 욕구로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냉혹한 현실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옮겨 놓은 듯해 보는 내내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 탐욕을 즐기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희롱하며 갖고 노는 진부한 스토리가 드라마 애호가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니 천민자본주의의 비애라는 생각이 든다.


   돈에 목숨을 건 참가자들의 비극적인 삶이 침통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주연의 연기를 경기 진행요원의 관점에서 시청을 하게 만든 작품 같지만 시청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게임의 최종 승자가 된 주인공 결말이 말해주듯 루저의 삶은 죽는 날까지 승자가 될 수도 영광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들 앞에는 오직 죽음과 패배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픔과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고 힘없이 살아가는 빈자들의 삶을 보는 것 같았다. 불평등 사회의 아픈 상처를 후벼 파고 도려내는 듯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 실상을 그대로 그려낸 작품이 아닌가 싶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서민들이 드라마를 보고 마음껏 조소하고 위안을 삼으라고 만든 작품이라면 다행이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공정한 싸움을 강요하는 세상에 욕이라도 실컷 퍼붓는다면 속이라도 시원할 테니 말이다. 게임의 승자는 항상 정해져 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가상화폐나 부동산 투기, 주식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약자들은 쪽박 차는 일만 남아 잇다. 돈에 얽매어 고통스럽게 사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욕망 게임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드라마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드라마 구성을 보면서 아쉬움이 남는다면 황준호(위하준)의 역할이다. 잘못된 세상과 싸우는 정의로운 사람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돈이 원수다'라는 말처럼 돈이 주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세상이다. 돈이 된다면 무슨 짓도 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 장래 목표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라 말할 정도로 돈을 삶의 목표가 된 세상이다. 삶의 가치마저 돈이 몽땅 집어삼켜 돈의 노예처럼 살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오징어 게임으로 456억 원어치의 피눈물은 외면한 채 유리병 속에 든 탐욕을 추구하는 환상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


   드라마가 말하지 않아도 돈이 모든 걸 지배하는 한국 사회다. 평생을 벌어 모아도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한 현실에 살면서 이해득실을 따져 살 수밖에 없는 삶을 강요당한 지 오래되었다. 삶이 현실과 타협하고 양보한다는 것도 결국 돈의 위력에 눌려 맞서지 못하고 타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기업을 선호하는 구직자를 보면 돈 많은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의 노예가 되지 못해 안달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씁쓸한 생각이 절로 든다.


   돈에서 자유를 찾는 방법이 없을까? 돈이 지닌 위력을 빼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현금 화폐 사용을 없애는 것이다. 은행에 보관된 숫자로서 재화나 상품의 가치를 환산하고 거래나 교환 기능만을 유지한다면 돈의 위력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땅속이나 금고에 묻어둔 검은돈이 사라지고 투명한 시장 거래가 보장되어도  불로소득이나 불법거래로 인한 부정 축재나 이익은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상식이고 진리나 다름없다. 부를 빼앗거나 훔치지만 않아도 돈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이나 이자로 인한 부의 축적 이외에 부당한 방법으로 챙긴 이익은 불법이므로 불인정하면 된다. 아파트 가격을 폭등시켜 주거비를 올려 이익을 챙긴 것이 불로소득이다. 타인의 이익을 가로챈 불법 부당 이익은 환수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원칙만 지켜져도 자본의 지배를 벗어나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경제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도 부자가 늘수록 가난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쯤은 체감할 수 있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였다고 경제 지표가 개선되고 나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서민들의 삶 전반이 그만큼 나아진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져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제적인 삶은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부자들의 횡포와 갑질, 박탈감까지 더해져 민생 경제가 더 힘들게 느끼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들의 삶은 더 심각한 상태이다. 오죽하면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의 꿈까지 포기한 N포 세대라 하겠는가. 그러면서도 기본적 생존권이나 기본소득권 등 사회안전망을 추진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스스로 반대하고 비판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우리들이다. 부자들의 부 축적이나 자녀 대물림은 당연한 논리인양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잔치에 초대장 ○△□에 현혹되어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서글픈 자화상이 너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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